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장이 노동자 강제추행 했지만 처벌없이 이적동의서로 끝나
통역 맡았던 자파르, “아시아 외국인은 인권도 없는가” 절규

▲ 우즈베키스탄 노동자들의 문제가 발생하면 어디든지 달려가는 자파르(30세, 유학생). 고국에서 약대를 졸업하고 한국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우연한 기회에 자국 노동자들이 한국에서 겪는 불합리한 차별을 목격한 뒤 인권지킴이 활동을 하고 있다.
자파르(30, 우즈베키스탄)씨는  동포 만수르(남, 가명)씨가 청주 공단의 모 사업장에서 겪은 일을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 다시 생각해 봐도 이해할 수도 없고 용납할 수도 없었다. 아무리 돈을 벌기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멀리 이곳까지 왔다지만 자국 동포들이 겪는 일상적인 차별에 분노를 멈출 수 없다.

사건은 지난해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청주대학교에서 석사 과정을 마치고 서울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유학생 자파르 씨는 청주 흥덕경찰서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내용은 통역을 맡아 달라 는 것. 자파르는 한국에 있는 자국 노동자가 어떤 어려움에 부딪혔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흥덕경찰서에 도착했을 때 그를 기다린 사람은 만수르 였다. 만수르 씨는 2012년 3월 ‘E9' 고용비자를 통해 한국에 입국했고 청주 산업단지 내 ’(주)○○‘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는 한국말을 거의 하지 못했다.

자파르 씨는 만수르씨가 경찰서까지 올 정도의 문제라면 폭력사건 밖에 없다는 것도 알았다. 그러나 만수르 씨는 말하기를 주저했다. ‘누구에게 맞았냐?’고 물어봐도 선뜻 말문을 열지 않았다. 만수르씨가 말 못할 사정이 있다는 것을 안 자파르 씨는 그를 데리고 경찰서에서 나왔다. 그리고 둘 만 있게 되자 만수르 씨가 말문을 열었다. 그는  ‘공장장으로부터 수차례 성폭행을 당했다’고 고백했다. "수치 스러워 죽고 싶다"며 만수르 씨는 눈물을 흘렸다.  자파르 씨는 충격을 받았다. 이슬람은 동성애를 가장 배척하는 것으로 알려진 종교다. 이슬람을 믿는 ‘무슬람’으로서 자파르 씨도 깜짝 놀랐다.

잔업·특근 안주며 성관계 강요
만수르 씨가 다닌 ‘(주)○○’는 전체 직원 20여명 가운데 이주노동자 4명이 고용돼 있는 회사다. 회사 안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숙식을 해결하는 기숙사가 있었고 주·야간 교대로 운영되기 때문에 2명씩 기숙사에 머무르는 식으로 운영됐다.

바로 이 기숙사에서 성폭력이 수시로 이루어졌다고 만수르 씨가 자파르 씨에게 털어 놓았다. 이 고백에 따르면  회사의 모 공장장은 기숙사에 들어와 다른 이주 노동자 한 명과 만수르 씨에게 "피곤하니 안마를 해달라"고 접근 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안마를 부탁하더니 이후에는 ‘오일’ 같은 것을 가지고와 전신마사지를 요구하는 식으로 강도가 점점 더 심해졌다. 이에 만수르 씨는 공장장의 요구를 거부했다.

그러자 공장장은 화를 내며 잔업과 휴일근로를  만수르씨에게는 시키지 않겠다고 협박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이주 노동자들이 만수르 씨와 대화하는 것조차 못하도록 압박을 넣었다고 만수르 씨는 자파르 씨에게 털어놓았다. 잔업과 휴일근로를 하지 못하자 그의 월급은 반 토막이 났다. 한국에 들어올 때 자국 브로커에게 700만원을 건넨 만수르 씨에겐 커다란 타격이었다.

돈을 벌어야만 했던 만수르 씨는 "오일마사지를 해 달라"는 공장장의 요구에 응했다. 저항능력을 상실한 만수르 씨를 보며 "공장장은 더욱 과감해졌고 결국 성폭행까지 당할 수밖에 없었다"고 만수르 씨는 자파르 씨에게 고백했다.       

