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 2동 마을기업 ‘양달말’…사라진 두부집 복원해
주민들 직접 주주로 참여하고 대안모색까지 화제

주민들이 목소리를 내는 것은 그동안 쉽지 않았다. 행정의 중심은 늘 공무원이었지 주민이 아니었다. 주민들은 이제 민원을 제기하는 시끄러운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주민공동체를 통해 드러낸다. 공동체의 힘은 놀랍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영웅이 아니라 공동체 일지도 모른다.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등의 뿌리는 결국 공동체다. 성공이란 뜻을 함께 한 사람들이 새로운 가치와 대안을 만들어내고 얼마만큼 실천하는가에 달려있다. 2013년 충청리뷰는 ‘공동체 운동이 답이다’ 타이틀로 연중 기획기사를 게재한다. /편집자

매일 국산콩으로 정성껏 두부를 만든다.

새벽 7시 김용숙 씨는 어김없이 가게 문을 연다. 콩을 고르고 간수를 빼는 과정을 2시간 넘게 반복해야 얼굴이 뽀얀 ‘두부’를 만나게 된다. 국산콩으로 매일매일 두부를 만든다. 이 두부는 오늘 사직 2동 마을기업 ‘양달말’의 주재료다. 청국장, 비지장을 비롯한 두부전골, 두부김치 등을 판매하는 마을기업이 지난 3월 12일 문을 열었다.
청주시내 마을기업 가운데 음식점은 ‘양달말’이라는 독특한 이름부터 가게가 이곳에 자리잡기까지 사연도 많았다.

두부집 복원하려다…

사직 2동 주민들이 마을 기업 ‘양달말’은 주민들에게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싶어서 국산콩에 무 조미료 음식을 고집한다. 민병창 양달말 대표(왼쪽)와 최인호 도시재생추진위원장이 두부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지난해 3월이었다. 사직 2동에는 오래전부터 두부를 만들어 팔던 할머니가 있었다. 90세를 넘긴 할머니는 연로해 더 이상 두부를 팔수는 없었지만 80년까지만 해도 리어카에 뜨끈뜨끈한 두부를 실어 날랐던 기억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았다. 그런데 사라진 두부집을 복원하려고 하니, 예상치 못한 변수가 등장했다. 할머니가 두부를 만들어 팔았던 곳은 알고 보니 충북도 땅이었고, 건축물 또한 불법이었다.

사직 2동의 주민조직인 도시재생추진위원회는 마을을 다시 살리기 위해 두부집을 열기로 했다. 주주 6명이 150만원씩 출자를 했고, 장소를 물색했다. 그리하여 사직 2동 국보제약 골목에서 모충동쪽으로 올라가다보면 국보슈퍼가 나오는데 그 뒷골목에 양달말이 둥지를 틀게 됐다. 과거 사직 2동은 양달말(마을), 응달말(마을)로 나눠서 불렀다. 박씨 종산에서 산 앞동에는 볕이 잘 든다고 해 양달말이었고, 충혼탑과 중앙도서관이 위치한 곳은 응달말이었다. 원래 가게는 위치상 응달마을에 해당하지만 아무래도 양말마을의 이미지가 좋아 상호명을 양달말로 정했다.

지난해 12월부터 빈 공터에 가게건물을 세우기 시작했다. 주주들이 직접 리모델링 및 전기 배선을 맡아서 무료로 봉사했다. 이인원 계명대 유아교육과 교수가 음식 자문을 맡아 주기도했다. 충북대 도시공학과 도시재생사업단이 700만원에 달하는 연구자문을 무료로 해줬다. 또한 사직 2동에 위치한 예술가들이 만든 단체 ‘예술상회’에서 주민들이 동네잔치를 열어 기금을 마련했다. 이렇게 많은 도움의 손길이 있었다.

8년이 지나도 재개발 깜깜

사직 2동은 2006년 재개발 지구로 지정됐지만 아직까지 시공사도 선정하지 못했다. 2009년 조합설립이 됐다. 재개발 거품이 꺼지면서 주민들의 피로도가 더해졌다. 하지만 낡은 주택가인데다가 어르신들이 많이 살고 있어 집을 개보수하지 않은 채 막연하게 재개발을 기대하며 살고 있다. 지금까지 재개발추진위원회가 쓴 돈, 즉 매몰비용만해도 수백억원이라는 얘기가 떠돈다. 재개발 보다는 또 다른 대안을 꿈꾸는 주민들이 2010년 12월 도시재생추진위원회를 구성하게 된다.

