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호 충북발전연구소. 사회정책학 박사

지역화, 세계화라는 용어를 떠올릴 때면 언론에서나 학술적인 담론에서 언급되는 것처럼 거리감 있는 단어로 여겨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역에서 지역민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답답하고 때론 고통스런 감도 많다.

자본과 인력이 국경을 넘어 자유로운 왕래가 가능해지면서 정보의 홍수와 소통 공간의 확대, 기술혁신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지만 지역민의 의식과 생활방식, 태도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나는 청주, 충주시민인가? 충북도민인가? 한국인인가? 세계시민인가?

지리적인 공간으로 개인의 정체성을 삼기가 쉽지는 않다. 정체성과 동질감이 공간적인 개념인가? 유사한 의식과 사고를 가진 인적 유대감인가?

요 며칠 동안은 새정부 출범 직전에 이루어진 장관 및 청와대 각료 중에 충북출신이 2명이나 포함되어 있어서 지역 언론에서 대단히 환영하는 기사들을 보았다. 사실 태어난 고향이 충북이지 학창시절이나 활동은 거의 중앙과 외국에서 지내온 사람들인데 충북 지역의 발전을 위해서 큰 아군이라도 얻은 양 기뻐하는 모습이 생소하기만 하다.

충북의 정체성이 과연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핫바지론’이나 ‘멍청도’라는 말로 희자되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늘 선거에서 전국의 캐스팅포트를 쥔 무시못할 지역이기도 하다. 충북민의 성향이란 문득 오늘따라 이런 생각이 든다.

청주의 무심천(無心川)이 아닐까? 남들이 생각하는 문제나 모순점들도 다 보고 있고 속이 깊음도 가지고 있으나 시류에 즉각 반응하지 않고 늘 관조하는 자세로 표현이나 언행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주도적으로 현실을 이끌고 가거나 개혁리더로서 현안 문제를 타개하는 선구자적 모습도 아니다. 다만 무심할 뿐이다. 그래서 성질 급한 사람이 이 곳에서는 손해를 보게 마련이다.

좀 체로 반응이 없거나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흐름을 지켜보다 어느 한쪽에 붙음으로서 전체적인 방향을 결정 짓곤 한다. 이러한 기질은 실리가 근저에 깔려 있으면서 상황에 따라 보수적이든 진보적이든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실제 손해를 볼 일은 없다.

그렇다고 현실의 주인도 아니다. 때로는 흐름이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낄 때나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상황이 되면 뒤 늦게 무섭게 폭발하는 기질도 가지고 있다. 그것을 ‘욱’하는 성질이라고도 한다. 쉽게 동(動)하지 않으나 한번 분출되면 저항의 불길은 끝까지 간다.

어찌되었건 현 시대가 요구하는 세계사적 흐름인 주체적, 자율적, 창의적 인간상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필자가 겉보기 식으로 잘못 본 부분도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야기 되는 충북도민의 기질이지 개인적인 성향과는 별개의 차원이다.

필자의 바램은 지역의 발전과 변화를 바라는 마음에서 지역민의 기질적인 측면을 단순히 기술해 보았다. 미처 읽어내지 못한 도민의 진면목이 있다면 다음에라도 이야기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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