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내 첫 협동조합방식 e신문 ‘느티나무통신’ 창간
발기인 68명, 1700만원 출자 “앗 뜨거워 디것시유”

■느티나무통신이 탄생하기까지


“솔뫼농장 유정호 가공사업위원회 간사의 상태가 좋지 않다. 평소 밝은 모습과  착한 심성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기쁨을 주던 유정호 간사였건만, 지난 해 11월 초부터 12월 말까지 절임배추, 고추장, 메주로 이어지는 살인적인 가공 일정 속에서 휴일도 없이 강행군을 한 결과 거의 탈진상태에 이르러 제초제를 맞은 바랭이풀처럼 몸도 마음도 말라가고 있다. 게다가 지난 12월 19일의 대선 결과는 유정호 간사의 심신에 치명적인 타격을 안기고야 말았다. 이후 모든 삶의 의욕마저 상실하는듯하더니 급기야 얼마 전부터는 이민을 생각한다며 난데없는 영어공부를 시작하고 있다. 늘 밝은 모습에 술 한 잔 들어가면 피에로처럼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던 유 간사의 모습이 그립다. 하루빨리 심신을 회복하여 예전의 밝고 힘찬 모습으로 돌아오길 간절히 소망한다.”

‘솔뫼농장 가공사업위원회 유정호 간사 심신의 피로누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음’이라는 다소 긴 제목의, 짧은 기사 전문이다. 품격 있는 매체의 보도로는 얼토당토 않아 보이는 이 기사는 도대체 어디에 실렸을까? 도내 최초의 협동조합언론으로 본격 출범을 눈앞에 두고 있는 괴산지역의 인터넷신문 ‘느티나무통신’이 그 출처다. 느티나무통신은 현재 뉴스 사이트를 시범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읽어볼수록 중독성이 있는 기사다. 심신의 상실로 탈진에 이른 정도를 “제초제를 맞은 바랭이풀처럼 몸도 마음도 말라가고 있다”고 표현한 것은 도시민에게도 강력한 여운을 남겨 기어이 바랭이풀의 이미지를 찾아보게 만든다. 그러니 제초제를 쓰는 농민들에게 시각적 이미지를 이처럼 극대화시킨 표현이 있을까? “급기야 얼마 전부터는 이민을 생각한다며 난데없는 영어공부를 시작하고 있다”는 부분도 ‘사실’의 전달만으로 유 간사의 심리상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당연히 유 간사를 알고 있는 독자들의 반응도 뜨겁다. 유 간사의 쾌유를 기원하는 내용부터 “박근혜 시대도 역사를 비켜나가지 못하는 법”이라는 전망 등이 댓글로 달렸다.

인터넷 뉴스서비스 시험운영

느티나무통신의 기세가 만만치 않다. 느티나무통신을 운영하게 될 괴산언론협동조합(이사장 차광주)은 2월21일 충청북도로부터 협동조합 설립신고필증을 받았다. 지난해 12월27일 지역주민 10여명이 모여 첫 준비모임을 가진지 불과 두 달 만이다.

주민들은 첫 모임에서 “괴산지역 언론을 통해 깨어있고 조직화된 군민의 역량을 모으고 생각과 삶을 일상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마당을 마련하며 나아가 대안교육, 지역화폐, 대안의료 등 자립적이고 대안적인 운동을 벌여나가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려고 한다”고 천명했다. 이들은 또 일단 2013년 3월 인터넷 신문으로 출발해 역량이 축적되면 종이신문을 발행하기로 했으며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한다는데 뜻을 모았다.

이들은 또 1월23일 괴산여성회관에서 4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괴산언론협동조합 창립발기인대회를 가졌다. 이들은 발기인대회에서 정관을 확정하고 사업계획을 논의했으며 차광주 이사장을 비롯해 이사진과 감사 등 임원을 선출했다.

흙을 파는 농부들이 진실을 캐는 기자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도 뜨겁다. 느티나무통신은 상근기자를 별도로 두지 않고 조합원들이 기자로 등록해 기사를 올리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따라서 기사쓰기 실무 등에 대한 교육이 기자학교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다. 1월8일 괴산읍 한살림 모임방에서 열린 첫 기자학교에는 버스운전 노동자 출신으로 월간 <작은책>을 만들고 있는 안건모 편집장이 강사로 참여했다. 또 1월17일 열린 2차 기자학교의 강사는 ‘미디어오늘’ 기자 출신으로, 괴산 청천에서 버섯농사를 짓다가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으로 발탁됐던 백승권 동양미래대 겸임교수였다. 느티나무통신은 최근까지 4차 기자학교를 진행했다.

이제 설립등기와 신문사업자등록 등의 절차를 남겨두고 있는 상황에서 느티나무통신의 열기는 발기인의 규모와 출자액에서 확인되고 있다. 느티나무통신은 당초 협동조합 설립을 신고하기까지 30명으로부터 500만원을 모은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목표기간 동안 무려 68명이 1700만원을 모아 인원은 2.3배, 금액은 3.4배나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이같은 참여열기를 보도한 느티나무통신의 자체기사 제목은 ‘괴산언론협동조합 참여 열기 앗, 뜨거워 디것시유’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말 그대로 발기인들이 참여한 수준이다. 차광주 이사장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조합원 모집에 나설 계획이다. 아직 결정한 것은 아니지만 월 5000원 정도의 조합비를 내는 조합원들을 1000명 정도 모으는 것이 목표다”라고 밝혔다. 계획대로 조합원을 모으게 되면 매달 500만원 정도의 운영비가 걷히게 된다.
 
대선결과 맞물려 ‘급진전’

그렇다면 괴산의 농부들은 왜 그들만의 언론을 만드는데 열정을 쏟고 있을까? 아마도 솔뫼농장 유정호 간사가 앓고 있는 ‘심신의 병’이 그만의 중병이 아니기 때문인 것 같다. 차광주 괴산언론협동조합 이사장은 “몇 년 전부터 지역 안에서 ‘소통도 잘하고 좋은 생각이 있으면 발전시켜 나가자’는 목소리가 있었다. 이런 생각들이 지난해 말 대선을 기점으로 응집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느티나무통신’이라는 제호는 이미 2009년 6월에 탄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포털사이트 다음에 카페를 만들고 17명이 회원으로 가입해 운영했으나 현재는 휴면상태다. 결국 2009년부터 시작된 대안언론에 대한 고민이 지난해 대선을 기점으로 분출하게 됐다는 얘기다. 차 이사장은 “지난해 대선결과와 관련해 마음의 공황상태를 극복해보자는데 뜻을 모았다. 그러나 정치적인 의미보다는 힘을 내서 재미있게 살아보자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조합의 총무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김의열 실무위원은 이에 대해 “대안적인 삶의 방식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지역화폐나 대안의료 등 다양한 형식과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느티나무통신의 조합원들은 대부분 생산자로 구성되기 때문에 조합원들이 원할 경우 ‘농산물 직거래’ 기능을 부가서비스로 추가할 가능성이 높다.

기자에서 농부, 청와대 행정관까지 다양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 백승권 동양미래대 겸임교수가 거는 기대도 크다. 백 교수는 “지난 대선 이후 지역에서부터 여론과 담론이 바뀌어야한다는 자각이 일어난 것이다. 담론이라고 해서 중앙 정치권의 갑론을박이 전부는 아니다. 농부들도 사회를 바라보고 판단할 수 있어야한다. 특히 느티나무통신은 충북의 첫 협동조합언론이다. 운영에 있어서도 지역민이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기대를 갖게 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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