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기관과 법원 부당해고 인정하는 판결 잇달아
정의가 있다면 회사측 불법 확인한 만큼 조치하길

<해고자 농성촌 탐방기>
계사년 새해 벽두부터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온다. 서울에선 60이 넘은 고령의 경비원이 해고에 항의해 아파트 9층 높이의 굴뚝에서 농성을 하며 새해를 맞았다. 평택에선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울산에선 현대자동차 사내하청노동자들이 고압송전선 철탑에서 새해를 맞았다. 우리 지역도 마찬가지다. 서울 여의도에선 충북지역 공무원노조 해고자들이 천막농성을 하며 새해를 맞았고, 대전지방고용노동청사 앞에선 열세명의 해고노동자들이 새해를 맞았다. 이에 대전 둔산의 해고장 농성촌을 찾았다. 어렵고 고단한 상황이지만 이곳에도 웃음도 있고 새해 소망과 희망도 있었다. 

 

▲ 대전지방노동청 정문 앞에서 두달째 천막농성을 진행 중인 해고 노동자들. 이들의 새해 소망은 해고자들에게 적용한 만큼 사업주에게도 똑같은 무게로 법을 적용하는 것이다.
“경제민주화, 이렇게 거창한 말도 필요 없다. 우리에게 적용한 만큼 사업주에게도 같은 무게로 법을 적용했으면 좋겠다” 대전지방노동청 정문 앞에서 두달채 천막농성을 진행하는 해고노동자들이 밝힌 새해 바램이다. 대전 둔산동 행정타운내의 천막농성장 주변은 인적조차 드물었다. 단지 오래전에 사람이 다녔을 눈길의 족적만이 분주했다. 2012년의 마지막날에도 이곳에는 4명의 해고노동자들이 천막을 지키고 있었다. 천막 안에는 석유난로와 전기장판이 미지근한 온기를 내뿜고, 컵라면 박스와 빈 술병은 이들의 식생활을 대신 보여주고 있다.

이곳 천막은 13명의 해고노동자들이 돌아가며 지키고 있다.  이들은 창조컨설팅이 노조파괴공작에 개입한 것으로 드러난 (주)유성기업의 영동공장과 부강면에 위치한 (주)보쉬전장에서 해고됐다. 오랜 기간 천막농성을 진행한 때문인지 표정엔 피곤함이 곧곧에 베어나온다. “천막농성이 쉽지는 않죠. 씻는 것도 불편하고 춥기도 하고요. 저녁에는 이곳저곳에서 연대 방문을 오시다 보면 술자리가 계속되고요. 지나가는 차량 소리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잘수도 없죠” 유성기업에서 해고된 국석호(42세)씨는 천막농성의 어려움을 이렇게 표현했다. 국씨의 천막농성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했다. 이곳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하기전에  서울 서초구에 있는  유성기업 본사 앞에서 150일이 넘게 농성을 했다고 했다.

초등학교 4학년된 자제와 천막을 지키고 있던 보쉬전장 해고자 정근원(44)씨는 천막농성의 어려움보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더 고통스럽다고 했다.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입장에서 해고로 인한 생계고가 발등의 불이다. 정씨는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를 처분하고 다른 곳으로 전세를 알아보고 있는데 매매도 쉽지 않고 전세도 많이 올라서 걱정이라고 했다. “일시적 어려움이라면 이런 것들을 다 견딜수 있지만 언제 해결될지 모를 상황이 너무나 고통스럽다”는 것이 정씨에겐 가장 큰 어려움이다. 

오랜 농성생활, 일상 생활 붕괴 돼
이들이 말하는 어려움중 공통된 것이 하나 있다. 갑자기 닥친 해고로 인해 이전 생활의 시간표가 모두 헛것으로 됐단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해야 하는데 어느날 출근할 곳이 없어요. 회사에 있다면 퇴근하고 집으로 가서 아이들과 놀아주고 시간을 보내는데 여기서는 퇴근이 없어요” 유성기업 해고자 국씨는 이렇게 일상생활이 사라진 것이 가장 가슴 아픈 대목이다. 심리적 고통도 크다고 했다. 억울함이 가슴에 응어리로 남은 것 같다고 했다.

