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귀농 1번지 괴산…별별 사람들 ‘다 모였네’
출판업·사진기자·대학 강사·건설업 등 ‘화려한 前職’

괴산은 국내 유기농업의 최고 입지이자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귀농1번지다. 수도권과 가까운데다 산이 높고 골이 깊은 독특한 자연환경 때문에 최적의 상품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한살림 전체 물량의 약 20%를 괴산지역 생산자들이 공급하고 있다. 지난 1월8일 100세의 나이로 작고한 풀무원 농장의 창시자 고 원경선 원장도 일찍이 괴산 청천에 터를 잡았다.

협동조합언론 느티나무통신을 만드는 주체들도 대부분 귀농인들이다. 차광주 괴산언론협동조합 이사장 역시 귀농 15년차다. 차 이사장은 (사)전국귀농운동본부 괴산귀농센터장을 맡고 있다. 귀농인 대부분은 서울 등 수도권 생활을 했던 사람들이다.

따라서 이들의 전직도 다양하다. 농사를 짓는 데는 농부가 박사다. 사실 그들의 이야기를 쓰는 데는 이것만으로도 족하다. 여기에다 그들에게는 농부가 되기 이전의 전직(前職)이 있다. 2월21일 괴산에서 느티나무통신의 기자회원들을 만났다. 그들은 ‘나도 기자’임을 선언했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① 사진기자 출신 신철민
“가난하면서 행복하게 사는 길 찾아”

신철민(46) 씨는 이전에도 기자였다. 진보성향 크리스천 인터넷신문 ‘뉴스엔조이’의 창간멤버로 2008년까지 8년 동안 일했다. 그러면서도 늘 귀농을 꿈꿔왔다. “5,6년 전부터 가난하게 살면서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찾아 헤맸는데 그게 바로 귀농이었다”는 것이다. 신씨는 2009년 선산이 있는 전남 곡성으로 가려다가 지인이 터를 잡은 경북 상주시 화북면 장암리로 내려왔다. 장암은 괴산과 도계를 이루는 마을이다. 신씨는 침뜸 봉사를 하다가 느티나무통신과 인연을 맺었다. 부인은 괴산의 미인가 대안학교 느티울행복한학교의 에스페란토어 교사다. 신씨 부부는 도계를 넘나들며 충북과 인연을 맺고 있다.

② 건설회사 경력 김호진
“지역사회에 활력을 줄 것이라는 기대”

김호진(48)씨는 건설회사 관리직으로 일하다가 2007년 10월 귀농했다. 고향은 충남 아산 탕정이다. 2005년부터 흙사랑 생태귀농학교, 실상사 귀농학교를 다니며 기회를 엿보다가 흙사랑 실무자로 괴산 감물에 둥지를 틀었다. 벼농사를 비롯해 감자, 옥수수, 고추농사를 짓다가 지금은 한살림 축산영농조합 사무국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양돈농가담당이다. 회원농가는 소·돼지를 합쳐 45군데에 이른다. 김씨는 “괴산은 보수적 성향이 강하고 경직된 느낌이 강한 동네다. 협동조합언론이 뜨는 만큼 기대가 크다. 지역사회에 활력을 줄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고 밝혔다. 김씨는 느티울 행복한 학교에 다니는 아들을 두고 있다.

③ 현직 비디오그래퍼 김주영
“풍광에 반해 쌈짓돈 들고 괴산행”

김주영(32)씨는 현직 비디오그래퍼다. 대학에서 미디어영상학부를 졸업한 김씨는 한국생산성본부에서 교육영상제작을 담당했다. 다큐멘터리 제작을 공부하기 위해 독일에서 공부하던 1년 동안은 그곳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동영상을 만드는 프리랜서로 일했다. 그런데 왜 서울토박이가 괴산으로 왔을까? “신혼인 아내의 고향이 진천인데 산이 높고 깊은 자연환경에 반해 괴산을 택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2011년 11월에 내려와서 그동안 모아놓은 돈으로 살았다고 한다. 지난해 석 달 정도는 서울에서 일감을 찾았다. 이젠 지역에서 일거리를 찾아야한다. 김씨는 청주까지 원정에 나설 각오다.

