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 북문로 청주역 옮기고 4차선 상당로 건설하면서 길맥 트여

“1길은 사람이나 동물 또는 자동차 따위가 지나갈 수 있게 땅위에 낸 일정한 너비의 공간이다. 2.길은 물위나 공중에서 일정하게 다니는 곳이다. 3.길은 걷거나 탈 것을 타고 어느 곳으로 가는 路程이다. 4.길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개인의 삶이나 사회적 역사적 발전 따위가 전개되는 과정이다. 5.길은 사람이 삶을 살아가거나 사회가 발전하는데에 지향하는 방향 지침 목적이나 전문 분야이다.” 이것 말고도 길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서너가지가 더 있다.

근현대의 여러가지 변화가 길의 너비 변화와 길이 변화 등에 긴밀히 엮여져있고 넓고 새로운 길의 개척은 틀림없이 생각지도 못했던 분야의 변화를 만들어 내었다. 현대인의 빠른 걸음걸이까지도 그러한 결과물이 아닐까? 어릴적부터 느릿느릿 걸었던 나는 “이 걸음걸이 때문에 틀림없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뒤처지고 말거야”하는 조바심도 생겨난 것 같았다.

▲ 옛 철도 건널목 있었던 청주시 북문로. 이곳은 1921년부터 1968년까지 47년 동안 조치원에서 출발, 오송~청주역을 거쳐, 충주로 향하는 충북선 철길이었다. / 육성준 기자 eyeman@cbinews.co.kr

70년대 주거지역 철로 옮기고 새 길 만들어

청주 길. 1960년대 중반부터 새로운 외곽주택지가 여기저기 생겨나던 1990년대까지 30년동안 시가지 한가운데를 지나던 철길이 걷히고 새로운 길들이 생겨났다. 1960년대 후반, 육거리부터 내덕7거리까지 간선도로라고 불리는 4차선도로가 건설되었다.

시청서쪽편의 좁은 2차선도로를 대체할 남북 관통도로였는데 이 넓은 도로는 원시적 포장공사방식으로 수십명의 인부가 모래와 자갈을 삼태기에 담아 뿌리면 그 뒤를 따라 로울러가 다지고 그 위에 끓인 아스팔트를 뿜어 굳히는 재래식 포장공사였다. 따라서 공사기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그래서 길가에 새로 심겨진 플라타너스 가로수 잎은 언제나 뽀얀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새동네와 정하로 갈라지는 내덕삼거리에서 상당공원근처에 있는 상공회의소건너편까지 거리는 수십년동안 기찻길이어서 뇌리에는 석탄가루가 날리던 ‘늘 까맣던 거리’로 기억된다.

▲ 1960년대 청주시청 후문 도로포장공사.

상당로 4차선 확장 반대, 6차선 아쉬움 남아

당시에는 새로 만들어지는 4차선(상당로)이 비현실적으로 넓다며 “예산낭비다” “ 안목이 없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하기는 1980년까지 청주에는 자가용차량이 매우 드물어 한산하기까지 하였으니 그런 생각도 큰 무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1970년 6월무렵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의 전교생이 시청으로 몰려가 시위를 벌인 사건이 있었다. 3학년이었던 우리들 몇명이 주도하여 학교앞의 고약한 냄새를 풍기던 닭장을 철거해달라며 요즘의 환경시위를 한 것인데 도로공사 마무리를 위해 여기저기 길 위에 쌓아놓은 자갈더미 옆으로 줄을 맞추어 앉아있던 학생들이 눈에 선하다.

당시 조선일보사회면에 “전국최초의 용기있는 환경데모”라며 큼지막하게 기사가 났던 것도 생각난다. 우리들은 시장님의 철거약속을 받아내고 방아다리를 돌아 무심천 좁은 제방을 걸어 학교로 돌아갔었다. 그때 시장실에 함께 들어갔던 나와 내 학우들중 하나는 지금 시장실에 근무중이다.

60년대 후반까지 버스달리던 ‘성안길’

청주의 길 중 내게 가장 소중한 길은 역시 성안길이다. 오랜 세월 수아사로 불리던 실가게를 중심으로 북쪽으로는 중앙로라 불리고 남쪽으로는 읍성도시의 안쪽 길이라 하여 성안길이라고 이름 지어진 이 길을 어린 시절엔 하루도 빼지 않고 걸어다녔기에 골목골목을 손바닥처럼 잘 알았던 곳이었다. 이 길은 1960년대 후반까지 시외버스와 시내버스가 다녔던 2차선 비포장도로인데 한겨울이면 눈이 내려 빙판이 된 이 길에서 버스꽁무니에 매달려 미끄럼을 타던 기억까지 새로운 성안길이다.

시외버스는 소방서와 청주경찰서가 있던 주네쓰앞을 지나 서문시장앞의 차부에 사람들을 내려놓고 손님을 태운 뒤 좁은 사직동길을 거쳐 충북대정문앞길을 지나 조치원으로 갔다.

시가지 철도 건널목 차단기 추억 아련해

간선도로(상당로)가 생기고 공단 오거리에서 사직동과 상당공원을 직선으로 잇는 큰길이 생길 무렵 기차가 다니던 철길은 청주의 역사에서 완전히 밀려나게 된다. 중앙로 입구쯤엔 길위에 새겨놓은 철길과 철도안내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기차가 지나가면 간수가 행인들을 막아서고 긴 막대로 만든 건널목 차단기가 내려오고 천천히 묵직한 쇳소리를 내며 눈앞을 지나갔던 어린 시절의 기차! 기차는 시청근처에 있던 청주역이 외곽으로 밀려나는 동안 청주사람들의 기억에서도 멀어진 거리만큼 잊혀져 갔다.

오래된 외국도시의 지상철길들이 지하철이 되고 중요한 교통수단으로 남아있는 것을 보면서 청주가 철도를 쉽게 버린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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