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광주, 그 중학생을 잊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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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광주, 그 중학생을 잊지 못한다
  • 권혁상 기자
  • 승인 2004.05.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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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효진청원군수, 방송기자로 유일하게 현장리포트 송고
유언비어 유포죄로 군사법정서 2년 선고, 언론자유선언문 작성

4·15 총선과 탄핵 기각 이후 처음으로 노무현 대통령과 여야 정당 대표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광주 망월동 국립묘지에서 열린 제24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열린우리당 신기남 대표가 함께 자리한 것이다. 이날 기념식은 5·18 민주화운동이 여야로부터 공히 역사적 의미를 평가받는 상징적 자리였다. 충북지역에서도 재야인사와 대학생등 200여명이 이날 망월동 국립묘지를 참배하고 기념식에 참석했다.
80년 5월, 광주의 진실은 군사정권의 억압에 눌려 눈과 입을 가려야 했고 오랜 기간 왜곡전달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93년 문민정부의 출범과 함께 ‘광주사태’는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자리매김했고 참여정부는 ‘국민통합은 5 18정신의 완성’이라고 선언했다. 24년전 그 역사적인 현장에 함께 있었던 취재기자와 진압군 그리고 광주의 실상을 충북에 최초로 알린 민주화 운동가를 만나봤다.<편집자주>

   
▲ 오효진 청원군수
“80년 5월, 나는 한 중학생이 총을 들고 나서는 걸 보고, 오늘 저녁에 계엄군이 들어오니 가지 말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 중학생은 나를 보며 ‘내가 안 지키면 누가 지키겠느냐’고 초랑초랑하게 대답했다. 그 중학생은 그날밤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그때 그 중학생을 떠올리며 나 스스로 벌레만도 못한 놈이라고 생각했다”
오효진 청원군수가 지난 2001년 12월 모월간지에 기고한 글 가운데 일부를 옮긴 것이다. 24년전 그 중학생을 만류한 장본인이 오군수였고, 이튿날 주검으로 돌아온 그 중학생을 지금까지 가슴속에 묻어두고 있다. 오군수는 80년 당시 서울MBC 취재기자였고 전두환 신군부가 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한 이틀뒤인 5월 19일, 광주 취재지시를 받게 된다. 당시 광주의 신문방송사가 거리 시위대에 의해 불에 타는등 국내언론의 현지 취재망은 사실상 마비된 상태였다.
특명을 받은 오군수는 당시 신입기자였던 정동영 의원(전 열린우리당 대표)과 카메라 기자등 4명의 취재팀을 이끌고 광주로 향했다. “이미 그때 광주로 통하는 모든 길이 계엄군에 의해 봉쇄된 상태였다. 장성터널까지 우리 차량으로 이동하고 도보로 광주에 잠입할 수밖에 없었다. 19일 밤에 장성 한 농가에 부탁해 민박을 했는데 마을 주민들이 간첩으로 오해하는 바람에 당황스러웠다. 신분증과 소지품을 확인해주면 밤새 오해를 풀고 이튿날 주민 안내를 받아 극낙강을 건너 광주로 들어가게 됐다”

방송취재팀 2차례 간첩오인 소동
오군수 취재팀에 대한 간첩 오인소동은 광주 잠입 직후에도 다시한번 벌어졌다. 20일 도착한 광주에는 국내 취재진은 찾아볼 수 없었고 외국인 기자들만 자유롭게 취재하는 상황이었다. 오군수는 도청앞 집회를 주관하며 책임자 역할을 맡고 있던 조선대 총학생회장을 직접 만나 담판을 지었다. 당시 광주의 분위기는 국내 언론보도에 대해 극심한 피해의식을 갖고 있는 상태였다. “신군부의 언론통제로 광주 상황이 제대로 보도되지 않다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국내 취재진을 배척하면 누가 온전한 기록을 남기겠는냐고 설득했고 결국 적극 협조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취재용 짚차까지 지원받은 취재팀이 광주현장을 나서는 순간 무장한 시민군에 의해 억류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당시 치안공백 상태에서 학생 지도부와 시민군 사이에 소통이 원활하지 못했고 취재팀에 대한 간첩오인 소동이 벌어진 것. 카메라기자 진모씨가 연행돼 끌려갔고 한밤중에야 풀려나는 촌극을 빚었다. 카메라 장비까지 빼앗긴 상태에서 오군수는 도청-금남로-광주역까지 걸어가며 거리의 참상을 취재했다. 정동영 의원은 병원과 제보현장을 찾아다니며 사망자의 신원에 대해 집중취재했다. 당시 MBC취재팀이 확보한 200명에 가까운 사망자 명단은 광주 무력진압 이후 그 신뢰도가 재삼 확인됐다.

