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주의 동의 없으면 이적 불가' 독소조항 부작용속출
'직업선택의 자유‧강제노동 금지 침해' 반인권적 제도 비판

▲ 파키스탄 국적의 이주노동자 파키르, 나제르, 카왈리, 라쉬드 씨가 고용센터에 사업장변경 허가신청 서류를 접수한 뒤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다. 이들이 3개월 이내에 취업을 하지 못하면 한국을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모든 지식(철학·법학·신학·의학)을 얻은 파우스트는 여전히 부족함을 느꼈다. 영적인 계시를 얻기 위해 신의 지령까지 부르지만 결국 실패 하고 만다. 낙심 하던 파우스트는 ‘검은 개’로 분장한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 거래를 한다. 파우스트가 젊음을 얻는 대신에 미래의 영혼을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팔은 것.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외국인 이주 노동자(이하 이주노동자)는 미래의 영혼이 아닌 현재의 영혼을 사고 판다. 형식은 고용허가제. 이것은 외국인 노동자와 한국에 있는 기업들 사이에 ‘고용 계약’을 맺어 준다. 이들은 고용허가제의 울타리 안에서 ‘한국에서 일할 기회’와 부대조건에 관해 서로 서명한다. 개개인간에 이루어지는  계약서에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이나 ‘영혼’을 사고판다는 내용은 물론 없다. 단지 외국인노동자는 ‘사업주의 동의 없이 직장을 이전 할 수 없다’고 명시 돼 있을 뿐이다.
그러나 곳곳에서 고용허가제의 부작용이 나타났다. 백 명의 경찰이 한 명의 도둑을 잡는 것이 쉽지 않듯 선의의 제도라고 하더라도 악용하고자 하는 사람에겐 틈이 생기는 법이다.

보상 못 받아도 떠나야
2003년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서 일했던 스리랑카  노동자 시란(36세)은 2006년 비자를 받아 다시 한국에 입국했다. 시란 씨는 경기도 안산에 있는 ‘○○기업사’에 입사해 지난해 11월까지 근무했다. 냄새가 심한 여러 가지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공장 환경으로 인해 시란 씨는 심한 피부 질환을 앓았지만 이 회사는 병원에 보내주지 않았다.

일하는 도중 한국 직원들은 수시로 시란에게  “개××야, ○○놈아” 같은 욕을 하며 엉덩이와 허벅지를 발로 찼다. 그러던 중 날카로운 금속 파편이 다리에 박히는 사고를 당했고 세 차례 수술을 받았다.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시란은 사직서를 제출했으나 회사는 밀린 월급과 퇴직금중 일부만 지급했다.

병원 치료비와 생활비, 그리고 고국에 있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시란 씨는 성하지 않은 몸을 가지고 ‘△△산업’이라는 회사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시란은 프레스를 사용하는 작업과 싱크대를 컨테이너 위로 들어 올리는 일을 했다. 임금은 정해진 날짜에 꼬박 꼬박 나왔고 시란 씨는 만족했다. 하지만 불행의 신은 시란을 가만두지 않았다. 프레스 작업 도중 그만 시란의 왼쪽 손가락 세개가 절단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시란은 근로복지 공단에 산업재해보상금을 신청했고 공단은 이를 인정해 시란에게 장애보상금 1000만원을 지급했다. 그러나 시란 씨 에겐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다. 노동 능력을 상실했고 잘린 손은 지금까지 아프다. 회사를 상대로 2000만원의 민사소송을 제기했지만 소송은 언제 끝날지 모른다. 병원에서 퇴원한 뒤 약 8개월 정도를 친구 기숙사에 머물며 하루 한 끼만 먹고 버텨왔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고용비자가 만료됐다. 시란은 이제 불법 체류자가 됐다. 하지만 이 소송이 끝날 때 까지 시란 씨는 절대로 돌아 갈 수가 없는 상황이다.

