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활한 생산활동에 필수인력 됐지만 임금체불·폭력 여전
하루 12시간 근무는 예사, 열악한 환경서 노동력 착취

역사는 반복된다. 현대 국가의 경제발전도 시간차를 두고 반복된다.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도 한때는 개발도상국이었고, 한때는 지금의 후진국과 비슷한 형편이었다. 1960년대 한국정부는 실업문제와 외화부족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광부와 간호사로 대표되는 노동인력을 해외로 송출했다. 같은 시기 독일은 ‘라인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경제성장으로 국민들이 육체노동을 기피해 심각한 인력난을 겪고 있었다.

두 나라의 이해가 부합되며 우리나라는 독일로 인력을 송출했고, 1980년까지 7900여명의 광부와 1만여 명의 간호사가 독일로 넘어갔다. 30여년의 세월이 흘러 한국은 독일과 같은 인력부족현상을 겪게 됐고, 일자리를 찾아 한국으로 온 이주노동자는 80만명에 이른다. 이들은 임금 체불·폭력·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도 그들은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한국에서 일하기를 희망한다. 80만 이주노동자 시대에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그들은 어떤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지, 세계노동절을 맞아 우리 지역 이주노동자의 현주소를 살펴봤다. <편집자 주>

▲ 사진설명-이주노동자에 대한 국내기업의 노동력착취는 개선되지 않고 있지만 동남아권 젊은이들은 여전히 코리안드림을 꿈꾼다. 사진은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출국장에 들어서는 베트남 젊은이들.
지난 29일 오후 9시 베트남 하노이 공항, 눈물로 가족을 배웅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었다. 이날 저녁 한국으로 향하는 항공편은 모두 5편, 탑승객 가운데 상당수는 한국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이었다. 현지 언론매체를 통해 한국의 노동환경을 익히 알고 있는 이들은 가족을 부양하고자 출국장으로 나서는 남편과 아들의 뒷모습에서 쉽게 눈을 떼지 못했다.

산업인력관리공단에 따르면 2012년 12월 기준 국내에서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 수는 79만 1000여명에 이른다. 같은 기간 경제활동인구조사에서 나타난 국내 전체 취업자 수가 2511만 7000여 명인 것을 고려하면 전체의 3.2% 수준이다.

올해 3월 기준으로 도내에 거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 수는 8153명이다. 이 수치는 산업인력관리공단이 제공한 자료로 정식으로 외국인 취업비자(E9)를 받아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안건수 이주민노동인권센터 소장은 “고용허가제의 폐단에 의해 불법체류자로 분류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 수를 포함하면 도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는 2만명 이상 될 것”이라고 추산했다.

피해사례 집계조차 안 해
지역별로 살펴보면 음성군(2412명)이 가장 많았고, 진천군(1341명)과 청원군(1162)명으로 뒤를 이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7177명)이 가장 많았고, 농업(615명) 건설업(300명) 순이었다. 나라별로는 베트남(1509명) 스리랑카(966명) 인도네시아(707명) 순이었다.

비록 비전문분야에 편중되긴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주노동자의 도움 없이는 생산활동이 원활하게 돌아갈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이주노동자를 대하는 고용주를 포함한 한국인들의 태도는 어떨까. 안 소장은 “여전히 이주노동자의 노동권과 인권을 침해행위는 벌어지고 있지만 예전과 비교하면 폭행 등 극단적인 피해사례는 줄고 있다”고 설명했다.

산업기술연수제가 폐지되고 고용허가제가 시행되면서 송출 비리 등 일부 문제는 개선이 됐지만 부당한 노동력 착취는 여전히 자행되고 있다. 직장을 옮길 때 사유·횟수·기간을 제한하는 고용허가제의 독소조항 때문이다. 하지만 도내 사업장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피해사례는 집계조차 되지 않고 있다. 청주고용센터나 청주출입국관리사무소, 충북도 등 관계 기관 어느 곳도 파악하지 않고 있었다.

도내 사업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은 어떨까. 충청리뷰는 지난 28일 진천에 위치한 충북외국인이주노동자지원센터 한글교실에 참여한 이주노동자 20명을 대상으로 임금수준과 노동시간, 거주환경, 노동인권, 여가문화 등에 대해 간단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하루 평균 10시간 근무
설문 결과 임금수준은 노동시간과 비례했다. 한 관계자는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최저임금(시간당 4860원)을 지급한다고 보면 맞다. 현재 최저임금에 주휴수당을 포함하면 월 110만원 선”이라고 설명했다. 응답자 가운데 가장 적은 임금을 받은 사람은 90만원인 것으로 나타났고, 최고액은 200만원으로 나타났다. 응답자 대부분은 월 150만~180만원의 임금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밖에도 노동시간은 평균 10시간(점심시간 제외)인 것으로 나타났고, 어떤 응답자는 하루 12시간을 일하고, 또 다른 응답자는 쉬는 날이 없다고 응답하기도 했다. 현행법상 근로시간은 연장근무를 포함해 최대 52시간을 넘길 수 없도록 제한하지만 많은 이주노동자들은 이 같은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결과는 통계청이 지난해 처음으로 이주노동자 1만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12년 외국인 고용조사 결과’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이 자료에 따르면 주간 60시간 이상 일을 한다는 응답이 전체 응답자의 33.5%를 차지했다.

그래도 이들은 여전히 코리안드림을 꿈꾼다. 베트남 현지에서 만난 국내기업 관계자는 “중산층 노동자들의 월급이 200달러에도 미치지 못한다. 도시 노동자들도 100달러 수준의 급여를 받고 있고,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의 경우 그보다도 훨씬 낮은 수입을 얻는다. 많은 베트남 사람들이 한국에서 돈을 벌기 원한다”고 말했다.

1963년 파독광부 500명 모집에 4만 6000여명이 지원했던 그 시절 우리와 닮았다.

▲ 루루 강변에서 한국의 젊은 광부들, 뒷줄 맨 왼쪽이 최정규 씨.
“40년 전 독일은 우리처럼 대하지 않았다”
파독광부 최정규 씨가 전하는 독일인의 태도

독일 동포 미디어를 표방하는 베를린리포트(berlinreport.com)에 '아빠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연재칼럼을 게재하고 있는 최정규 씨는 1974년 정부의 파독광부 모집을 통해 독일에 정착한 재독동포다.

1974년 5월 9일 독일 땅을 밟은 그는 "기숙사는 박정희 대통령 방문 때 현대식으로 지은 2층 슬라브 지붕 건물이고, 방 하나에 3명씩 들어갔다. 방에는 세면대와 변소가 있고, 책상과 의자가 있었다. 한국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한 환경이었다. 숙식과 세탁, 청소는 기숙사 측에서 해준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일을 시작한 며칠 후 약 3개월분 월급(2000마르크) 정도를 대출해줘서 한국으로 송금했다”고도 기술했고 “지상교육은 광산에서 작업상 필요한 작업환경과 그 작업에 필요한 언어를 배우는 3개월 과정이었다. 교육시간에는 입항하는 것도 아닌데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가지 광부 작업복을 입고 있어야 했다”고 회상했다.

물론 당시에도 같은 민족을 등쳐먹는 브로커도 있었고, 경험이 없던 많은 노동자들이 크고 작은 부상과 후유증에 시달리기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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