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행위자인 고문의 기록 ‘남영동 1985’

권은숙
전 충북여성장애인연대 사무국장

지난해 연말 코칭교육을 받는데 강사가 물었다. ‘어떻게 여성장애인 인권운동을 하게 되었고 앞으로 계획은 무엇’인지. 활동가마다 어떤 인연으로 단체에 오게 되었는지, 또 나름의 계획을 이야기 했고, 아직 혼란스러운 길 위에 있음을 고백하기도 했다.

내 차례에 이르러 “그동안 민주화 운동에 진 빚을 이제는 좀 갚았어요. 내년에는 쉬면서 즐겁게 살아보려고요”했다. 의도하지 않은 답변에 스스로도 놀랐다. 20대 초입 자살에 실패하고 빈민교육운동(야학)을 했으니 얼추 20년 활동가로 살았다. 이제. 정말. 가벼워져도. 되. 는. 것. 일. 까?

지역의 여성운동 선배로 사심 없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하숙자와 여성장애인 핵심역량인 상큼, 명랑변태 김상윤, 벽화 아티스트 민과 함께 남영동 1985를 보러 갔다. “이런 영화는 챙겨봐야 한데이~” 하숙자에게 영화를 고르는 나름의 원칙이 있었고, 흔쾌히 동의한 셋은 가볍게 영화관에 입장했다.

▲ 남영동1985 (Namyeong-dong1985·2012) 한국 | 드라마감독 : 정지영배우 : 박원상, 이경영
영화는 고(故)김근태 민주당 상임고문(복지부장관 역임)이 1985년 9월에 민청련 사건으로 남영동 치안본부(현 경찰청) 대공분실에서 받았던 22일간의 고문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영화의 80%가 고문장면으로 영화를 보는 동안 관객은 피조사자가 되어 고문을 체험하게 된다. 아주 리얼하게…. 지랄 맞은 영화다.

고문 기술자 이근안이 만들었다는 ‘칠성판 고문’은 나무판 위에 묶고 얼굴을 가린 채 고춧가루를 탄 물을 코와 입에 붓는 고문수법이다. 원래 ‘칠성판’은 망자가 눕는 관에 7개의 구멍(북두칠성)을 뚫은 판을 까는 조선시대 장례 풍습이었다.

저승으로 여겼던 북두칠성까지 죽은 자의 영혼이 편안히 가기를 바라는 산 사람의 ‘배려’였던 것이다. 이근안이 고안한 칠성판에 눕힌다는 것은 살았으나 죽은 자임을 은유한다. 80년 당시 살아도 산목숨이 아닌 사람들이 많았다. 그 시절을 떠 올리면 폐에 물이 차듯 숨이 막히는 이들이 살아있다. 청주 하늘아래.

영예로운 진화의 상징으로 호명되는 호모사피엔스를 고문은 무력한 고깃덩어리로 만들어 버렸다. 이근안은 태연하게 휘파람을 불며 피조사자의 몸에 소금을 뿌리고 전기를 주입한다. 김근태는 자신에게 씌워진 오해가 풀어지면 벗어날 수 있으리라 거짓증언을 거부하다가, 지독하고 악랄한 고문에 결국 굴복하고 만다. 그래서 민주화청년운동연합은 공산주의 폭력혁명을 목적으로 한 간첩조직으로 조작된다.

아무렇지 않은 듯 라디오를 청취하며 고문을 조력하는 이들을 지켜보며 영화는, ‘자신을 성찰하지 않는 것은 죄이지 않는가?’ 묻는다. 질문이 많은 영화는 불편하다. 정지영 감독은 “영혼을 팔아 이룩한 민주주의를 너무 소홀히 대한 것은 아닌가”라고 또 묻는다. 제기랄. 누군가 이 영화를 왜 만들었는지 감독에게 물었다. “아프라고”라는 대답을 던졌단다. 그가 이겼다. 영화 상영 내내 아프고 또 아팠다. 나의 완패다.

재촉하는 영화는 나쁘다. 남영동 1985는 ‘분노할 의무’를 기억하라고 다그친다. 잊고 싶었던 과거를 들춰낸다. 기억의 저편으로 겨우 보따리에 싸 내 던진 것을 기어이 몸 앞에 가져와 풀어 헤친다. 몸이 기억하고 있는 시절.

중학교 졸업하면서 ‘학교에서 배울 것이 없다’고 폭로했었다. 고등학교 입학을 거부하고 광주항쟁의 역사를 서울역에서 뒷거래 되는 책들로 독학했었다. 거리로 쏟아져 나와 ‘독재타도’를 외치는 청춘들 틈에서 주변인으로, 경계인으로 살았다. 날마다 뜨겁던 1987년에.


주인공 김근태가 끌려가던 복도에 낮게 깔리던 여성의 비명소리가 오래 오래 남았다. 나를 비껴간 고통을 그녀, 온몸으로 버티며 저항하고 있었다.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몇 해 전 쿠바 혁명 5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에 참여했었다. 가난하지만 무상의료, 무상교육을 실현한 공간에서, 존엄하다고 말하고 싶은, 인간다운 여유가 넘치는 쿠바인들이 부러웠다. 새로운 세상은 가능하다는 희망도 잠시 품었었다. 그리고 전두환과 같은 하늘 아래에서 숨 쉬고 싶지 않아 돌아오기 싫었던 조국, 슬프다.

서구 여성들과 달리 아시아 여성들의 운동은 민족해방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그래서 여성문제, 섹슈얼리티 이슈가 등장할 때 마다 항상 국가가 행위자로 등장한다.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민주화 운동에 대한 부채감, 빌어먹을 놈들이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 나는 언제쯤 빚잔치를 할 수 있을까?

조증으로 가벼운 자신이 사라질까 두렵다면 이 영화를 보시라. 두발을 단단히 정박시킬 것이다. 평화를 유지할 능력이 없어 자신의 삶을 시궁창으로 밀어 넣는 이도 보시라. 함부로 대하는 귀한 평화가 어디서 온 것인지 알 게 될 것이다. 가볍게 들어간 영화관에서 무겁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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