취업 못해도 불법 체류자 전락
29일 파키스탄에서 온  파키르(30. 가명), 나제르(35. 가명), 카왈리(40. 가명), 라쉬드(30. 가명) 4명의 노동자는 노동부 청주고용센터(이하 고용센터)를 찾았다. 이들이 고용센터를 찾은 이유는 새로운 직장을 구하기 위해서다. 괴산의 모 업체에 다니고 있던 파키르 씨등 4명은 지난 25일 회사로부터 해고통보를 받았다. 난데 없는 통보였지만 해고 배경은 단순했다.

이 회사에 입사한지 2개월 정도 된 조 모씨가 파키르 씨를 폭행 했고, 파키르 씨가 24일 괴산 경찰서에 이 사실을 신고 한 것. 조 모씨와 회사 관계자는 경찰서에 찾아와 파키르 씨에게 사과했지만 그때 뿐 이었다. 경찰서에서 나와 회사에 돌아오니 회사 고위 관리자는 파키르 씨와 카왈리 씨에게 ‘당장 그만두라’고 통보했다.  이어 다음날에는 전체 4명의 파키스탄 노동자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길게는 4년부터 적게는 2년 이상 일을 했던 파키르 씨등은 회사 관리자에게 사정을 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26일에는 회사 직원까지 동원 해 ‘기숙사에서 나가라’고 압박했고 기숙사의 전기까지 끊었다.

오갈 데도 없는 이들은 급한 대로 하루 숙박료가 3만원인 모텔을 얻었다. 그러나 이들의 마음을 급하게 하는 것은 당장의 주거문제가 아니었다. 바로 3개월 이내에 일할 곳을 찾지 못하면 한국을 떠나야 하는 고용허가제의 독소조항이었다.  그런데 새로운 직장을 구하기 위해 파키르 씨등이 할수 있는 일은 고용센터에 서류를 접수하는 것 밖에 없었다. 개별 구직활동은 일체 할 수 없다. 이들을 고용할 기업으로부터 통보만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이들이 할 수 있는 구직활동의 전부다.

이런 상황에서 파키르 씨와 동료들이 당했던 폭행과 해고에 대한 부당함을 호소 할 수도 없다. 노동부에 억울함을 호소 할 수도 있지만 기존 회사가 보복 조치로 적극적으로 취업을 방해하는 만약의 상황이 발생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용허가제' 란?
국내 인력을 구하지 못한 기업이 적정규모의 외국인 노동자를 합법적으로 고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다.  2003년 7월 31일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했고 기존의 산업연수생제도를 대체해 2004년부터 시행됐다. 

외국인 노동자는 최초의 근로개시를 한 사업장에서 계속 근무하는 것이 원칙이다. 다만 사업장의 휴폐업, 임금체불 등으로 인해 정상적인 근로관계 지속이 어렵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서만 예외적으로 사업장 이동을 최대 3회까지 허용한다.

노동부는 2012년 8월 1일부터 ‘외국인근로자 사업장 변경 개선 및 브로커 개입 방지 대책’을 시행했다. 이에 따라 이주노동자에게 어떠한 사업장 명단도 제공되지 않는다. 또 이주노동자가 사업장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주가 이주노동자를 선택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고용노동부 내부지침도 시행 됐다.

사업장의 임금, 노동시간, 노동강도, 안전, 휴가 등 각종 근로조건이 열악할 때, 그리고 이러한 문제를 집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마땅치 않을 때 노동자가 개인적으로 선택하는 방법 중 하나는 사표를 내고 사업장을 옮기는 것이다. 하지만 이주노동자에게는 사표는 그림의 떡이다.

이주노동자가 사업장변경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추천하는 회사로부터 전화가 걸려오기를 24시간동안 오매불망 기다리는 것 외에는 어떠한 구직노력도 할 수가 없다. 바로 이런 조항 때문에 노동 인권의 가장 중요한 대목인 ‘직업 선택의 자유’와 ‘강제 노동 금지’ 조항을 침해하는 반인권적인 제도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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