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대 앞 사회과학서점 ‘민사랑’ 22년째 운영하는 최맹섭씨
인터넷대형서점들이 벌이는 혈투에 출판사·서점 줄줄이 도산

다시 책을 찾아서-사회과학서점 민사랑

▲ 민사랑에서는 과거 사회과학서점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지금은 인문학서적의 비중이 높은 서점이다. 민사랑 최맹섭 대표.

서울에 교보문고, 종로서적이 있었다면 청주에는 일선문고가 있었다. 43년의 역사를 지닌 일선문고가 2012년 10월 문을 닫았다. 이런 마당에 사회과학전문서점이 가당키나 하다는 말인가? 물론 청주에 정통 사회과학서점은 없다. 민주화운동이 절정을 이루던 1980년대에 무심천이라는 서점이 있었지만 1990년대 중반 문을 닫았다. 지역의 운동권 5,6명이 바통을 이어받으며 릴레이로 운영을 했지만 시대의 흐름을 이겨내지 못했다.

그나마 사회과학서점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곳이 충북대 정문 앞 ‘민사랑’이다. 이름에서부터 냄새가 난다. 민사랑 한 구석에는 그 옛날 책들이 일부 남아있다. 1990년에 문을 연 민사랑을 1991년 인수해 22년째 운영하고 있는 최맹섭(50)씨는 “지금 사회과학서점을 특화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주인의 생각과 고객들의 취향에 따라 특정분야 책들의 비중이 높은 경우는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본다면 민사랑은 인문학서적의 비중이 높은 경우에 해당한다. 

최씨는 또 “소장가치가 있는 책은 반품하지 않고 남겨둔다”고 덧붙였다. 서가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쓴 <국가보안법연구>를 빼보았다. 1997년에 출간된 책의 가격은 4000원이다. 물론 오래된 책도 정가대로 판다.

문제는 새 책도 정가대로 팔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터넷 대형서점 얘기다. 가격인하 과열경쟁을 막는다며 2003년 2월부터 시행에 들어간 출판 및 인쇄진흥법이 문제였다. 신간은 10%, 구간은 할인 폭을 자율화하면서 인터넷서점들의 출혈경쟁이 시작됐다. 현재 신간의 기준은 18개월 이내다.

최씨는 “중소출판사, 오프라인서점 가릴 것 없이 생존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출판사의 마진이 10% 안팎, 서점마진이 15~30% 선인데 인터넷서점들이 요구하는 수준에 가격을 맞추려면 출판사는 원가 이하로 납품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밑지고 팔아야할 이유가 있을까? 최씨는 “출판사들이 신간을 공급해야 하다 보니 울며 겨자 먹기로 구간을 원가 이하에 납품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최씨는 100% 정찰제를 실시하고 있는 프랑스를 도서유통 선진국으로 꼽았다. 도서할인이 결국 책값의 거품을 만들고 인터넷서점들끼리 혈투를 벌이면서 6000억원이 넘는 매출에도 불구하고 적자에 시달리는 것이 우리나라 대형 인터넷서점들의 현주소다.

▲ 민사랑은 소장가치가 높은 책들을 반품하지 않고 판매 중이다. 세월이 흘러도 그 책값은 오르지 않는다.
이런 틈바구니에서 동네서점들이 살아남는다는 것은 사실상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청주서점상조합에 등록된 서점은 현재 75군데다. 조합 관계자는 “중고등학교 앞에 있는 참고서판매점까지 포함한 수치다. 10년 전에도 상황은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때는 120군데가 넘었다”고 말했다.

민사랑이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서점의 희소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운동의 추억’을 떠올리며 꾸준히 찾는 단골들이 있기 때문이다. 최씨는 “1991년 소비에트연방이 붕괴되고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사회과학서적을 찾는 사람들이 급속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도서를 종합적으로 취급하면서 전성기를 누리기도 했지만 충북대 중문 상권이 일어나면서 정문 상권은 예전만 같지 않다”고 밝혔다.

사회과학전문서점이던 시절과 관련해 최씨에게는 어떤 추억이 남아있을까? 최씨는 “노태우 정권 말기만 해도 경찰이 수시로 서점에 드나들었다. 압수목록을 들이대며 책을 압수하고, 경찰에 불려가는 일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그 압수목록이라는 게 제목만 보고 만든 것 같았다. 마르크스라는 4글자만 들어가면 모조리 가져갔는데, 오죽하면 <마르크스 비판서>라는 책도 빼앗았겠는가?”라며 웃었다. 그러고 보니 민사랑의 22년에서는 우리가 살아온 시대를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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