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표 편집위원

무겁지 않은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아니 단순히 가벼운 것이 아니라 따뜻하면서도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려한다. 4월22일 국립청주박물관에 다녀오는 길에 시내버스를 탔다. 상당산성과 청주체육관을 순환하는 규모가 조금 작은 버스였다.

버스가 대성동 우성아파트 앞 정거장을 출발하려할 때 초등학생 하나가 아저씨 “잠깐만요”를 외치며 숨이 턱에 차도록 달려와 탑승에 성공했다. 그것만으로도 버스 안에 웃음이 감돌았다. 아이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셔츠 밖으로 뱃살의 출렁임이 느껴지는 비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가방을 뒤지던 녀석이 “으아, 지갑을 놓고 왔네”라고 소리치며 난처한 표정과 함께 몸짓으로 곤란함을 표현했다. 그 순간 버스 안에 웃음이 빵 터졌다. 후사경에 비친 기사아저씨도 웃고 있었다.

잔돈을 꺼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바로 앞자리에 앉은 아저씨가 서둘러 자신의 교통카드를 꺼내 아이에게 건넸다. 아이의 얼굴에 희색이 돌았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카드인식기가 체크를 거부했다.

인식기에서는 “어디까지 가십니까”가 연신 흘러나왔다. 아마도 이미 아저씨의 승차가 확인된 상황에서 다시 카드를 들이대니 오류가 발생한 것이리라.
후사경으로 기사아저씨의 표정을 살피니 무임승차를 용인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앞자리 아저씨가 이번에는 2000원을 아이에게 건넸다. 초등학생 요금은 550원인데, 아저씨의 손이 컸다. 아이가 돈을 거슬러 올 거라는 나의 예측은 빗나갔다. 기사아저씨는 버스비를 받지 않았다. ‘됐다’는 의사표현은 고갯짓과 웃음이었다. 그러고 보니 기사아저씨는 승차하는 손님들에게 일일이 “어서 오세요”라며 인사를 했었다. 예기치 못한(?) 상황이 당황스러워 답례 없이 승차했던 상황이 다시 떠올랐다.

앞자리의 아저씨도 다시 보게 됐다. 푸른색 모자를 눌러썼지만 주름살이 깊게 패인 초로의 신사였다. 가끔씩 창밖을 쳐다보는 아저씨의 옆모습을 자꾸 관찰하게 됐다. 유리창에는 엷은 미소가 흐릿하게 비쳤다.

직업근성은 어쩔 수가 없다. 스마트폰을 꺼내 버스 안 풍경을 ‘도촬(盜撮·몰래 촬영의 속어)’했다. 그리고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번호판 4자리만 외웠다. 전체를 다 기억하려다가는 절반도 기억하지 못할 수 있다는 염려 때문에…. 우진교통 5045번 버스였다. 속보를 올리고 싶었다. 페이스북에 <5045번 버스의 선물>이라는 제목으로 사진과 함께 글을 올렸다. 몇 달 전 극장가를 강타한 <7번방의 선물>을 패러디한 제목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고 5045번 버스의 기사와 승객들을 격려하는 댓글이 달렸다. 그러고 보니 억지로 웃겨주는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지 않고서야 웃을 일이 많지 않은 시절이다. 소리 내어 웃는 일이 생기는 것도 좋겠지만 무의식적으로 입가에 웃음을 짓게 하는 일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세상이 더 좋은 세상이 아닐까?

대한민국 국민들은 분단국가라는 사실만으로도 30% 정도 가중된 스트레스를 안고 살아간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지역에서는 흔치 않은 시사주간지 기자로 살면서 ‘비판하지 않으면 존재가치가 없다’는 명제를 되뇌노라면 독자들도 골치가 아플 거라는 생각이 들 때가 적지 않다. 이번 문화동편지는 가볍게 같이 웃자는 심정으로 독자들께 부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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