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른 하늘 끝에서 피여 오르는 하얀 뭉게 구름이 하늘보다 더 푸른 바다와 얼굴을 마주보고 미소짓는다.
멀리 보이는 수평선은 검푸른 물감으로 줄을 그어 놓은 듯이 뚜렷하다.

한가롭게 날아다니는 갈매기들과 파도도 없이 잔잔 하 기만한 바다가 달콤한 낮잠에서 금방 깬 듯한 평화를 잠시 내게 안겨 준다.
해변을 걷다 바위에 앉아 진한 커피를 손에 들고 바다를 바라본다. 언제부터인지 외로움이 깊어질 때면 나는 항상 바다를 꿈꾼다.
나는 내 안에 깊고 푸른 바다를 하나두고 있어 질긴 인연으로 묶여 있는 모든 것들이 너무 버거워 힘이 들 때, 때로는 흐르는 모든 것을 흐름으로 다스리지 못하고 어느 한 그리움에 마음이 저려오면 나는 깊고 푸른 바다 속 심연으로 갈아 앉아 무의식의 세계로 빠져들고는 한다. 그것은 외로움을 달래는 내 방식이기도 하다.

바다는 누구에게나 지내온 삶과 지낼 삶을 아무런 표정 없이 비춰준다. 굳이 바다를 보고싶어 서가 아니라 바다에 비친 자신의 표정을 보기 위해, 바다가 전하는 묵언의 교훈을 듣기 위해 떠난다. 바다는 설 레임이고 그리움이다.
어디론가 가고싶다는 여심(旅心)이란 혼자이고 싶은 욕망일터인데 일부러 찾아 나선 고독이 결코 두렵지는 않다. 파도의 일어남과 스러짐 그리고 밀려감의 반복은 내 삶의 여정인 듯 다가온다.

여행을 떠나면 늘 발길의 끝은 바다에 닿는다.
한때는 푸르렀던 내 안의 꿈들과 누추한 곳에 발이 묶여 빛을 잃어 가는 것들, 먼 기억속 에서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그리움을 건져 올리는 바다...
잔잔한 파도와 모래들이 만나는 곳을 걸으며 오래 전부터 하고싶었던 말들을 생각한다. 변화를 두려워하며 강함을 앞세우는 동안 상실해버렸을 사랑을, 소망을..
그리고 산다는 것은 별개 아닌 자꾸만 단념해가야 한다는 것을,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는 어느새 외로움을 달래고 그리움을 달래고 삶에 찌든 마음을 걸러준다.

바다는 계절마다 다가오는 느낌이 다르다. 봄 바다는 대지와 같이 생동감이 넘쳐서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듯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활기차다. 여름바다는 정열적이지만 나는 싫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드는 것도, 무질서도, 너무 뜨거운 태양도 넘실대는 파도도 왠지 못 마땅하다.가을 바다는 잔잔하지만 해변은 너무 고즈넉해서 갈매기 울음소리조차 쓸쓸하고, 우울하게 들린다. 나는 겨울바다를 좋아한다.

아주 추운 날의 바다는 색깔마저 투명하고 선명한 것이 맑은 겨울하늘을 보는 것처럼 시리다. 텅 빈 해변에 하얗게 쌓인 눈 위에는 가끔 새들의 발자국 만 남아 있고 찬바람에 철썩이는 파도 소리는 가슴속에 담겨있는 시름들을 모두 거둬 가는 것 같고 또한 야무지게 살아가지 못하고 있는 나를 질책하는 듯도 하다.

그러나 내가 겨울 바다와 눈 쌓인 해변을 좋아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아직도 가슴 밑바닥에 아프게 남아 있는 지난날의 꿈들을 하얀 눈 위에 하얀 그리움으로 남겨놓고 싶기 때문이다.

 

정명숙 님(52)은 수필에 관심이 많은 평범한 주부로 복대1동에서 살고 있으며 지난해 도민 백일장에서 도지사 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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