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재표 · 글씨: 김재천

유럽인들은 1697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검은 백조를 처음 발견하기까지 백조는 모두 흰색이라고 믿었다. 기독교에서 순결과 은총, 성모 마리아를 나타내는 백조가 어떻게 검은색일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검은 백조, 즉 ‘블랙 스완(Black Swan)’은 극단적으로 예외여서 발생가능성이 없어 보이지만 일단 발생하면 엄청난 충격과 파급효과를 가져오는 사건을 상징하는 말이 됐다.

2012년 9월27일 경북 구미시 산동면 제4국가산업단지에 입주한 휴브글로벌에서 불산가스 누출사고가 발생해 5명이 죽고 18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하기 전까지만 해도 국민 대부분은 불산가스라는 존재조차 알지 못했다.

가스누출에 따른 2차 피해로 20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치료를 받고, 농경지 135ha에서 농작물이 누렇게 말라죽은 처참한 광경을 TV를 통해 지켜보면서도 극단적으로 예외인 사건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지난 1월6일 청주산업단지 입주업체인 GD(글로벌 디스플레이)에서 불산용액이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불산용액이 흐르는 PVC파이프가 깨지면서 용액이 유출돼 작업자가 화상을 입었지만 물에 희석된 상태였기에 2차 피해는 없었다는 것이 관계 당국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불산을 몰랐을 뿐이었다. 그동안 GD 주변의 가로수가 누렇게 말라죽은 이유가 불산가스와 연관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난 1월27일 오후 1시22분쯤 세계 초일류기업임을 자부하는 삼성전자 반도체 경기도 화성사업장에서 불산용액이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삼성은 응급조치를 취하고 협력사 직원 5명을 불러 수리에 나섰다. 삼성이 불산 누출을 경찰에 알린 것은 무려 25시간이 지난 이튿날 오후 2시42분. 수리작업에 나섰던 5명 중 1명이 이 과정에서 죽고 4명이 다쳤다.

여론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왜 갑자기 불산사고가 연달아 터지는 거냐고. 그러나 전문가들은 “액정화면이나 반도체 제조 등 불산을 취급하는 공정이 영세업체로 외주되면서 나타나는 전조증상이다. 앞으로도 일어날 수 있는 대형사고의 전주곡을 듣는 듯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불산이라는 블랙 스완을 이제야 알게 됐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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