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정 씨 “비혼여성, 당당한 1인가정으로 인정해줘야” 주장
소녀가장 직장생활 굴레벗고 여유 찾아 여성학 공부 집중

3월 8일은 세계여성의 날이다. 지난 1908년 미국의 여성노동자들이 노동조건 개선과 여성의 지위향상을 요구하며 시위 벌인 것을 기념해 제정된 날이다. 그러나 이 날의 의미를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더욱이 남성들은 아예 관심이 없다. 남성들이 세계여성의 날에, 그리고 여성들의 삶에 관심을 가질 때 세상은 달라진다. 21세기 과학기술은 ‘안되는 게 없을 정도로’ 발달했다. 그럼 2013년을 사는 이 땅의 여성들은 행복한가. 비혼여성·워킹맘·여성기업인들이 살면서 느끼는 문제들을 취재했다.

▲ 김수정 씨

요즘 주변에 싱글족이 많다. 사람들은 이들에게 ‘부럽다’ ‘이기적이다’는 상반된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이들도 할 말이 많다. 한국사회에서 결혼한 여성으로 산다는 건 만만치 않은 일이나, 미혼여성으로 사는 것 또한 쉽지 않기 때문이다. 김수정(47) 씨는 미혼(未婚)이자 비혼(非婚) 여성이다. 그런데 비혼에 더 가깝다. 그가 살아온 이력을 보면 결혼을 선택하지 않았다고 하는 게 맞다. 굳이 나누자면 결혼할 의사가 있는데 아직 하지 않은 것은 미혼, 의사가 없는 것은 비혼이다.

그는 주변에서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 자유주의자로 통한다. 전문건설업체 직원-우리밀식당 운영-자활공동체 ‘미가건축’ 대표-공인중개사 등으로 다양한 직업을 경험하며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더니 올 3월에는 성공회대 NGO대학원 실천여성학과에 입학해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참고로 실천여성학과는 여성활동가들에게 전문성과 네트워크를 제공해 잠재력을 극대화시키고 미래의 여성 리더로 키우는 과정이다.

대학원에 입학하더니 요즘 김 씨는 신이 났다. 그는 지난 2008년 도시락 싸가지고 도서관 다니며 공부한 덕에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더니 얼마전 일을 접었다. 그러다 이제는 뒤늦게 시작한 공부 재미에 빠져 다시 도서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내게 이런 기회가 올 줄 몰랐다. 나는 경계 밖에 서서 공부를 남의 일이라고 생각해왔다. 10대 때부터 가난에 주눅들어 살았고, 20대 이후에는 동생 2명 공부 가르치고 먹고 사느라 힘들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다”며 “대학원 공부는 내게 온 행운이다. 전율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김 씨는 오랫동안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중3 때 아버지, 고3 때 다시 어머니를 잃고 집안의 가장노릇을 했다. 그래서 본인은 대학에 가지 못했다. 지나온 삶을 일일이 열거하지는 않았으나 대학에 가고 싶었고, 이후 더 빛나는 인생을 살아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는 이 갈증을 여성운동단체에서 해소했다. 변지숙 청주생협 이사장·정은경 청주YWCA 사무총장 등의 여성을 만나 충북여성민우회를 만든 것이다. 거기서 이사·재정위원장·홍보위원장·대표 등을 지내며 활동가들과 많은 일을 벌였다. 김 씨는 묘하게도 충북여성민우회 창립인으로 시작해 청산인까지 지냈다. 이 단체의 전과정을 지켜 본 산증인이다.

충북여성민우회는 지난 1989년 시작해 2012년 문을 닫기까지 도내 대표적인 여성단체로 여성의 지위향상에 기여했다. ‘여성 스스로, 이 땅의 주인답게’를 기치로 내걸고 쓰레기부터 통일문제까지 여성과 관련된 모든 이슈에 관심을 쏟았다. 그는 이 곳을 ‘나의 사회적 친정’이라고 불렀다. 그는 “내 인생의 가장 즐거운 날을 여기서 보냈다. 내 영혼의 놀이터였다. 진보적인 여성들과 만나면서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이었던 의식이 깨져나가는 것을 경험했다. 독서모임·회보출판·세미나 개최 등 많은 활동을 하면서 자매애를 느꼈다”고 회고했다.

