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영 사회문화부 차장

청주시에는 전국 최초의 여성친화공원인 배티공원이 있다. 기무사 공간을 청주시가 매입해 평생학습관 분관을 유치하고 주민 커뮤티니 시설로 꾸민 것이다. 1층에는 북카페가 자리잡고 있고, 예술가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북카페에서는 책을 대여해주거나 1000원만 내면 원두커피를 마실 수 있다. 전통적인 평생학습관 프로그램 외에도 예술가들이 직접 참여해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펼치고 있어 인기가 높다.

지난해 개관한 배티공원은 아파트 단지 내 자리 잡고 있는 데다 공원이 있고, 평생학습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어서 고정 관람객(?)이 많다. 그런데 며칠 전 1층 북카페에서 놀라운 장면을 봤다. 1층 북카페를 접수하신 분들은 다름 아닌 할머니들이었다.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다. 단골이라는 어떤 할머니는 갑자기 “내가 오늘 여기서 뭐 했는 줄 아오. 유행가 가사를 다시 적어봤어. 자꾸 머리를 써야 안 늙지”라며 웃어보였다. 할머니와 딸은 테이블에 앉아 그림을 그렸고 손녀는 유모차에서 잠들어 있었다. 양로원을 박차고 나온 할머니들은 다소 소란스럽기는 했지만 생기가 넘쳐서 보기 좋았다.

당초 이곳에는 탁구장과 독서실, 체육시설이 들어서려고 했다. 청주시의회 이용상 의원이 전체 구도를 주민커뮤니티로 잡고 지금과 같은 콘텐츠를 집어넣었다. 배티공원에서 만난 그는 “청주시내 공공기간에도 저렴하게 수다 떨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공공기관에 커뮤니티 시설을 고려하는 것은 지금까지 없었다. 커뮤니티 시설을 고려하려면 설계단계부터 주민들의 요구와 욕구가 반영돼야 하지만 사실상 배제돼 있다. 그래서 공간은 많지만 제대로 활용되지 않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동마다 있는 주민센터다. 수십억원을 들여서 공간을 마련했지만 1년에 몇 차례 민방위 훈련과 같은 회의공간과 일부 회원들의 취미공간으로 쓰이는 게 전부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이용하기에는 이미 한계가 많고 프로그램의 진입조차 쉽지 않다.

공공기관에서 만만한 주민공간은 따지고 보면 찾아보기 힘들다. 수유실 마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것이 공공기관이다. 아직까지도 고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공공시설에 말랑말랑한 커뮤니티 공간이 필요하다. 어디 토론이나 동아리 활동을 하고 싶어도 정말 갈 만한 데가 없다. 커피숍 회의룸 말고는 마땅치 않다.

몇 년 전에 일본 세타가와구의 공공예술공간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가장 놀라운 점은 1층 로비를 지역의 시민단체 및 주민들에게 전부 내줬다는 것이다. 테이블마다 논의가 펼쳐지고 있었다. 예약을 하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한 것이다.

통합 시청사가 만약 새롭게 지어진다면 형식적인 주민 공간 말고 정말 주민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이용하고 싶은 공간이 만들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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