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회·신간회 근거지 등 사적지 대부분 멸실

일제강점기 청주지역 독립운동을 주도했던 청년단체들의 활동 근거지가 주민들과 기관·단체의 무관심속에 낡은 문서속 기록으로만 남아 있다.

3·1절 94주년을 이틀 앞둔 27일 오후 청주시 상당구 남주동 한 거리.

이 곳은 한 세기 전 독립된 조국을 꿈꾸는 청년들의 주된 활동지였다. 오랜 세월이 지나고 그들이 바라던 광복이 실현된 지도 70년이 다 되어간다. 하지만 오늘날 그 거리 어디에서도 독립운동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1920년 6월 19일 청주앵좌극장(현 청주 중앙공원 맞은 편)에 지역의 청년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훗날 독립·시민운동을 주도한 청주청년회의 시작이었다.

김태희, 유세면, 김영식, 김종원, 정규택 등이 주도가 돼 출범한 청주청년회는 일제강점기 민족정신을 계발하고 사회를 계몽하며 근대를 지향한 청년단체로, 사회운동, 교육 계몽운동, 사회체육운동의 중심적 기능을 담당하면서 지역의 근대·사회문화 발전에 견인차 역할을 했다.

그 주된 활동지는 청주 중앙공원과 앵좌극장이었으나, 현재 앵좌극장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중앙공원은 단순한 쉼터로 전락한 지 오래다.

이날 청주시내 곳곳에 태극기가 게양됐지만 이 거리에선 찾아볼 수 없다. ‘청주 독립운동의 성지’는 그저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땅 덩어리에 불과했다.

이 곳이 한 때 독립운동의 중심지였다는 사실은 전순동 교수의 논문 ‘일제강점기 청주청년회의 성립과 그 배경’ 등 일부 문서로만 확인할 수 있다.

 1921년, 일제가 주도하는 도시계획으로 청주 중앙공원 내 망선루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일제는 그 자리에 검도와 유도를 연마하는 무덕전을 신축하려 했다.

이때 김태희와 청주청년회가 고적 보존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닌 끝에 1924년 복원해 현재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일제의 문화적 탄압에 대항한 표상도 현재는 노인과 청소년들의 쉼터로 이용될 뿐이다.

결국 일제의 표적이 된 청주청년회는 1928년 신간회의 출범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후 청주의 항일 청년운동은 신간회가 주도해 왔다.

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의 ‘신간회의 민족운동’ 자료 등에 따르면 신간회 청주지회 사무실이 위치해 있던 곳은 청주시 상당구 북문로 2가의 한 골목이다. 하지만 역시 그 흔적은 찾을 수 없고 평범한 식당가로 남아 있다.

이 뿐만 아니라 충북지역 내 독립운동 사적지의 보존·복원 실태는 열악하기 그지없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충북도의 독립운동 사적지는 155곳 중 멸실된 곳이 30%가 넘는 60곳에 달한다. 훼손된 곳도 65곳에 달해 대부분의 독립운동 사적지가 지역에서 잊혀진 상황이다.

청주에서 80년을 넘게 살아왔다는 박천승씨(84)는 “매일 지나다니는 곳이지만 이 곳에서 독립열사들이 활동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었다”며 “가뜩이나 젊은 세대의 애국의식이 부족한 데 이같은 사실을 접하니 씁쓸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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