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발하는 날> 20년 동안 2번 개정판 낸 현진스님
저서 8권…진솔하고 군더더기 없는 문장 ‘명불허전’

“종종 삭발한 머리에서 내 수행을 본다. 그래서 출가 본분사를 잊고 지낼 때면 소리 없이 자괴심이 일기도 한다. 수행자로서 머리를 깎는 일은 자신을 바로 챙기는 일이다. 그러므로 수행자의 머리가 까맣게 자라있다는 건 그리 마음 개운한 일이 아니다.” - 현진스님 ‘삭발하는 날’ 일부.

▲ 20년 전에 첫 출판한 <삭발하는 날>은 현진스님의 법랍과 궤를 같이한다. 첫 삭발식도 그렇지만 지금은 혼자 머리를 깎으며 수행자로서의 자세를 돌아보고 있다. 사진은 3번째 출간한 개정2판을 들고 있는 현진스님.

출가를 결심한 이가 산문에 들어 마침내 삭발식을 갖는다. 대야에 물을 받아놓고 고개를 숙인다. 맑은 물에 비장한 얼굴이 비친다. 시퍼런 삭도가 주저 없이 긴 머리카락을 툭툭 잘라낸다. 거울 같은 수면 위로 떨어지는 것은 머리카락뿐만 아니라 닭똥 같은 눈물이다. 이같은 장면을 직접 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 드라마나 영화 속 한 장면으로 접해본 적이 있어서일까? 실제로 본 것 같은 착각에 빠지는 사람은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처음 승려의 길에 들어설 때 삭발식 광경일 뿐이다.

불교에서 무명초(無明草)라고 부르는 머리카락은 인간의 어리석음처럼 쉴 새 없이 자라는데 매번 위와 같은 삭발식을 가질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스님들은 평소에 어떻게 머리를 깎을까? 속세의 이발소를 드나드는 것은 아닐 테고, 속된 말로 ‘○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속담도 있는데….

외람되지만 불교서적 가운데 스테디셀러로 꼽히는 <삭발하는 날>의 저자 현진스님(청원 마야사 주지)에게 물었다. 스님은 “강원 등에서 단체생활을 할 때는 보름마다 한 번 삭발하는 날이 돌아온다. 개인적으로는 열흘에 한 번씩 머리를 깎는다. 학승(學僧) 시절에는 서로 깎아주기도 하지만 연륜이 익으면 대개 혼자서 깎는다. 혼자서도 잘하니 맡기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속담은 틀렸다. “면도하는 것과 똑같다. 나중에는 거울 없이도 한다”는 부연설명으로 적어도 보름마다 이뤄진다는 은밀한 삭발의 모든 것은 명료해졌다.

그러나 이는 삭발이라는 행위 자체에 대한 탐구일 뿐이다. 출가의 관문이라 할 수 있는 삭발식은 그렇다 치고 스스로 머리를 깎는 삭발의 결단은 수행 그 자체가 아닐까? 속인이 수염을 미는 그 기분과는 분명히 다를 것이다. 그 내면이 궁금하다면 <삭발하는 날·2013·담앤북스>를 읽어보면 된다. 삭발하는 날에는 속세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절집의 소소한 일상과 더불어 젊은 수행자의 고뇌, 불교의 지혜와 교훈이 스님 특유의 맛깔난 문체로 기록돼 있다.

3월9일 개정2판 출판기념회

▲ 해인사 출판부에서 처음 나온 <삭발하는 날>의 입소문은 대단했다. 1995년 2월 당시 월간지였던 <충청리뷰>가 서평으로 다뤘다.

<삭발하는 날>은 이번이 첫 출판이 아니다. 1994년 해인사 출판부에서 초판이 발행됐다. 현진스님은 해인사 승가대학에 다니는 초짜 스님이었다. 학인시절 당시 권위를 자랑하던 <월간 해인>에 글을 연재한 것이 뜨거운 반향을 일으키면서 한 권의 책으로 묶였다. 삭발하는 날은 대형출판사나 광고를 등에 업지 않고도 꾸준히 팔렸다. 2001년에는 호미출판사에서 개정증보판을 냈고 올해 출간 20주년을 맞아 담앤북스에서 두 번째 개정판을 출판하게 된 것이다.

