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화수소는 나치가 사용한 유태인학살 화학무기
1년에 4차례까지 인화수소로 정부양곡 훈증소독

“아이들은 여전히 살충제 소독쌀 먹고 있다”는 보은민들레희망연대 구금회대표의 주장(본보 759호 보도)은 사실이었다. 청주시와 충주시등 도내 절반가량의 고등학교에서 급식용으로  ‘나라미’(일명 정부미)를 사용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정부양곡을 보관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해충을 방제하기 위해 년 1회이상의 훈증소독을 실시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본보가 입수한 충청북도정부양곡보관현황 자료에 따르면 도는 농림수산부의 지침에 의해 2012년 7월 하순 도내 168개 보관창고를 대상으로 일제히 훈증소독을 실시했다. 이때 훈증소독 약제로 농림부에서 지정한  ‘에피흄’ 1981캔을 사용했다.

그런데  학교급식용 ‘나라미’ 소독에 사용된 ‘에피흄’((주)영일케미컬 생산)은 단순한 살충제가 아니었다. 유엔환경사무국이 ‘사용규제목록’으로 수록한 알루미늄포스파이드 훈증제인 ‘에피흄’이었다. ‘에피흄’의 훈증원리는 충격적이다. 에피흄 약제는 대기중의 수분과 결합해 인화수소를 발생시켜 쥐와 양곡에 있는 해충을 박멸하는 원리다. 이렇게 발생된 인화수소가스는 동물 실험결과 치사농도가 ㎥당 770mg로 유엔환경사무국의 사용규제 목록에 수록돼 있다.  과거 제2차대전당시 나치의 유태인학살 화학무기로 사용된 바 있다. 에피흄에 중독될 경우 피로감과 구토는 물론 심한 경우에는 호흡정지를 유발하고 사망에 이르게 된다.

이렇게 독성이 강한 만큼 곳곳에서 정부양곡의 안정성에 대한 심각한 의문이 제기됐다. 지난해 10월 농림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민주통합당 김영록의원은 고독성농약인인 에피흄 사용에 따른 안전성 문제를 제기했다. 김의원은 “에피흄은 정부양곡창고에서 1년에 1회 이상 사용되고 있으나 양곡 출고때 농약잔류 검사를 하지 않아 국민보건에 큰 허점을 노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농림부는 정부양곡의 안전성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10월 농림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인화늄 정제는 상온에서 기화하도록 만든 고체약제로 휘발성이 강하여 약제처리(4~7일) 후 일정시간 환기하면 거의 잔류하지 않고  쌀의 품질(맛, 향기, 영양 등)도 손상시키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 식품의약품안전청의 잔류허용기준은 0.1mg/kg이지만 지금까지 조사결과 안전성에 문제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 근거로 “1992년, 1994년, 2012년 3차례 잔류시험 결과 잔류허용기준 미만으로 거의 검출되지 않았다”는 것을 들었다.  ‘에피흄’ 제조업체가 공개한 최근 3년간 공급물량은 7만6304㎏이다. 국내 농약 독성은 1급(맹독성)·2급(고독성)·3급(보통 독성)·4급(저독성) 등 네 가지로 구분되며, 현재 고독성 농약에 포함된 것은 에피흄 등 3종류다.

나라미 출고 때 잔류검사 전혀 없다.
그렇다면 에피흄을 이용한 훈증소독은 1년에 몇차례나 시행될까? 농림부 지침으로 시행되는 훈증소독은 년1회였지만 많게는 4차례 이상까지 시행된 것으로 확인됐다. 보은농협에서 정부양곡 창고 관리업무를 수행한 적이 있는 김원만 전국농협노조충북 본부장은  “내 손으로 연간 4차례 정도 훈증소독을 시행했다”고 밝혔다. 김 본부장은 “보은군에서 에피흄 약제를 제공해 실시하는 것은 한차례지만 농협 자체에서 약제를 구입해 수시로 훈증 소독을 한다”며 그 이유로  “쥐가 갉아먹어 손실이 있거나 양곡이 변질되면 농협이 다 보상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시행하는 것 이외에 농협중앙회에서 일괄적으로 지침을 내려 시행하는 것도 확인됐다. 이 사실은 도내 북부지역에 소재한  정부양곡보관창고를 관리하는 농협 관계자가 공개한 공문을 통해 확인됐다.  지난해 4월 농협중앙회가 전국 각 농협에 시달한 이 공문에는 “4월중으로 일제히 정부양곡 창고소독을 실시하고 훈증약제로는 에피흄을 사용하고 결과를 보고하라”는 내용으로 돼 있었다.

