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의 편집국장

‘원흥이’ 문제가 숱한 논란과 담론을 쏟아내며 이 사회를 들끓게 하고 있다.

환경보존론과 개발론 간의 갈등양상을 보이던 이 문제는 성직자들이 원흥이 방죽을 살리기 위한 단식투쟁에 나선 것을 계기로 생명을 건, 생명을 위한 성전(聖戰)의 의미로 확산하며 지역최대 환경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이 운동에 두꺼비가 상징으로 부각된 지 오래 임은 물론이다.

이 때문에 한편에서 “천연기념물도 아닌 두꺼비의 헌 집을 지켜주기 위해 인간이 살 새 집을 언제까지 양보해야 하느냐”는 견해를 비롯해 “산남 3지구에 대한 개발계획을 입안할 때부터 문제를 삼든지 했어야지 분양까지 마친 이제 와서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는 현실론을 촉발하고 있는 원흥이 문제는 더 이상 기존의 사고 틀로선 해결책을 찾을 수 없는 뜨거운 감자로 달궈지고 있다.

물론 이 문제 해결을 위해선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과 같은 매우 구체적이고 기술적인 접근이 가능할 것이다. 당장 원흥이 방죽을 보호하기 위해 추가 보호구역을 확보하려면 최소한 수십억원의 부담을 누군가는 걸머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같은 미시적 문제 보다 좀 더 근본적인 물음, 즉 요즘 유행하는 표현으로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새로운 시각을 가질 때가 됐다는 생각이다.

본론부터 말하자면 절대 유한한 자원인 좁은 땅덩어리를 토지공사와 주택공사라는 거대 공기업체가 경쟁적으로 개발, 공급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라는 문제에 깊은 고민이 있어야만 한다는 점이다.

두 공기업의 통합문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개혁과제로 포함돼 왔는데, 이는 노무현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참여정부 역시 이 문제에 슬그머니 손뗀 지 이미 오래다.

충청리뷰는 그동안 “토공과 주공이 경쟁적으로 토지개발에 나서다보니 청주를 중심으로 막개발이 이뤄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문제의식을 표명해 왔다. 북문로 수동 우암동 등 구시가지 뿐 아니라 푸른 숲을 밀어내고 시멘트 숲이 들어찬 용암 2지구까지 탐욕스럽게 뻗어만 가는 신시가지에 밀려 텅텅 비어가는 현실을 얘기했다. 강남에 빛바랜 강북을 재개발하려는 서울시의 ‘강북 프로젝트’를 부럽게 상기시키기도 했다.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인간과 도시가 유리되지 않고 쾌적하고 아름답게 공존할 수 있을까 하는 화두를 충청리뷰는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일반 생물체처럼 그 스스로 살아있는 유기체가 돼 버린 공기업들이 자기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일거리’(토지개발)를 경쟁적으로 만들어 나가야만 제3자에게 존재가치를 확인시킬 수 있다는 ‘당연한 강박관념’을 근본적으로 거두어들이게 하지 않는 한 이 문제는 결코 해결될 수 없음을 말하고 싶었다.

물론 청주시가 어떤 미래도시를 설계하고 있는 지 확고한 철학만 갖고 있다면 걱정할 ‘꺼리’도 없지만 현실이 그렇지 못함은 이미 목격하고 있는 바다.

그런 점에서 “원흥이 방죽을 지키려는 운동은 단순히 두꺼비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생명에 대한 경외와 존중을 키우고 결국 인간이 어떻게 살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라는 김승환 교수의 지적-CBinews ‘우리 사는 세상’에 띄운 글-은 적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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