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경 전 청주YWCA 여성종합상담소장·캐나다 거주

캐나다 정치에 관심 두어봐야 뭘 하겠나 하면서도 아무래도 내가 살아가고 있는 도시이다 보니 이 나라와 지방의 정치 상황에 슬며시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게 사실이다. 이방인의 눈으로 이 나라 정치상황을 보면 우리나라의 수준이 더욱 선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몇 주 전 집권여당인 보수당 출신 랍 포드 토론토 시장이 법원으로부터 이해상충법 위반 판결을 받아 시장직을 박탈당했다. 이 사람이 시장에 당선되기 전 시의원이었던 시절에 본인 이름으로 만든 ‘랍 포드 축구재단’이 후원자로부터 3천불(우리나라 돈 3백만원 가량)을 받은 게 사건의 발단이었다. 토론토 시의회 윤리위원회는 이 후원금을 정치로비자금 성격으로 보고 벌금을 선고했으나 랍 포드 시장은 반발하면서 벌금납부를 무시했다.

결국 토론토 시의회가 윤리적 판단을 위해 전체표결에 들어갔는데 자신의 이해관계에 관련된 사항을 투표할 때는 당사자가 표결에 참여하는 것을 금하는 ‘이해상충법’을 잘 몰랐던, 혹은 잘 몰랐다고 변명하는 랍 포드 시장이 표결에서 발언도 하고 의결권도 행사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지켜본 한 시민이 이해상충법 위반으로 랍 포드 시장을 제소했고 법원은 랍 포드 시장의 행위가 이해상충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내놓음으로써 2년여 남은 시장직을 박탈한 것이다.

시민들은 ‘법에 대한 무지와 주의 부족으로 인한 고의적 과실이 인정된다’고 밝힌 법원의 판결에 수긍하는 편이라고 한다. 10년이나 시의원을 했던 사람이 이런 중요한 법을 몰랐다고 변명하는 것 자체가 더 문제이고 말이 안 된다는 분위기이다.

한편 판결에 앞서 한 일간지가 ‘랍 포드 시장의 지시에 따라 시내버스 승객들을 도중에 내리게 한 후 한 고등학교 축구팀원들을 태우러 가도록 했다’는 의혹을 보도하면서 시민들은 시장의 월권행위에 대해 강한 반감을 갖고 있던 터였다.

이곳 토론토의 대중교통은 시 예산으로 운영되는 공영제로서 토론토 대중교통 조합에서 맡아 운영하는데 조합장이 매우 정치적인 자리인 모양이다. 3년 전 유력한 차기시장 후보로 거론되던 토론토 대중교통 조합장이 비리문제로 물러난 경우도 있다.

당시 이 사람은 아내와 별거중인 상태에서 한 여대생과 사귀고 있었는데 그가 별거중인 아내와 함께 언론에 나온 것을 보고 화가 난 애인이 비리 사실을 폭로했다. 그런데 그 비리 사실이라는 것이 내겐 너무 충격적이었다. 애인에게 내년에 대중교통 요금이 오를 것이니 미리 토큰을 많이 사두라는 사실을 알려 준 것이 고작 정치생명을 마감하게 한 비리의 내용이었던 것이다.

이 쯤되면 이 나라엔 정치인에게 부여되는 특권같은 건 별로 없어 보인다. 당선만 되면 무소불위의 권력과 특권이 함께 부여되는 우리나라와 사뭇 다른 상황이다.

또 당선여부보다 집권 과정의 정당성과 투명성이 더 중요한 민주주의의 척도라는 사실도 되새겨 볼 만하다. 여당 출신이 대통령에 당선 되었고 검찰도 법원도 언론도 권력의 시녀 노릇을 하고 있는 한국 상황에서 형님비리 아들비리 본인비리라는 ‘종합백화점 비리’인 MB정권에 대한 엄중한 심판은 이미 물 건너 간 거 아닌가 하는 우려 때문일까. 아니면 모르는 게 너무 많은 대통령 당선자 때문일까 토론토 시장의 시장직 박탈 사건이 더욱 의미있게 느껴진다.

토론토 시장 재선거에 가장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는 사람은 중국계 캐내디언 올리비아 차우 (Olivia Chow)다. 진보정당인 연방신민당 NDP의 전 당수로서 지난해 캐나다 총선거에서 자유당을 제치고 연방신민당을 제1야당으로 만든 직후 암으로 사망한 잭 레이튼의 부인이다.

이처럼 캐나다에서도 정치인의 가족이 정치인이 되는 일은 아주 많다. 정치인이란 직업도 일종의 가업을 이루는 분위기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아버지나 남편의 후광으로 정치인의 지위를 유지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올리비아 차우는 결혼 전 이미 교육위원으로서 정치를 시작했다. 그는 중국계 소수민족의 의사를 대변하는 상징적 정치인일 뿐 아니라 진보적 성평등 이슈를 이끄는 여성정치인으로 충분히 정치적 역량을 검증받은 전문정치인이요, 동반자다. 캐나다 언론에 ‘가족세습의 북한 지도자나 전 독재자의 딸 남한 대통령 당선자’(글로브 앤 메일 12월 20일자 보도)로 거론되는 한반도의 정치인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의 가족 정치인이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