피해자‘직장을 옮기게만 해 달라’
만수르 씨와 자파르 씨의 인연을 맺어준 사람은 흥덕경찰서 보안과 외사계 업무를 담당하는 김태수(40) 경장이다.  당시 김 경장은 당시 만수르 씨의 사건과 관련해 공식적인 업무를 부여 받은 것은 아니었다. 단지 민원실에서 만수르 씨가 한국어를 전혀 못하자 외국인 관련 업무를 수행하는 김 경장에게 협조 요청을 했고 그래서 나서게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흥덕경찰서에서 만난 김 경장은 당시 사건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김 경정은 이 사건을 가해자를 처벌해 달라고 공식 접수된 사건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통역을 맡은 자파르 씨로부터 전체적인 내용을 들었지만 친고죄에 해당하는 사건의 성격상 고소가 없으면 경찰이 수사에 나 설수는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당시 만수르 씨는 가 원했던  것은 오직 ‘다른 직장으로 옮길 수 있도록 동의서를 작성해 주는 것’ 뿐이 었다는 것. 이 것에 대해선 김 경장과 자파르 씨의 말이 일치한다.

이에 김 경장은 본인이 수행하는 직접 업무 영역은 아니지만 회사와 만수르 씨를 오가며 적극적인 중재 역할을 진행했다. 가해자로 지목된 당사자는 관련 사실을 부인했고 회사는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이적 동의’를 거부했다고 김 경장은 당시를 회상했다.

그리고 한 달여의 시간이 지난 뒤에도 회사는 별 입장변화가 없었다. 김 경장은 마지막으로 이 사건의 성격과 파장을 회사에 설명했고 그때서야 회사는 마지 못해 만수르 씨가 다른 회사로 이적을 허용하는 동의서를 보내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자파르 씨와 청주 이주민노동노동인권센터, 충북외국인이주노동자센터 관계자들 모두 김 경장의 적극적인 중재가 없었다면 이런 결과는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그의 노고를 인정했다.

하지만 이 사건의  가해자로 지목된 공장장이 사법처리를 받지 않은 것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이에 대해 김 경장은 여러 정황으로 볼 때 만수르 씨의 주장은 상당한 신빙성이 있는 상태였지만 그가 끝내 고소장을 접수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찰이 강제로 수사 할 방법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자파르 씨는 무슬람으로서 율법을 어겼다는 죄책감에 빠진 만수르 씨가 자포자기인 상태에 빠져 있었고, 결정적인 증거였던 동영상을 삭제한 상태여서 적극적인 대응이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가해자로 지목된 ‘(주)○○’의 모 공장장은 여전히 재직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기숙사 90% 이상이 컨테이너 개조, 입구 브로커 비용 여전
“머슴살이 1년 월급이 쌀 열 가마 정도 였는 데  쌀 열 가마를 내고서야 독일로 떠 날수 있었다” 1974년 한국과 독일 정부의 협정에 의해 파독 광부로 갔던 최정규 씨가 당시를 회고하며 쓴 파독광부50년사 ‘아빠의 이야기’에 나오는 대목이다.

시간이 50년 흐른 지금 외국인 노동자들도 한국에 들어 오기 위해선 여전히 웃돈이 오고 갔다.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외국인 노동자는 ‘지난 해 까지는 600만원이었는데 올해는 700만원 정도로 올랐다’고 했다. 7년 전 입국한 파키스탄 노동자는 당시 ‘브로커에게 1000만원을 건넸다’고 털어놨다.

본지는 지난 29일 진천에 있는 충북외국인이주노동자지원센터 한글 교실에서 이주노동자 2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20명중 17명이 회사로부터 기숙사를 제공받고 있다고 답했다. 반면 기숙사의 건축형태로는 16명이 컨테이너를 개조한 가건물이라고 답했다. 난방시설조차 제공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와는 달리 이날 설문에서는 1곳을 빼곤 난방시설이 설치돼 있다고 답했다.

1일 평균 근무시간이 8시간이라고 답한 이주 노동자는 2명에 불과해 대부분 장시간 노동을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 회사 관리자로부터 신체?언어 폭행을 경험한 적이 있다는 응답도 2명에 불과했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