“이미 다 밝혀졌잖아요. 회사가 창조컨설팅에 그 많은 돈을 주고 노조를 와해시켜려 했던 사실들 말이에요. 우리는 그런 회사의 불법행위 과정에서 해고되고 너무나 많은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린 회사가 말하는 죄값을 충분히 치뤘다고 봐요. 그런데 불법은 한 회사는 아무런 고통을 받지 않습니다”  국씨는 이게 가장 억울하다. 국씨의 시각엔  우리 사회에 정의가 존재하지 않는다. 정씨는 이렇게 가슴에 응어리 진 것이 있으니 정신적인 부분에서 문제가 있음을 직감한다. “어느날 아내가 말해요. 예전같지 않다고요. 갑자기 아이들한테 버럭 화를 내거나 그렇게 변했다는 거에요. 그러고 보니 아이들도 나를 대하는 모습이 예전같지 않아요”

이런 국씨의 말에 7년동안 해고자로 복직투쟁을 해온 계룡시 소재 (주)콜트 해고자 장석천씨가 말한다. “한두해 해고생활로는 아직은 아닌데요. 시간이 좀더 지나면 정말로 견디기 힘들어요. 심리치료를 받지 않고는 살수가 없어요”라며 이른 시일내에 심리치료를 받을 것을 권했다.

회사의 노조 편가르기 수법으로 와해된 인간관계가 무너진 것도 이들이 힘들어 하는 대목이다. 유성기업에서 해고된 염종진(43세)씨는 회사가 설립한 노조로 이동한 조합원과 현 금속노조 조합원 사이에서 벌어진 일을 소개했다. 한 가족같이 지내던 사이였는데 창조컨설팅의 노조파괴공작 이후 폭력사태가 빈번하게 벌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회사가 이를 조장한다는 것이다. 그 예로 식사문제를 들었다. 현행 노조법상 해고자 신분이라 하더라도 해고의 효력을 다투고 있으면 노조사무실과 식당에 출입할수 있는데 회사가 해고자에게 조합원이 식사하는 시간에는  관리자를 동원해 막고 식당출입조차 막고 있다는 것이다.       

새해소망, 법만이라도 지켜라.
이렇게 힘들고 고단한 천막농성 생활이지만 이들에게도 웃음도 있고 희망도 있다. 유성기업 해고자 국씨는 “우리는 충남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다 부당해고라고 판결을 했다. 법원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제기한 ‘근로자 지위보전 및 임금지급 본안소송’에서도 저희가 다 승소했다”고 강조한다.

“이제, 회사가 잘못을 시인하고 법원의 판결대로 이행만 하면 된다”게 국씨의 판단이다. 국씨의 말처럼 이곳 천막농성장에 있는 해고자들은 대부분 행정기관과 법원에서 해고가 부당하다는 판결이 나온 상태다. 유성기업 뿐만이 아니라 (주)콘티넨탈의 해고자 2명에 대해서도 노동위원회는 부당해고 판결을 내렸다. 다만 보쉬전장의 해고자 정근원씨는 충북지방노동위원회에서는 부당해고를 인정했으나, 중앙노동위원회서 기각된 상태다. 그렇지만 이마저도 창조컨설팅이 중앙노동위원회 조사관을 매수한 의혹이 제기된 상태여서 부당한 해고로 판정될 가능성이 높다.

검찰이 최근에 유성기업 뿐만이 아니라 (주)보쉬전장의 창조컨설팅 노조파괴 문건을 대량 입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의 부당노동행위를 검찰이 확인한 것이다.

그래서 이들 해고노동자는 한결 같이 말한다. “노동자를 처벌한 것처럼, 회사의 잘못이 있으면 똑 같이 처벌하면 된다. 노동자를 구속한 수의 반만이라도 사업주에게도 동일한 잣대가 적용되면 된다”고 이들은 강조한다.

대통령선거이후 노동자들이 잇단 죽음으로 인해 많이 힘들었지만 새로운 각오도 다졌다. 8년째 해고자 생활로 접어든 (주)콜트 장석천씨는 “한진중공업 故 최강서씨의 빈소에 조문을 가서 정말로 많이 울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눈물만 흘릴거냐. 전체 노동자들이 힘 모으면 이길수 있다”고 강조했다. (주)보쉬전장 해고자 정근원씨는 “앞으로 5년을 생각하면 막막하지만 함께하는 동료들이 있어 희망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여기 있는 모든 이들이 복직돼 이전의 소박한 일상으로 돌아가길 소망한다”고 했다. 한해의 마지막 날을 천막농성장에서 보내야 하는 고단한 삶이지만 이들에게는 여전히 포기할수 없는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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