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에서 왕으로’ ‘we’ ‘오필리아의 그림자 극장’

오혜자
초롱이네도서관장

우리의 옛이야기에서 시작해서 세계의 옛이야기들을 아이들과 읽다보니 그렇게 전해지고 전해져오는 이야기들의 시작이 궁금했다. 특히 이야기의 내용과 형식이 아주 유사한 여러 대륙에 걸쳐 전해지는 이야기들을 만나면 이야기들에는 어떤 하나의 뿌리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구비문학의 영역에서 주로 이야기를 만나고 즐겨오다가 신화 쪽으로 관심을 넓혀 공부를 하던 중 ‘카이에 소바주’ 시리즈를 만났다.

인간이 최초로 삶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그 ‘생각의 DNA’를 만나는 것 같은, 미지의 숲을 탐험하는 기쁨으로 나카자와 신이치교수의 강의록을 정리한 신화강좌를 읽었다. 2년간 <신화, 인류최고의 철학>, <곰에서 왕으로>,<사랑과 경제의 로고스>,<신의 발명>,<대칭성인류학> 총 5권을 신화공부모임에서 한 챕터씩 읽고 토론하기를 이어갔다.

그 후에도 신화를 재해석한 여러 책들을 공부하면서 모임원들은 카이에 소바주를 다시 한번 더 읽자는데 의견을 모았다. 가장 오래된 인류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해석하여 우리의 눈을 밝혀주었던 감동을 다시 느껴보고 싶었던 것이다. 이 책들에서 저자는 현대문명의 문제점을 ‘압도적인 비대칭’으로 보고 해결책으로 ‘대칭성의 회복’을 제시하고 있다. 신화 속에 흐르는 야생의 사고를 되찾아 무의식 속에 잠재해 있는 감각을 일어서게 하고, 이를 통해 표현되는 지성형태를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려 하고 있다.

이 흐름은 최근 그림책의 그림공부를 통해 우리 안에 잠재된 예술성을 회복하고자하는 우리의 노력과도 닿아있다- 두 번째 책 <곰에서 왕으로>에서는 신화시대의 대칭성의 사고가 상실되면서 왕을 중심으로 하는 국가가 탄생하기까지의 과정, 국가와 함께 탄생한 야만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인간과 곰이 결혼하고 인간과 자연계의 영혼이 닿아있던 조화가 깨지면서 무기와 함께 왕과 국가가 등장하며 불균형 속에 야생이 아닌 야만의 사고가 지배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미래를 여는 대안적 지성으로 우리의 무의식에 잠재해 있는 야생의 사고를 활용하려는 저자의 탐구방식에 놀라고 주술처럼 매력적인 문장에 빠져들어, 독서의 경험이 잠에서 깨어난 후에도 또렷이 기억이 나서 오래도록 사로잡히게 되는 꿈처럼 남아있다.

로버트 존슨의 <we>는 나이가 들어도 ‘사랑에 빠지는’ 환상에서 얼쩡거리고 있는 나에게 신화의 비극적 결말을 펼쳐 보이며 따끔하게 경고한 책이다. <we>는 <she:신화로 읽는 여성성>과 <he:신화로 읽는 남성성>에 이은 3부작 완결판이다.

제목에 ‘로멘틱 러브에 대한 융 심리학적 이해’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사랑이라는 엄청난 환상의 늪에서 허우적대는(혹은 그런 적이 있는)우리에게 로맨틱 러브의 원형인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신화를 통해 질문하고 탐색하도록 하는 안내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상대를 고유한 존재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자신의 영혼을 투사하여 완전해지고자 하는 열망은 결국 비극으로 끝을 맺는다. 나카자와 신이치의 이야기처럼 로맨틱 러브에 대한 환상을 비대칭성의 과정 또는 산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고에도 사랑에 빠진다면, 어이쿠! 소리가 나오도록 놀라고도 사랑을 놓지 못하는 것이 돌이키기 어려운 비대칭적 사회구조의 문제라면, 어찌해서든 대칭성을 회복하는 노력으로 이 증폭된 에너지를 ‘예술’로 승화해 나가라는 것이 대안의 지성이 아닐까.

<오필리아의 그림자 극장>은 미하엘 엔데의 단편인데 그림책으로 출판되고 연극으로도 공연되는 등 널리 사랑받았다. 그림자라는 단어에 담긴 중의적 해석 이외에도 외롭게 떠도는 영혼을 보듬는 우리신화의 바리데기를 떠올리게 하여 마음에 담게 된 책이다. 배우들의 대사를 읽어주며 연극의 일부로 살아가는 오필리아에게는 주인공이 되어보지 못한 사람이든 영혼이든 누구라도 그들의 대사를 읽어주고 무대에 오를 수 있도록 하는 일이 가장 쉽고 잘하는 일이었다.

생각해보니 조연이거나 아직 무대에 오르지 못한 아이들을 빛그림극장에 초대하는 도서관의 엄마들이 오필리아였고,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위로하며 살고 있었던 것 같다. 아무튼 좀 더 살아갈 날들을 위해, 아득히 먼 곳으로부터 발신되어 오는 메시지 더듬대며 어리석은 마음을 들여다보는 공부를 계속해야겠다.

신간소개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팝송 1001
로버트 다이머리, 토니 비스콘티/ 마로니에북스/ 4만3000원

역대 음반으로 발매된 가장 위대한 팝송을 소개하는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팝송 1001>. 다양한 경험으로 무장한 음악 저널리스트와 평론가가 모여, 한 세기에 달하는 분량의 팝송 중 역대 최고의 음반 1,001가지를 선별하여 소개한다. 베시 스미스부터 미시 엘리엇까지 시대를 초월한 전설적 음악인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새로운 무의식
레오나르도 믈라디노프/ 까치/ 2만원

뇌에 관한 연구를 통해서 우리의 행동과 사고를 지배하는 무의식에 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새로운 무의식>. 저자는 이 책에서 fMRI라는 기술의 발전을 통해서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하고 내리는 판단들,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여기는 사실들, 특히 자신의 감정이나 행동의 이유를 분명하게 알고 있다는 생각들이 얼마나 오류투성이며, 의식 아래에서 작용하는 무의식의 영향을 크게 받는지를 과학적으로 밝힌다.

사석원의 서울연가
사석원/ 샘터/ 1만4000원

사석원이 말하고 그린 기억 속 서울의 풍경과 사람을 담은 <사석원의 서울연가>. 서울 토박이 화가 사석원이 자신의 기억을 따라 서울 구석구석을 훑으며 인정이 흐르는 풍경과 추억의 장소를 탐방한다. 수개월간 일간지에 연재하며 쓰고 그린 서울 이야기를 다듬어 19편의 연가와 35점의 그림을 수록하였다. 솔직하고도 대담한 입담과 정감 어린 그림이 읽는 재미에 보는 재미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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