최인호 도시재생추진위원장은 “이 동네에는 기반시설이 없다. 어린이 놀이터도 없고 인도도 없어 보행자들이 불편하다. 아이들이 안 살다보니 흔한 학원과 병원도 없다. 언제까지 재개발에 묶여 관망만 할 수는 없었다. 새로운 개념의 마을 만들기가 필요한 시점이었고 다행스럽게도 뜻을 같이 하는 주민들이 생겨났다”고 설명했다.

양달말은 고유지명인 양달마을에서 이름을 따왔다.
양달말은 이들에게 새로운 구심점이자 희망의 장소다. 마을기업 대표는 마을주민이자 주주로 참여한 민병창 씨가 맡았다. 민 씨는 “양달말은 바른 먹거리를 주민들에게 주고 싶어서 콩도 최고 품질의 국산콩만 고집한다. 중국산으로 만들면 단가를 낮출 수 있겠지만 몸에 좋지 않아서 아예 생각조차 안했다. 음식에 조미료로 첨가하지 않는다”고 자랑했다.

이어 그는 “콩 값이 많이 올라 국산콩으로 두부를 만들 경우 적어도 한모에 7500원에는 팔아야 수익을 맞출 수 있다. 두부를 만들어 팔려고 가게를 열었지만 수익구조가 많지 않아 정작 두부 판매를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주주들, 두부공부 시작

가게를 열기로 의기투합했던 주민들은 전국에서 유명한 두부집들을 찾아다녔고, 기술을 배워왔다. 현재 두부를 만들고 있는 김용숙씨는 전에 외할머니가 두부장사를 해왔던 터라 곁눈질로 배웠고, 이번에 마을 분에게 전통 두부 제조 방법을 전수 받기도 했다. 주민 직원 4명의 운영비, 인건비 등을 따지면 적어도 하루에 50만원을 팔아야 손해가 나지 않는다.

두부 요리는 가격이 많이 비싸지 않다. 청국장, 비지장 등이 5000원이다.
최인호 위원장은 “손해가 나면 주주들이 다 메워야 한다. 가게 망하면 큰일 난다”며 웃어 보인 뒤 “주민들에게 건강한 밥상을 제공하면서 행복을 느끼게 됐다”고 강조했다. 양달말에서는 직접 띄운 된장, 간장, 고추장, 식초, 효소도 판매할 계획이다.

돈을 잘 벌면 마을에 다시 내놓을 것이다. 장학사업도 벌일 예정이고, 독거노인들에게도 수익금을 전달할 예정이다. 양달말은 지금 행정안전부 마을기업 지원사업에 계획서를 제출했다. 4월에 결정이 나는 데 만약 통과 되면 1차년도 5000만원, 2차년도 3000만원을 지원받게 된다.

도시재생추진위원회는 양달말 외에도 그간 예술상회 이종현 대표와 사직 2동 이야기길 사업을 벌였다. 꽃길 조성 및 벽화 그리기 작업을 통해 사라진 기억들을 복원했다. 양달말은 3월 26일 국토해양부 국토재생사업단과 청주시장이 참석하는 가운데 정식 오픈식을 개최할 예정이다. 4월 10일에는 서울시 공무원 120명이 견학을 온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특별히 지시했다는 후문이다.

최인호 위원장은 “가게에 사랑방 공간을 마련했다. 조만간 할머니 손만두도 만들고, 플래카드를 활용한 재활용 바구니도 만들어 팔 예정이다. 두부만들기 체험행사를 비롯해 과거에 이화여대에서 미술공부를 했던 할머니 한분도 할머니들에게 미술을 가르쳐 주기로 했다.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사람들이 마음을 돌리고 있다. 기운이 정말 좋다”고 설명했다. 인터뷰를 하고 있는 동안 주민들은 연신 가게 문을 열었다. 가게를 찾은 할머니들은 “도대체 무슨 일을 벌인 겨. 궁금해서 왔어”라며 메뉴판을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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