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성준 사진부 차장

선거 때면 거의 모든 후보들이 선거유세 장소로 어김없이 청주 육거리 시장을 찾는다. 후보들의 재래시장 방문은 서민과의 동질감을 느끼게 만드는 전형적인 이미지 정치의 교과서적 대본이다. 주름지고 거친 손의 시장상인과 함께한 사진과 영상은 서민들의 이미지를 대변하게에 딱 좋은 컨셉이기 때문이다. 후보들의 동선도 거의 같다.

입구에서부터 시작해 먹을거리를 팔면 한번 맛보고 얼마냐고 물어보고 악수 한 번하고 또 물건 하나 사고 악수 한 번 하고 지지를 호소하며 여기에 기다렸다는 듯 수많은 보도진들은 이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본사 사진자료DB에서 ‘선거유세’라고 명령어를 치면 육거리 시장에서 후보자들이 상인들과 악수하는 장면이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다.

11월 어느 날 유력 대권후보가 육거리 시장을 찾았다. 시장 주변은 이미 한 시간 전부터 소식을 듣고 온 지지자들로 발 디딜 틈 없이 가득했다. 차에서 내린 후보는 정해진 동선에 따라 경호원의 호위 속에서 시민들과의 악수행진을 시작했다.

하지만 운집된 지지자들과 장보러 나온 시민과 보도진들로 뒤엉켜 대열은 이미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흐트러진 상황이 되었다. 나의 몸도 저절로 인파에 이끌려 가고 있었다. 이렇게 후보를 향한 거대한 무리가 노점을 지나자 몇몇 상인은 필사적으로 자신의 노점을 방어하기 시작했고 노력의 결과는 무산됐다.

담아둔 생선이며 과일은 바닥에 떨어졌고 생선은 사람들 발에 밟혔고 과일은 퍼졌다. 상인의 허탈감에 육두문자가 입에서 튀어 나오지만 후보를 지지하는 연호소리에 묻히고 만다. 그 무리는 후보가 밥을 먹고 나오는 시간까지 약 두 시간이 지났을 때쯤 해산이 되면서한바탕 소동은 끝이 났다.

▲ 후보를 향한 거대한 무리가 노점을 지나자 한 상인은 필사적으로 자신의 노점을 방어하고 있다.(위)육거리시장 한 골목 혹한에 노점상인들이 길가에서 사발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었다.카메라 Canon EOS-1D MarkⅢ, 셔터 1/250, 조리개 3.2, 렌즈 70~200mm, 감도 800.


다시 입구로 나와 돌아오는 길, 길가에 콩이며 채소를 바닥에 깔고 파는 노파가 보인다. 혹한에 길가에서 사발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었다. 옆에서 장사하는 아주머니가 끓여주었다는 사발면을 찬밥에 말아 함께 먹고 있는 노파에게 날도 추운데 일찍 집에 들어가시라고 하자 따뜻하게 입고 나와 하나도 춥지 않으며 이따금 나와 차비만 벌어도 집에 간다고 했다. 지나간 상황이 떠오른다. 무엇이 밑바닥 민심일까?

이 노파는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이따금 나와 장사를 할 것이다. 집에 갈 차비를 벌기 위해 한 끼를 때우기 위해…지나간 사진을 디지털 카메라로 본다. 내가 찍은 사진이 왠지 사치스럽다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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