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표 편집위원

대탕평(大蕩平)이라는 단어가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국민대통합과 경제민주화 등 박근혜 당선인이 선거기간 내걸었던 구호들을 현실화하기 위해서 제시한 원칙이 바로 탕평이다. 탕평은 중국 경전에 나오는 ‘무편무당(無偏無黨) 왕도탕탕(王道蕩蕩) 무당무편(無黨無偏) 왕도평평(王道平平)’에서 유래했다. 탕탕평평의 줄임말로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아야 왕도가 넓고 공평하게 펼쳐진다는 뜻이다.

조선시대 탕평에 도전한 왕은 영조다. 당쟁의 폐해가 커지면서 왕권이 약화되자 영의정에 노론을 앉히면 좌의정에는 소론을 중용하는 식의 권력 안배를 꾀했던 것이다. 그러나 탕평의 정신보다 기계적 탕평에 치우치다보니 애꿎은 아들만 뒤주 속에서 죽은 것은 아닐까?

박 당선인은 후보시절 정치적 반대축인 호남 인사들을 캠프에 대거 기용했다. DJ의 핵심 측근이었던 한광옥, 김경재 전 의원 등이 그들이다. 박 당선인은 또 독재자의 딸이라는 그림자를 걷어내려는 듯 인혁당 1차 사건 관계자 김중태씨도 캠프에 영입했다. 박정희 시대에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던 김지하 시인의 박근혜 지지를 이끌어낸 것은 선거기간 내 시도한 국민대통합의 정점이었다.

“죽어서 어떻게 DJ를 만날 것인가” “저항시인 김지하는 이미 1991년에 죽었다” 등 극단적 행보를 보인 이들에 대한 비난 여론도 뜨거웠지만 이는 반대진영의 논리일 뿐이었다. 박 당선인 측의 입장에서 본다면 기존의 지지층이나 정치적 동반자들의 반감 또는 이탈을 감수하면서 상대진영을 포용한 것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박 당선인은 선거기간 동안에 탕평이 뭔지 보여줬거나 최소한 탕평의 제스처는 취했다.

그러나 당선인 신분이 된 뒤부터 탕평은 사라졌다. 당내 반발마저 무릅쓰고 칼럼리스트 윤창중을 인수위 대변인에 기용한 것은 신호탄이었다. 총리·장관 후보자와 청와대 수석 인선에서는 탕평의 모든 원칙이 파괴됐다. 일단은 기본적으로 지켜졌던 지역안배가 무너졌다.

16개 시도 가운데 8개 시도에서만 장관 내정자가 나왔다. 이명박 정부 출범 당시 단 1명의 장관도 배출하지 못했던 충북은 충북연고 장관 2명이 포함된 것에 환호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이 역시 충북을 안배했다고 보는 것은 아전인수격의 해석이다.

박근혜 초대 내각의 구성원칙은 외부의 시선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부친 대부터 인연을 맺어온 측근들을 눈치 보지 않고 기용한 것이 눈에 띈다. ‘한 번 쓰면 다시 쓴다’는 원칙이 대를 이어 유효한 셈이다. 전문가라고 생각하면 마음대로 부르니 이른바 투트랙 전략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당시에는 고려대, 소망교회, 영남인맥을 중용한 것을 비꼬는 ‘고소영 내각’ 풍자어가 유행하더니 이번에는 ‘성시경 내각’이라는 말이 흘러나온다. 청와대 수석인사를 포함해 성균관대, 고시 출신, 경기고 인맥이 대거 포진됐다는 얘기다.

이같은 상황에서 2월19일 충북도청 브리핑룸을 찾은 정우택(새누리·청주 상당) 의원의 한마디가 헛웃음을 나오게 한다. “성균관대-고시-경기고 출신이라는 세 가지 조건을 모두 갖춘 사람은 내가 국회에서 유일하다. 또 내각 내정자 가운데 ‘성시경’ 조건을 모두 갖춘 사람은 황교안 법무부장관 후보뿐이다.” 탕탕평평(蕩蕩平平)의 정치가 아니라 ‘탕탕’ ‘’ 정치판의 총소리가 들려올까 걱정이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