④ 해직 공무원 박종영
“지역민 삶 담아내는 바른 언론 기대”

박종영(51)씨는 전공노 괴산군지부 사무국장이다. 그러나 박씨는 현직 공무원이 아니다. 2004년 공무원 노조 총파업 때 해고됐다. 당시 괴산군지부에서 해고됐던 10명 중 7명이 복직됐으나 박씨 등 3명은 아직도 싸우고 있다. 괴산토박이인 박씨는 “1996년 기능직으로 괴산군 공무원이 된 뒤 공무원 사회의 수직구조를 해소하고자하는 바람으로 공무원노조에 몸을 담았다”고 밝혔다. 박씨는 “공무원 노조 출범 이후 불합리한 관행과 지탄받을 일들이 많이 바로잡혔다. 그러나 개선해야할 것들이 더 있다”고 힘줘 말했다. 그가 복직을 꾀하는 이유는 싸우기 위해서다. 느티나무 통신도 투쟁의 도구가 될 수 있다.

⑤ 전 출판사 대표 차광주
“사는 얘기 담아내며 재밌게 살고파”

차광주(56)씨는 괴산언론협동조합 이사장이다. 이사장을 맡은 것은 전력과 무관치 않다. 그는 귀농직전인 1998년까지 보리출판사의 대표를 지냈다. 어린이도서를 주로 출간하는 보리는 생태문제를 중요하게 다루는 개념 출판사다. 강원도가 고향인 차씨는 “그 시대 많은 이들이 그랬듯이 대학을 졸업학고 운동판에 있다가 보리에서 8년 정도 일했다”고 밝혔다. 차씨는 청천 사기막골에 정착해 감자, 콩 농사를 지으면서 주택 무료임대 등 귀농인들의 정착을 돕고 있다. 차씨는 2005년 농림부가 주최한 귀농관련 논문공모에서 대상을 탔다. 그의 내공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백발과 수염발에서도 포스가 느껴졌다.

⑥ 독일유학파 강사 출신 장래붕
“먹고 살 수 있다면 농사가 최고직업”

장래붕(56)씨는 느티나무통신 멤버 가운데 드물게 청주 출신이다. 그러나 청주고(50회)를 졸업하고 서울로 대학을 간 뒤 30여년 만에 돌아온 곳은 청주가 아닌 괴산이었다. 장씨는 독문학을 전공하고 독일로 유학까지 가서 박사과정을 밟았다. 귀국해서 대학 강단에 섰으나 강사 월급으로는 살림이 쪼들려 20여년 동안 학원 강사로 일했다. 그러나 꿈은 농촌에 있었다. 흙살림에서 귀농교육을 받으며 청천면 삼송리에 있는 솔뫼농장을 알게 됐고 2009년 12월 솔뫼 식구가 됐다. 그는 블루베리 농사를 짓는다. 장씨는 “먹고 살 수만 있다면 농사가 최고직업”이라고 말한다. 회원들은 장래에 ‘붕’ 뜰 사람이라고 추켜세운다.

⑦ 농민단체 전문활동가 박원석
“바른 먹을거리 주제로 기사 쓰고파”

박원석(39)씨는 한살림 괴산생산자연합회 간사다. 박씨는 작정하고 유기농 생산자단체에 뛰어든 활동가다. 박씨는 2009년 괴산으로 내려왔다. 그러나 첫 인연은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시절 소속 동아리에서 솔뫼농장으로 농활을 온 것이 발단이다. 박씨는 “그때 이미 지역에 푹 빠졌다”고 회고했다. 귀농인 자녀를 비롯해 지역아이들을 대상으로 배움터를 운영하며 솔뫼농장에 살다가 연합회 실무를 맡게 되면서 괴산읍으로 거처를 옮겼다. 박씨는 “기자로 열심히 활동하고 싶다. 한살림 기사도 쓰겠지만 바른 먹을거리를 주제로 다루고 싶다”고 말했다. 마흔을 바라보는 박씨는 결혼을 못한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⑧ 솔뫼농장의 산증인 김의열
“대안언론, 대안적인 삶의 새로운 방식”

김의열(48)씨는 살림꾼이다. 솔뫼농장의 총무이자 괴산언론협동조합의 실무위원으로 안살림을 책임지고 있다. 청주가 고향인 김씨는 서강대 종교학과 84학번이다. 가톨릭농민회에서 활동한 것을 계기로 괴산과 인연을 맺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던 1988년 괴산으로 내려왔다가 1992년말 완전히 터를 잡았다. 토박이와 귀농인이 사이좋게 어우러진 솔뫼농장은 1994년 5가구로 시작했다. 공동체 생활을 하는 이들은 ‘유기농서약서’를 써야만 일원이 될 수 있다. 김씨는 “대안언론은 대안적인 삶의 또 다른 방식이다. 이를 통해 소통하면서 재미있게 살고 싶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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