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정 충북경실련 사무국장

청남대에 ‘이명박 대통령 길’이 생겼다 한다. 지난 15일, 세종시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한 뒤 청남대를 찾은 이명박 대통령을 위해 충북도는 이명박 대통령길 개장식 행사를 가졌다. 충북도는 사업비 8억원을 들여 폭 1.5m, 길이 3.1㎞ 규모의 산책로를 내고 이곳에 구름다리와 정자를 설치하는 등 ‘이명박 대통령길’을 조성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언론에 보도된 충북도의 변이 궁색하다. 정리하면 이렇다. ‘그동안 청남대를 다녀간 대통령의 이름을 붙여 대통령 길을 만들었는데, 새롭게 조성한 길은 이름이 없었다. 마침 이 대통령이 방문한다기에 자연스럽게(일부 언론에서는 ‘갑자기’) 정하게 됐다. 관광 활성화 차원에서 순수하게 봐 달라.’

단언컨대, 충북도의 발상은 순수하지 않다. 2011년 11월, 언론에 이명박 대통령 길 조성사업이 알려지면서 반대 여론이 들끓자, 충북도는 역대 대통령 길(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최규하, 이명박)로 추진하는 사업 중의 하나라며, 2013년 말경에나 구간별로 명명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직 대통령에 대한 기념사업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위한 ‘액션’이었을 뿐, 충북도는 계획대로 이 대통령 퇴임 전에 이명박 대통령 길을 완공하고 생색을 내려 했던 모양이다.

이 날 이시종 충북도지사는 이 대통령에게 “3년간 요청했는데 이제야 방문해 주셔서 새해에 소원 성취했다.”면서, 오는 5월 열리는 ‘오송 화장품·뷰티 세계박람회’ 입장권을 전달하고, 청주공항 활주로 연장사업 등의 지원을 요청했다고 한다. 이 지사는 2011년 5월에도 모내기를 하러 충주에 온 이 대통령에게 ‘어래답’ 운운해서 빈축을 산 바 있다.

다시, 청남대로 돌아가자. 2003년 4월, 노무현 대통령이 공약대로 청남대를 반환했을 때, 충북도민을 비롯한 전국민은 ‘민권 회복의 상징’으로 받아들이고 환영했다. 그로부터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과연 충북도민에게, 국민들에게 청남대는 무엇인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엄혹한 시절, 대통령 한 마디에 별장을 바로 지어 바쳐야(!) 했던 역사를 우리는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유감스럽게도 충청북도는 ‘대통령 별장’이라는 공간적 한계에 갇혀 한 치도 나아가지 못했다.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만 사용했던 그 공간에 왜 이승만, 박정희, 노무현,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의 흔적까지 남기려 할까? 기껏 돌려받은 대통령 별장을 어째서 ‘대통령’이라는 컨텐츠로만 채우려 할까? 아름다운 청남대의 풍광을 감상하며 걷는 길에 굳이 왜 대통령 이름을 붙여야 했을까? 한번이라도 그 길을 걷게 될 시민들을 생각해 봤을까 싶다.

기어이 대통령 길을 만들고 싶다면, 재임 기간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그 길을 걸으며 되돌아보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구름다리와 정자를 설치할 게 아니라 촛불시위, 용산참사, 4대강 공사, 쌍용자동차 투쟁 등 가시밭길 투성이인 이 대통령 재임 5년의 궤적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최소한, 아이들에게 역사 공부라도 시키게 말이다.

내가 바라는 청남대는, 가급적 대통령의 색깔이 퇴색된 공간이었으면 싶다. ‘힐링’ 캠프에 다녀온 것처럼 심신이 편안해지는 공간, 자연조건 하나만으로도 감탄사가 나오는 그런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낡은 대통령 전시관을 돌아보며 ‘이렇게 좋은 공간을 대통령 한 사람이 독점했구나. 그때 대통령이 누구였지?’ 이렇게 가볍게 회상하는 정도 말이다.

그러나, 충북도가 여전히 “현직 대통령은 청와대에, 전직 대통령은 청남대에”라는 아이디어로 ‘이승만 전 대통령 특별전’ 같은 행사만 치른다면, 청남대는 시민들에게 멀어질 수밖에 없다.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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