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학차 안전 ‘세림이법’…정치권은 무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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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학차 안전 ‘세림이법’…정치권은 무관심
  • 이재표 기자
  • 승인 2013.05.02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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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8대 국회에서 법안 발의하고도, 번번이 이유 없는 폐기
정우택 의원 법률개정안 발의, 오제세 의원은 “내용이 뭔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학원, 초등학교 등이 운행하는 통학버스에 원아나 학생들이 치여 숨지는 사고가 잇따르고 있으나 사고를 근본적으로 방지할 수 있는 관련법 제정을 정치권이 외면하고 있다. 국회에서 관련법을 발의하고도 상임위원회에 상정도 하지 않은 채 폐기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3월26일 오전 9시10분쯤 청주시 흥덕구 산남동의 한 어린이집 앞 도로에서 25인승 통학버스 뒷바퀴에 이 어린이집 원생 김세림(4)양이 치여 숨졌다. 버스에는 운전기사 정 모씨 외에 보조교사도 타고 있었지만 사고를 막지 못했다.

▲ 어린이 통학차량에서 안전사고가 잇따르고 있으나 정치권이 관련법 개정을 외면하고 있다. 법안을 발의해도 번번이 폐기되는 것이 현실이다. 19대 국회 들어서는 정우택 의원이 세림 양 사고에 앞서 법률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으나 아직 상정되지 않았다(사진은 기사의 특정사실과 관련 없음). /충청리뷰DB

같은 유형의 사고는 지난해 9월 이후 청주에서만 벌써 3번째다. 지난해 9월3일에는 청주시 흥덕구의 한 초등학교에 다니는 1학년생이 학교 밖으로 나가던 25인승 통학버스에 치여 숨졌다. 두 달 뒤인 11월21일에는 청주시 흥덕구 개신동의 한 아파트단지 내 도로에서 초등학교 1학년 여학생이 음악학원 차량 문짝에 옷이 낀 채 수십 미터를 끌려가다가 바퀴에 치여 숨졌다.

대부분 승·하차 확인의무를 다하지 않아서 발생한 사고들이다. 실제로 개신동 사건의 경우 당시 운전기사가 경찰진술에서 “차에서 내려 학생이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봤다”고 주장했으나 CCTV 판독결과 차에서 내리지도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럴 경우 운전자들은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으로 형사 처벌을 받게 되지만 학교나 학원 책임자는 처벌조차 받지 않고 있다. 승합차의 경우 7만원, 승용차는 4만원의 범칙금이 부과되는 것이 전부이다. 결국 학원·학교 차량이 사고를 내도 운전자 개인의 과실로 사건이 마무리되는 셈이다.

추가비용 발생이 폐기이유?

정치권이 이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17·18대 국회에서도 관련법안이 여러 건 발의됐으나 소관 상임위에 상정도 되지 않고 이유 없이 폐기돼왔을 뿐이다. 문제는 이유 없이 폐기된 그 내면이다. 단순히 뒷전으로 밀렸다기보다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운영자들의 편에 선 의혹이 짙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18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 속기록에 따르면 전문위원이 “신고를 의무화할 경우 자동차 한 대당 200만원 이상의 추가비용이 발생하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고, 경찰 측은 신고의무화 방안보다 운전자의 확인 의무를 강화하는 안에 힘을 실었다. 결국 여야 의원들이 이에 동의해 법안은 폐기되고 말았다.

19대 국회 들어서는 정우택(청주 상당·새누리) 의원이 3월15일 통학차량의 안전을 강화하는 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는 세림이 사건이 일어나기 약 열흘 전이다. 정 의원실 관계자는 “지난해 11월 개신동 사건이 발생한 것과 관련해 정 의원의 지시로 2월부터 발의를 준비해왔다. 안전의무 규정을 반복적으로 이행하지 않는 교육시설에는 운영정지나 인가·등록 취소 등 행정 벌을 내리고 운전자도 처벌하는 내용의 ‘도로교통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 그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어린이가 차량에서 내릴 때 보도 등 안전한 장소에 도달한 것을 확인토록 의무화했고 이런 의무규정을 지키지 않은 운전자에겐 1년 이하 징역이나 3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도록 했다. 통학버스 안전운행 교육을 받지 않은 운전자나 교육기관 운영자에게 과태료를 부과하는 조항도 신설했다”며 “법안을 발의한 뒤 세림이 사건이 발생해 더욱 안타까웠다”고 밝혔다. 이 법률안은 4월 국회보에 의해 ‘이 달의 발의 법안’으로 선정됐으나 아직 안전행정위원회에 상정되지는 않았다.

정 의원의 대표 발의에도 불구하고 세림이가 살았던 청주 흥덕갑 지역의 오제세(민주) 의원은 내용조차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오 의원은 충청리뷰와 전화통화에서 “세림이 사건은 알고 있다”면서도 “법률개정안의 내용이 뭔가? 어떤 것이 안전에 도움이 되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오 의원은 또 “원장들은 ‘유치원이나 학원에서 직접 차량을 운행하고 운전기사를 고용할 경우 오히려 책임의식이 소홀해질 수 있다’고 하더라. 지입차주들은 자기사업이기 때문에 책임감이 더 크지 않겠냐”고 되물었다. 그러나 이는 지입차량 운행 자체가 불법이라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산남동 주민 박 모씨는 “세림이법 제정을 추진하자는 서명운동에도 참여했다. 그러나 정치권이 단순한 무관심을 넘어 유치원, 어린이집 운영자들만 두둔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버스에 노란색 칠하는 게 전부가 아닙니다”
  대통령에게 눈물의 편지 쓴 세림양 아버지 김용철씨

피어보지도 못하고 진 고(故) 김세림의 이름이 언론에 알려진 것은 세림양의 아버지 김용철씨가 이른바 ‘세림이법’ 제정을 촉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김용철씨는 4월8일 박근혜 대통령에게 피 끓는 부정(父情)을 담아 편지를 보냈다. 통학차량에 대한 안전규정을 권고사항으로 정해놓은 것만으로는 이같은 사고의 재발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김씨는 편지에서 “의사선생님이 안내해주는 곳으로 갔을 때 사망했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기의 몸은 아직도 따뜻한데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중략) 숨을 쉴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세림이가 아른거려요. 부디 아이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꼭 도와주세요”라고 호소하고 있다.

김씨가 호소하는 것은 아이를 살려내라는 것도 아니다. “사고 후 얼마나 차량운행이 부실한지 이런 사고가 자주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됐고, 관련해 발의한 법안이 상정조차 되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김씨는 “지금 이대로라면 다시 아이를 키우는 것도 두려울 것 같다”며 관련법의 조속한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김씨는 이번 사고로 세림양 외에도 아내의 태중(胎中)에 있던 둘째를 유산하는 슬픔도 겪어야했다. 

김씨는 충청리뷰와 전화통화에서 “지인 등을 통해서 1만명 서명을 받았고 처남과 처제가 인터넷을 통해 5000명 넘게 서명을 받았다. 머뭇거리는 동안 또 다른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정치권은 제발 서둘러 달라”고 주문했다.

김씨는 ‘법이 어떤 내용으로 개정됐으면 좋겠냐’고 묻자 “누굴 힘들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사고를 낸 어린이집도 문을 닫았다. 실무적인 것은 관계자들이 더 잘 알 것이다. 버스에 노란색을 칠한다고 사고가 예방되는 게 아니다. 원장이나 인솔교사들도 사고 발생 시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법을 강화한다면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더욱 신경을 쓰지 않겠냐”고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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