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터에도 마음이 끌린 ‘안개속의 풍경’

이은규
인권연대 숨 일꾼

언제였더라. 1995년? 가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당시 나는 활동하던 사회단체에서 엉덩이에 뿔난 못된 송아지처럼 이리저리 치받으며 세상과 운동선배들에게 날을 세우느라 심신이 지쳐있었다. 관계에 대한 불신과 분노가 나를 집어 삼킬 무렵, 이러면 안 되겠구나 싶어 지역에 있던 영화모임을 들락거렸다.

내 나이 일곱 살 적에 아버지 손을 잡고 처음 극장을 갔을 때의 설렘, 영화를 보며 느꼈던 경이로움과 어둠속에서 영사기 빛을 받아 유유히 흐르는 먼지까지 좋아하게 된 추억이 떠올랐으리라. 어린 시절, 손꼽을 정도로 많지 않던 행복한 기억이 나를 영화모임으로 이끌었던 것 같다.
그랬다. 영화를 보며 가만히 숨을 고르고 싶었다. 영화모임에서 세상이 보지 말라하는 영화를 보고, 세상이 외면하는 영화를 보며 다른 세상과 사람에 대한 이해와 감성을 살찌우던 겉으론 강퍅했으나 안으로는 풍부했던 별종인간의 순수감성 시대였다.

▲ 안개속의 풍경(1988) 드라마 | 프랑스, 그리스, 이탈리아126 분 | 개봉 2005-12-16감독 테오도로스 앙겔로풀로스 출연 타냐 팔라이올로고우 (불라 역), 디미트리스 케이브리디스 (삼촌 역), 스트라토스 초조글로우 (오레스테 역), 미칼리스 제케 (알렉산더 역)
그 해 늦가을 영화모임을 통해 알게 된 친구와 서울출장을 갔고 대학로 동숭 시네마떼끄에서 이 영화를 보았다. 순전히 영화포스터에 마음이 이끌렸던 테오 앙겔로풀로스 감독의 ‘안개속의 풍경.’ 20대 후반에 더디 찾아 온 사춘기였을까? 희뿌연 안개를 배경으로 어린 남매가 덩그러니 놓여 있는 그림에 그만 빠져버렸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하고 아팠던 기억에 지금도 가슴이 먹먹하다. ‘낙엽 같은 어린 남매의 세상 여행’은 작위적인 아픔 혹은 기쁨 따위는 개입할 여지를 주지 않고 필름이 다 돌아갈 때까지 혹독하게 그들을 세상 속에 내던져 두고 있었다. 얼굴도 모르는 아빠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남매. 아빠라는 존재는 그들에게 있어 희망이자 다다를 천국인 듯 했다.

그러나 여행은 이들 남매에게 거듭되는 상처들만 포개줄 뿐, 아빠는 그 어디에도 없는 듯 세상은 이 순전한 여린 남매에게 냉혹했다. 트럭기사에게 강간을 당하는 어린소녀와 그 순간 누나를 찾아 트럭주변을 맴도는 더 어린 소년. 그리고 무심히 도로 위를 질주하는 차들. 갓길에 멈추어 서있는 트럭 짐칸에서 벌어지는 어른 남성의 폭력,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줄 모른 채 누나를 부르며 주위를 맴맴 도는 사람의 소리는 세상의 소음에 묻히고….

난 이 장면을 보며 눈물을 흘렸던 것 같다. 은유적인 영상표현이 처절한 우리네 역사와도 너무나 닮은 것 같아서. 어쩜 이리도 그리스와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는 쌍둥이처럼 닮았을까. 영화는 현실의 반영이라는 표현에 절로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왜 이 장면에서 역사를 떠올렸는지 잘 모르겠다. 무의식적으로 우리안의 역사가 떠올랐고 비슷한 궤적의 그리스 역사가 겹쳐졌다.

여행 중에 만난 곡마단과 그 단원청년에 대한 소녀의 사랑은 순수해서 금방이라도 깨질 듯 했지만 유일하게 영화 속에서 어린 소녀와 더 어린 소년이 웃고 있는 순간이었고 나도 그들의 웃음에 안도하며 마음 따뜻했던 장면이었다. 그러나 따뜻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아 식는다.



어린 남매를 따뜻하게 맞아주고 위로해주던 곡마단 청년이 동성애자임이 밝혀지고 소녀는 절망하지만(오해마시라. 성적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아니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아픔이었으니까) 곡마단의 가난하지만 따뜻한 환대에 머물지 않고 다시 여행을 떠난다.

영화의 마지막, 작은 조각배가 안개가 잔뜩 낀 강을 건너고 있다. 천천히 노를 저어가며 강 저쪽 편에 다다르자 안개가 서서히 걷히며 저 멀리 뿌옇게 아름드리나무 한그루가 모습을 드러낸다. 모든 것을 품어 안을 만치 넉넉한 나무와 남루하고 동정 없는 세상에 단련된 어린 소녀와 더 어린 소년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오르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이 장면에서 나는 영화의 첫 장면을 떠올렸다. 영화가 시작할 때 한 줄 자막 ‘태초에 어둠이 있었고 빛이 생겼다.’

이 영화를 본 관객들 중에는 영화의 맥락이 불친절하게 와 닿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세상은 애당초 친절 따위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을. 다만 가만히 바라보고 다가가고 공감하면 그뿐. 테오 앙겔로풀로스 감독은 이 영화에서 어떠한 선택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멀리 있어 만져볼 수 없는 어렴풋한 희망을, 어둠속에 빛을 보여줄 뿐. 어쩜 그는 상처와 고난 속에서도 한발 한발 내딛는 어린 남매가(민중이) 빛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우리는 안개 속에서 길을 잃고 귀마저 멀어 버린 것은 아닐까.

가끔 나에게 위로를 주고 싶은 시간이 찾아올 때면 ‘안개속의 풍경’이 보고 싶어진다. 그때의 눈물과 잔잔한 감동을 떠올리며 다시금 살아 내기 위해서….

그날 함께 영화를 본 친구와 나는 한밤중에 대학로 길 위에 주저앉아 술을 마셨다. 반영된 현실의 아픔을 안주삼아 취했던 그해 늦가을 밤이 오래전 꾸었던 꿈같다. 하기는...나이 오십을 목전에 두고 있으니. 절로 미소가 번지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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