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안에선 늴리리야…김동락 기사의 풍류

검정색 구형 에쿠스 택시에 승차했다. 둔중한 차에는 어울리지 않게 체구가 작은 초로의 기사가 여유 있게 차를 몰았다.

차 안에 울리는 ‘늴리리야’도 심상치 않았다. 국악방송인가 싶었는데 CD였다.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기사가 쓴 창 좁은 모자였다. 모자를 썼다기보다는 뒷머리에 살짝 얹은 패션 감각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아저씨 택시운전 오래 하셨어요?” “한 38년 했죠.” 택시에서 내리기 전에 폰카로 사진을 찍고 전화번호를 받아 적었다. 밤늦은 시간 그렇게 충북 31아 6093호 김동락(61) 기사와 통화가 이뤄졌다.

김씨가 1976년 택시 운전대를 잡게 된 사연부터가 특이했다. 김씨는 청주 성안길에 있던 스탠드바 ‘길손회관’에서 코너를 운영했었다. 신용카드가 없던 시절이라 외상손님도 많았고 수금하는 게 장사의 반이었다. “승용차가 귀하던 시절이라 낮에 영업도 하고 수금도 하러 다니려고 택시기사가 됐다. 그런데 이게 천직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예 전직을 했다”는 것이다.

1975년 12월에 출시된 포니가 김씨의 첫 차였다. 속리택시, 화성택시, 삼승교통 등에서 20년 동안 택시기사로 일하면서 포니2, 액셀 택시를 몰았다. 1980년대 초까지는 승용차가 드물고 시내버스 등 대중교통이 부실하던 시절이라 수입이 쏠쏠했다.

1995년 개인택시를 운전하면서부터는 뉴그랜저, 다이너스티, 지금의 에쿠스에 이르기까지 최고급 차만 몰았다. “서울과 광역시에 있는 모범택시 수준의 서비스를 선보이고 싶었다”는 것이 김씨의 설명이다. “유지비가 만만치 않았지만 소문이 나면서 청주공단 기업을 찾는 외국바이어들을 도맡아 태우기도 했다”고.

그렇다면 차 안의 늴리리야는 뭘까? 김씨는 “노령인구에 대한 배려다.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노래는 늘 라디오에서 나오지 않는가”라고 반문했다. 김씨는 또“국악이 좋아 용암2동 주민센터 얼쑤예술단에서 장구를 치며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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