취재과정에서 놀라운 내용도 확인됐다. 훈증소독이 도정이전의 쌀을 대상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도정을 거쳐 포장상태에 있는 제품에도 훈증소독이 시행되고 있었다. 청주시 A보관창고 관계자는 “(이 회사)창고에는 도정을 거친 포장상태의 쌀만을 보관한다”며 “쌀이 없는데 왜 소독을 하나. 쌀이 있으니까 소독을 하지”라며 포장상태의 제품을 대상으로 시행되는 것을 확인해줬다.이런 사실은 복수의 농협관계자의 말을 통해서도 확인됐다. 훈증소독은 보통 4일에서 7일정도 밀폐된 상태에서 진행되는데, 이 기간동안 인화수소가스에 노출된 포장상태의 제품이 바로 학교급식등으로 반출되는 것이다.

그러나 상황이 이러한데도 출고되는 양곡에 대한 잔류량 검사는 전혀없었다. 보관과 가공업무, 분출까지 책임지는 청주시청 관계자도 이런 사실을 시인했다. 농림부에서 해명한 자료도 석연찮다. 1992년도에 시행한 검사는 종자용으로 사용될 벼를 상대로 시행한 것이고 1994년 검사도 도정이전의 상태에서 시행된 것이다.  민주통합당 김영록 의원실의 한 보좌관은 “출고하는 쌀을 대상으로 한번도 검사를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정부미를 안전하다고 믿을 수 있겠냐”고 주장했다.

말린호박나물·밤·땅콩·마늘까지 에피흄 소독
대체제 있어도 싸다는 이유로 정부가 방치
국민건강 생각하면 고독성농약 퇴출이 정답

1992년 6월 18일 연합뉴스는 “ 서울경찰청은 17일 중국산 무말랭이등 건채류에 인체에 치명적인 살충제를 살포한 후 시중에 팔아 1억6천만원상당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정모씨를 식품위생법 위반혐의로 구속했다”고 보도했다. 바로 이 살충제가 에피흄이다.

그러나 지금은 건채류에 에피흄을 사용해도 처벌받지 않는다. 농약관리법 시행령이 바뀌어 에피흄을 사용할수 있는 품목이 대폭 확대됐기 때문이다. 현재 농약관리법에서 에피흄 사용을 허용하는 품목은 쌀뿐만 아니라 건채류·기호및향신료·곡물류·두류·박류·한약재·유류료·섬유류·종자류·서류·건과류·마늘·담배등 식탁에 오르는 웬만한 식품을 다 포함된다. 말린 나물이나 밤, 땅콩에서 마늘까지 웬만한 품목을 다 허용하고 있다.

이렇게 고독성 농약인 에피흄으로 소독된 제품이 친환경인증제품으로 유통되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음성에서 축산을 하고 있는 이모씨는 “호박건채나물을 만들어 친환경인증을 받고 대형유통마트에 납품하는 지인이 있는데 에피흄을 사용해 소독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에피흄을 쓰지 않으면 금방 상하기 때문에 제품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농촌진흥청 관계자는 “친환경제품과 에피흄소독은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고 밝혔다. 설령 인증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에피흄 사용이 광범위하게 퍼진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민주통합당 김영록 의원은 정부의 책임을 지적했다. 김영록의원은 “정부가 고독성농약에 대해 대체농약이 없다고 강변하고 있으나 저독성농약인 에틸포메이트 훈증제, PCP제, 피리포유제 등 대체농약이 있다”고 밝히고, “정부가 대체농약이 비싸다는 이유로 국민건강을 도외시하고 고독성농약 사용을 계속하겠다는 것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할 국가의 의무를 저버린 처사다”라고 주장했다.

김의원은 해법으로 “지난해 농촌진흥청이 고독성농약 제로를 선언한 것에 따라 정부주도로 사용중인 고독성농약인 에피흄, MB, 포스팜은 즉각 퇴출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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