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 온 장고’처럼 그는 돌아 왔습니다. 북악산 기슭에 유폐된 지 정확히 63일만에 그는 다시 돌아와 국민 앞에 섰습니다.

“국민 여러분께 사죄의 말씀 드립니다”며 조아리는 그의 머리는 예전보다 훨씬 무거워 보였고 고뇌 뒤의 신중함이 얼굴표정에 역력해 보였습니다. ‘죄 아닌 죄’로 대통령권한이 정지되는 절체절명의 큰 벌을 감내해야 했으니 그 고통이 어떠했으리라는 것은 십분 이해되고도 남습니다.

어쨌든 그는 백척간두의 사지에서 요행히 살아 돌아왔습니다.
사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을 헌법재판소가 기각한 것은 전혀 놀라운 사건이 아닙니다. 그것은 애당초 잘못된 국회의 결의를 법적 절차에 의해 다시 복권시킨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결과론이지만 탄핵에 대한 옳고 그름은 이미 국민에 의해 판가름난 지 오래입니다. 탄핵과 동시에 광화문을 필두로 전국에서 벌떼처럼 일어난 촛불집회가 그 첫 번 째요, 정국의 판도를 뒤집어엎은 4·15총선이 그 두 번째 입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기각을 보면서 나는 60년대 영화가를 달구었던 프랑코 네로 주연의 마카로니 웨스턴 ‘돌아온 장고’의 라스트 신이 떠올랐습니다. 지난 2개월 탄핵정국의 진행과정과 너무나 흡사했던 것입니다.

손을 엉망으로 다쳐 붕대를 칭칭 감은 ‘장고’는 총을 쏠 수 없게되자 이빨로 돌을 끌어다 방아쇠 고리를 맞춥니다. 그리고도 발사가 잘 안돼 총을 떨구자 악당들이 언덕아래서 슬슬 걸어 올라오면서 비아냥거립니다. “잘 안 들리는데, 장고!” 위기일발, 그러나 드디어 총을 제 자리에 놓은 ‘장고’가 외칩니다. “이 소리는 들리느냐?” 그와 동시에 드르르∼륵 총탄을 난사합니다.
낙엽처럼 악당들이 쓰러집니다. 통쾌한 장면이었습니다.

지난 2개월 우리는 너무 많은 사회적 비용을 지불했습니다. 도대체 야 3당, 193명이 궐기하여 얻어낸 결과는 무엇이었습니까. 국정을 혼란시키고 국민여론을 분열시키고 국가이미지를 손상시킨 것 외에 얻은 것은 과연 무엇입니까.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경제에 서민들이 겪은 고통은 얼마였습니까. 야당과 탄핵을 지지한 일부 국민들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겠지만 나라가 겪은 몸살은 그 얼마였습니까.

그것은 누가 좋고 누가 밉고의 문제가 아니라 발상자체가 잘못이었습니다.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수구세력의 다수의 힘을 과신한 오만이었습니다. 시대의 변화를 막무가내로 외면하고 민심을 거스른 결과가 어떤 것인지, 탄핵을 주도한 세 야당은 뼈아프게 절감했을 것입니다. 인과응보란 바로 그런 것입니다. 사필귀정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제 깊은 성찰이 있어야합니다. 탄핵이 비록 타당성이 결여된 것이었다 할지라도 그런 사태를 야기한 궁극적인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습니다. 한마디로 대통령 자신의 ‘부덕의 소치입니다. 왜, 국민들이 겪지 않아도 될 일로 촛불시위를 벌이고 밤잠을 설치며 ‘혹시’ 하고 근심, 걱정을 해야만 했습니까. 말로만이 아닌 진정 마음으로 자책하고 통감해야 옳습니다. 그렇게 하고있으리라 믿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모두 패자입니다. 야당뿐이 아니라 대통령도, 국민도, 여당도 모두 패자입니다. 야 3당은 말 할 것도 없고, 노대통령은 ‘상처뿐인 영광’을 안았고 국민들은 둘로 갈렸으니 결국 모두가 패자인 셈입니다. 반사이익을 얻은 열린우리당은 좋아할 것 없습니다. 오늘의 승리는 내일의 패배를 잉태한 것에 불과합니다.

노대통령은 국민에게 큰 빚을 졌습니다. 이제는 그 빚을 갚아야합니다. 앞으로 남은 4년 임기, 금방 지나갑니다. 빚을 어떻게 갚을까요. 과감한 ‘국정개혁’입니다. 그것이 살아 돌아 온 대통령이 국민에게 갚을 빚입니다.

‘민심은 조석변(朝夕變)’입니다. 아침 다르고 저녁 다른 게 국민의 마음입니다. 이번에는 야당이 탄핵을 했지만 앞으로 잘 못하면 국민이 탄핵을 합니다. 그것이 무섭습니다.

노대통령은 지금 호랑이 등에 타고있습니다. 잘 내려오고 못 내려오고는 대통령 자신에게 달려있습니다. 좋은 정치를 보여 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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