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표 편집위원

고교시절 사회시간에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달달 외었던 ‘일사부재리의 원칙’ ‘무죄추정의 원칙’ 등의 법률용어들을 기자로 살면서 재학습한다. 수많은 사건사고와 판례들을 접하면서 ‘이게 그거였구나’하고 깨닫게 된다는 얘기다.

지난해 6월 학업성취도평가에서 시험을 감독하면서 답안을 불러주고 우등생의 시험지를 들어 운동부 학생에게 보여준 혐의를 받았던 전 청주D중 김 모 교사가 있다.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피의자였던 김 교사에 대한 4월22일 청주지검의 불기소 결정도 무죄추정의 원칙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원래 무죄추정의 원칙은 형사 피고인이라 하더라도 유죄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고 구속은 예외적으로 인정해 신체의 자유를 보장해야한다. 이는 대한민국 헌법 27조 4항에 규정돼 있다.

김 교사의 경우에는 아예 기소가 되지 않았기에 피고인도 아니었다. 다만 감사를 진행했던 교육청이나 불기소 결정을 내린 Q검사의 논리는 헌법에도 없는 ‘무죄단정(斷定)의 원칙’으로 조사나 수사에 임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먼저 교육청은 지난해 12월5일 D중에 대한 감사결과를 발표하면서 “반 학생 33명 가운데 19명은 ‘김 교사가 답안을 불러주는 것을 듣지 못했다’고 진술했기에 집단 부정행위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만약 살인사건이라고 비약해 본다면 “현장에 있던 33명 가운데 19명은 ‘범인이 흉기로 찌르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진술했기에 살인사건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힌 것과 같은 논리다. 단 1명이 범행을 목격했다고 하더라도 진술의 신빙성이 있다면 범행은 일어난 것이다. 교육청의 발표는 명백한 무죄단정이다.

Q검사는 불기소 결정문에서 “피의자에 대하여 (학생들이) 악감정을 가지고 피의자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였을 가능성이 없다고 볼 수 없는 점 등에 비추어, 피의자에게 본건 위계공무집행방해 혐의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라며 김 교사의 무죄를 추정한다. 앞서 Q검사는 부정행위는 6월에 있었는데 사건이 터진 시점이 5개월 뒤라는 점에서 ‘11월의 체벌’을 악감정을 가지게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가능성이 없다고 볼 수 없는 점’이라는 표현이 국어에 대한 유린인지, 복잡한 심중이 반영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가능성이 있다’고 하면 될 것을 비비 꼬아서 말한 것이 차라리 판단에 대한 ‘자신 없음’의 은밀한 고백이라면 좋겠다. 아니라면 Q검사의 피의자에 대한 이제 무죄단정이 학생들을 죄인으로 만들기에 충분하다.

자, 이 스토리를 한 번 들어보라. 예컨대 “교사는 학업성취도평가에서 학교성적을 올리기 위한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5개월 뒤 한 학생이 교사로부터 뺨을 맞았다. 학생들이 이에 불만을 품고 작당을 했다. 교사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언론에도 흘렸다. 경찰이 학교 측의 수사의뢰에 따른 인지수사에 나서 기소의견을 달아 검찰에 송치했다. 교사는 다행히 정의로운 검찰에 의해 혐의를 벗었지만 씻을 수 없는 명예의 손상을 입었다.”

교사가 학생들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걸 수도 있다. 정신적 상처에 대한 위자료를 청구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학생들은 작당해 선생님을 곤경에 빠뜨린 꼴이 됐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맞지만 왠지 미심쩍은 무죄단정은 누군가에게 법적, 도덕적 범죄자의 굴레를 씌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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