“그때 시신을 수습한 장소였던 상무관의 끔찍한 상황도 목격했고, 아무도 없는 광주역에 방치된 시신도 봤다. 무고한 양민들의 시신과 유가족의 오열을 보니 나도 울분을 가누기 힘들었다. 내가 목격한 현장상황을 취재수첩에 메모식으로 서둘러 정리했지만 광주의 통신이 두절된 상태라서 기사송고가 어려웠다” 시간이 생명인 기사를 살려보내기 위한 고민끝에 철도전화가 퍼뜩 떠올랐다. 당시 교통부 출입기자였던 오군수는 철도전화 이용법을 알고 있었고 광주역 사무실에 있는 전화를 통해 교통부 출입기자실과 통신이 이뤄졌다.
“기자실 여직원이 양손에 수화기를 들고 내가 광주에서 불러준 메모내용을 MBC본사와 연결된 다른 수화기에 전달하는 방식으로 송고를 했다. 그때 기자실에 있던 다른 기자들이 통화내용을 받아적어 돌리는 바람에 정보기관에서 나를 점찍어 둔 것 같다. 두 번째 송고는 광주MBC에서 불에 탄 음성 전용선에 구형 전화기를 연결해 이뤄졌다. 그때 당시 격앙된 상태에서 리포트를 했고 그 내용을 들은 프로듀서와 엔니지어 직원들이 눈물을 흘렸다고 하더라”

현장 리포트에 울어버린 본사 스탭진
하지만 오군수의 현지 리포트 기사(10분 분량)는 보도제한으로 방영되지 못했고 복사본이 나돌기 시작했다. 22년만인 지난 2002년 MBC 광주민주화운동 특집프로에서 마침내 육성 테이프가 공개보도되기도 했다. 하지만 오군수는 당시 리포트 내용이 빌미가 돼 6월 10일 군경합동조사단의 조사를 받게된다. 당시 8명의 언론인이 광주보도와 관련 조사를 받았고 오군수는 서대문형무소에 구속수감됐다. 죄명은 포고령위반죄로 유언비어날조유포, 불온문서 작성, 북한 고무찬양 등의 혐의가 씌워졌다.

기사내용이 유언비어가 됐고 광주항쟁 직후 오군수가 사내에서 작성한 언론자유선언문의 내용이 불온문서로 돌변했다. 기가 막힌 것은 광주 취재당시 북한 방송을 청취한 행위가 반공법상 고무찬양죄에 해당됐다. “국내 언론의 취재가 막힌 상태에서 신군부가 검열한 왜곡보도가 판을 쳤는데, 묘하게 북한 방송에서 광주의 현장상황을 정확하게 실시간 보도하고 있었다. 한편으론 ‘이거 고정간첩이 있는가 보다’ 생각도 했지만 하여튼 광주 취재기자들은 북한방송 보도에 관심을 기울였다”

징역 3년을 구형받은 오군수는 선고공판에서 징역 2년에 형집행면제라는 이례적인 판결을 받게됐다. 형집행면제는 군사법정에서 도입한 지휘관 감면제도에 따른 것이었고 그 지휘관은 당시 수도경비사령관이었던 노태우 전 대통령이었다. 광주학살의 공모자인 노 전 대통령이 광주로 핍박받고 있던 오군수에게 형집행면제를 내린 연유는 무엇인가.

“내가 잘아는 군인사가 노랫말을 하나 써달라고 부탁해서 건네준 것이 바로 헌병단가 가사였다. 변호인이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 결심공판에서 경비근무중인 헌병을 곧바로 증인신청했다. ‘헌병단가의 가사를 보여주니까, ‘아침저녁으로 부르는 노래라고 대답했고 변호인은 ‘이런 노래를 만든 사람이 어떻게 반공법위반을 하겠느냐’며 반박했다. 그때 수도경비사에서 군사재판을 받았고 노태우씨가 사령관으로 지휘관 감면결정을 내린 것인데, 참으로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밖에 없다”

4개월간 옥고를 치르고 출감한 오군수는 이후 4~5년간 요시찰 대상인물이 돼 정보형사의 미행과 행적조사를 받으며 생활했다. 이른바 ‘불온 딱지’가 붙다보니 가까웠던 지인들도 접촉을 꺼렸고 번역 일을 하며 고단한 일상을 보내게 됐다. 이후 잡지사의 원고청탁을 받아 프리랜서로 일하다 84년 <월간조선 designtimesp=23604>에 입사해 연재물인 ‘오효진의 인간탐험’을 통해 필명을 높이게 된다.
“그때 우리 취재팀이 광주 하숙집에 기거했는데 중학생 아들이 총을 들고 나간뒤 이튿날 시체로 발견됐다. 도청 사수대로 마지막까지 저항하다 분신자살한 총학생회장의 마지막 모습등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당시 빠르게 질서를 회복하는 광주의 모습에 놀랐고 도청앞 광장에서 벌어진 직접 민주주의 현장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내 삶은 광주로 인해 소설같은 풍상을 겪었지만, 우리 역사는 결코 이런 역경이 되풀이되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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