삭발하는 날의 잔잔한 열풍은 1995년, 당시 월간지로 발행하던 충청리뷰 13호(1995년 2월호)에 소개되기도 했다. 당시 기자는 “이 책의 글들은 그간 스님의 수행이력이며 동시에 여느 스님들의 생활상이다. 또한 수행자들이 공부하는 곳일 뿐 절집도 ‘사람 사는 곳’임을 분명히 말해준다. 놀랍도록 세심한 관찰력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말에 욕심이 없어 소박하기 이를 데 없는 문체를 따라 절집의 일상을 엿보는 재미가 여간 아니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현진 스님은 “해인사 출판부에서는 따로 인세를 주지 않았다. 그래서 정확히 몇 권이 팔렸는지 모른다. 줄잡아도 3만권은 넘게 팔린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스님은 지금까지 모두 8권의 책을 썼다. 그 중에서도 삭발하는 날이 스스로에게 주는 감동은 날로 깊이를 더하고 있다. 스님은 “출가 후 4,5년 뒤에 쓴 책이다. 책의 나이와 법랍(法臘·출가경력)이 함께 간다. 출가 당시의 초심을 돌아볼 수 있어 다시 읽어도 늘 새롭다”고 밝혔다.

사실 현진스님의 저서 가운데 가장 많이 팔린 책은 <산문 치인리 10번지·2003·열림원>이다. 이밖에 <두 번째 출가·1997·클리어마인드> <잼있는 스님이야기·2001·다할미디어> <오늘이 전부다·2007·클리어마인드> <삶은 어차피 불편한 것이다·2010·클리어마인드> <언젠가는 지나간다·2011·담앤북스> <번뇌를 껴안아라·2012·담앤북스> 등은 마니아 독자들을 만들어 놓았다. 불교출판계에서 이제 현진스님의 명성은 ‘명불허전(名不虛傳)’이다.

이 정도면 요즘 출판계를 뒤흔드는 베스트셀러작가 혜민스님에 견줘 ‘충북의 혜민스님’이라고 부를 만하다. 현진스님은 기자의 접대멘트에 대해 “내가 단지 하버드대를 나오지 않았고 비주얼에서 조금 밀릴 뿐이지 못한 것도 없다”고 특유의 재담으로 맞받았다.

마야사 신도이기도한 유화정(42·여)씨는 “현진스님의 글은 어려운 문장이나 현학적인 내용이 없다. 솔직하고 담백한 이야기를 마치 옆에서 들려주는 것처럼 써내려가 흡인력이 있다. 무엇보다도 지루하지 않아 남녀노소가 다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말했다.

유씨 등 마야사 신도들과 현진스님을 좋아하는 독자들은 <삭발하는 날>의 출판 20주년을 축하하는 출판기념회를 갖기로 했다. 출판기념회는 3월9일 오후 6시 청주시 흥덕구 복대동 ‘북카페 담쟁이’에서 열린다. 이날 행사는 간단한 문화공연과 기념행사, 사인회 등의 순서로 3시간여에 걸쳐 진행될 예정이다.

▲ 현진스님은 지금까지 모두 8권의 책을 썼고 모두 스테디셀러다. 저서 중 일부.


■현진스님은
        
한국불교의 선풍을 주도해온 금오스님의 손(孫)상좌로 이두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해인사 승가대학에 다닌 것을 인연으로 <월간 해인> 편집위원과 <불교신문> 논설위원으로 활동했다.

간결하고 담백한 문체로 절집의 소소한 일상과 불교의 지혜, 교훈 등을 독자들에게 꾸준히 전달해 왔다. 스님의 글은 마치 사람을 앞에 두고 두런두런 이야기하듯 진솔하며, 짧은 호흡의 군더더기 없는 문장으로 삶의 철학과 진리를 쉽고 명쾌하게 풀어내 더욱 흡인력이 있다.

이두스님을 회주로 모시고 관음사 주지를 역임하다 청원군 가덕면에 마야사를 창건해 정진하고 있다. <삭발하는 날> 등 모두 8권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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