글: 이재표 · 글씨: 김재천

인간이든 짐승이든 극도의 흥분상태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화가 치밀어 주체할 수 없는 상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컴퓨터게임에 극도로 몰입해 엄마가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하거나 주인을 오랜만에 만난 개가 날뛰는 상태라고나 할까?

어떤 사람들은 외국에 나갔을 경우에도 이같은 기분을 경험한다. 대개의 경우 낯선 환경과 언어의 불통 때문에 심리적으로 위축되지만 그 반대로 해방감 때문에 행동을 억제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는 얘기다.

‘고삐 풀린 망아지’라는 말도 그래서 생겼을 것이다. 아직 고삐에 적응되지 않은 어린 망아지가 고삐에서 풀려났을 때 미친 듯이 겅중거릴 모습이 눈에 선하다. 시골기자만 해봤기에 순방이나 풀(Pool)기자 같은 단어는 들어보기만 했을 뿐 경험의 세계는 아니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을 따라 미국을 가본 한 전국지 기자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유심히 읽어보았다.

“대변인은 대통령을 따라 다니며 보도의 방향을 잡아내느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정작 기자들과 얼굴을 맞대고 보도내용을 조정하는 것은 춘추관장이다. 그만큼 긴박하다. 시차가 크다보니 취재하고 원고를 마감하느라 기자들도 몇날며칠을 뜬눈으로 지새우기 일쑤다. 모두들 눈이 따끔거릴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낸다.” 뭐 이런 내용이었다.

기자의 글에는 맞장구를 치는 선후배 기자들의 댓글이 이어졌다. 이 기자의 스토리와 ‘윤창중 스토리’는 도대체 호응이 되지 않는다. 대신 밤새 와인바와 호텔을 헤매고 다녔을 고삐 풀린 망아지만 머리에 떠오른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