그가 만일 여성단체를 만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비혼여성을 곱잖게 보는 시각 때문에 많은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초면에도 불구하고 ‘나이는? 결혼은?’이라고 묻는 게 한국사회다. 김 씨는 “왜 결혼 안했느냐는 질문을 지겹게 받았다. 비혼도 삶의 한 형태인데 이를 인정해주지 않는다. 이제는 포기하고 살지만, 우리사회에는 비혼여성이 감내해야 할 것들이 여전히 많다. 먹고 사는 것부터 사회적인 문제, 거기에 결혼 안 한 이유를 설명하는 것까지···비혼여성은 완벽하게 홀로서기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털어놓았다.

김 씨는 직업을 여러 번 바꿨으나 그 때마다 치열한 삶의 현장을 경험했다. “지금의 사회적기업 개념인 자활공동체 ‘미가건축’ 대표를 할 때는 5년 동안 새벽부터 밤까지 현장일에 전국 강의, 회의참석 등으로 눈코 뜰새없이 살았다. 그러다 급기야 쓰러질 지경이 돼 일을 놓았다. 이후 쉬다가 방송대 문화교양학과에 입학해 경제학과로 졸업을 했다. 이 때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땄다. 하지만 이 길도 재미가 없었다. 한 우물을 팠으면 전문가가 됐을지 모르나 이것 저것 경험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아마 다시 태어나도 천방지축으로 살았을 것이다. 지금은 모든 게 편해졌다. 혼자 사는 게 자유롭다.”

“여성은 소수자···여성운동은 소수자운동이다”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지원 필요한 비혼여성 많아

김수정 씨
“결혼 안 한 이유? 결혼은 제도권으로 진입하는 과정이다. 어떤 면에서는 안락한 가정이 생기는 것이지만, ‘나’가 없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기혼여성들에게는 남편과 아이가 본인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나는 그것이 싫었다. 나를 포기하지 못했던 것 같다. 결혼은 별로 매력적인 제도 아니다.” 실제 기혼여성이 나를 포기하지 않았을 때는 심각한 가정문제가 발생한다. 자신보다 챙겨야 할 가족이 우선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이는 여성들에게 꽤 큰 상징적인 의미를 준다. 기혼과 비혼의 차이는 이 것인지도 모른다.

김 씨는 “여성운동은 소수자운동이다. 그동안 여성의 시각으로 쓴 역사가 없었다는 것은 여성이 주체가 아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히스토리’만 있었지 ‘허스토리’는 없었다. 여성대통령이 나왔다고 여성시대가 아니다. 더욱이 박근혜 대통령은 생물학적 여성이지 여성을 대표하는 대통령은 아니다. 아직도 여성은 우리사회에서 주체가 아닌 소수자에 속한다. 그래서 나는 여성운동은 소수자운동이라고 정의한다. 그런데도 남성들이 역차별을 제기하곤 한다. 이는 암환자 앞에서 콧물 나온다고 엄살떠는 것과 같다”고 잘라 말했다.

한국여성들은 과거보다 학력이 높아지고 경제적으로 더 잘 살고 있으나 행복지수는 올라가지 않았다. 공동체성은 줄어들고 개인은 거대한 자본주의 물결속에서 헤매며 더 외로움을 느낀다. 비혼여성들 또한 이를 온몸으로 부딪치며 살고 있다. 아직도 가족이기주의가 팽배한 우리사회에서 이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바구니는 많지 않다. 그러나 이들도 당당한 1인가정으로 인정해줘야 한다. 김 씨는 그래도 여성단체 활동가로 건강하게 살고 있지만,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측면에서 도움을 받아야 할 비혼여성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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