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경진의 <허균 평전>, 허균의 <나는 나의 법을 따르겠다 - 허균 선집>

소종민/ 공부모임 책과글 대표

‘혁명(革命)’은 하늘로부터 내려온 명[命]을 적은 가죽[革] 껍데기를 사람의 힘으로 늘어뜨린다는 말에서 유래했다. 조선후기의 문인 홍석주(1774~1842)는 “그렇게 해야 마땅해서 그렇게 하는 것은 의(義)이고, 그렇게 하지 않았는데도 그렇게 되는 것은 명(命)”(<무명변(無命辨)>)이라고 했다.

‘명’을 사람이 선택할 수 없는 영역, 즉 자연·하늘·신 등의 영역으로 본 것이다. 반면 ‘혁명’은 ‘인위(人爲)’를 극대화하여 자연의 섭리[命]를 바꾸는 시도라고 해석된다. 그렇다면, 인간 본연의 쇠약함을 의술·의학으로 보강하여 수명(壽命)을 연장하는 일 자체가 이미 ‘혁명’이다.

맹자가 말한 ‘역성혁명(易姓革命)’은 말 그대로 성씨[姓]를 바꾸는[易] 혁명, 왕조를 바꾸는 것이다. 여기서 혁명은 자연을 거스르는 행위가 아니라 권력자를 교체하는 정치적 행위이다. 아마 이때부터 혁명은 사람 간의 문제를 지칭하는 단어로 쓰이지 않았나 싶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표현하는 말 중 하나였던 단어가 인간끼리의 관계를 표현하는 말로 전환되었다고 볼 수 있다. 어떻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혁명’은 기존 질서 또는 구체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질서·신체제를 수립하려는 정치 행동을 뜻한다. ‘서자(庶子)의 난’으로 체포되어 처형당한 허균(許筠)은 가히 혁명가였다고 할 수 있다.

허균(1569~1618)은 <호민론(豪民論)>에서 이렇게 말했다. “천하에 두려워해야 할 바는 오직 백성일 뿐이다. 홍수나 화재, 호랑이, 표범보다도 훨씬 더 백성을 두려워해야 하는데, 윗자리에 있는 사람이 항상 업신여기며 모질게 부려먹음은 도대체 어떤 이유인가?” 이유는 자명하다.

권력과 재산에 눈이 멀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480여 년 전에도 눈 먼 자들이 있었다. 물론 한참 이전인 공자?맹자의 때도 그러했다. 허균은 백성들 가운데서도 가장 두려워해야 할 이들이 ‘호민(豪民)’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천지간(天地間)을 흘겨보다가 변고가 생기면 자신의 소원을 실현하려 나서는 이”들이다.

“대저 이루어진 것만을 함께 즐거워하느라 항상 눈앞의 일들에 얽매이고 그냥 법이나 지키면서 윗사람에게 부림을 당하는 사람들”인 ‘항민(恒民)’과, “모질게 빼앗겨서 살이 벗겨지고 뼈골이 부서지며, 집안의 수입과 땅의 소출을 다 바쳐서 한없는 요구에 제공하느라 시름하고 탄식하면서 그들의 윗사람을 탓하는 사람들”인 ‘원민(怨民)’을 이끌어 ‘혁명’을 일으키는 자들이 바로 ‘호민(豪民)’이다. 즉, 혁명가들이다. 생각건대, 호민에 의해 자신의 처지를 깨달은 ‘항민’과, 호민에 의해 불만을 해소할 방도를 찾은 ‘원민’ 역시 곧장 호민의 지휘를 받아 모두 ‘호민’으로 돌변하게 될 것이다.

조용히 논밭을 갈고 길쌈 매던 백성들이 거대한 반란의 무리가 되어 세상의 질서를 바꾸게 되는 것이다. 혁명이다. 그런데 생각건대 과연 혁명은 말 그대로 ‘명’을 거스르는 일일까. 오히려 ‘명’을 거스르는 이들은 탐관오리(貪官汚吏)들이 아니었나.

혁명은 위정자(爲政者)의 ‘불명(不命)’을 바로 잡는 ‘정명(正命)’으로 이해되어야 하지 않을까. 사람으로 태어나 자라면서 곁의 다른 이들과 서로 업신여기지 않고 사랑하며, 서로 멸시하지 않고 존중하며, 서로 빼앗지 않고 나누는 것이 ‘명(命)’에 순응하는 일이리라. 천지재난(天地災難)이라는 자연의 ‘명’조차 견뎌낼 지혜가 인간에게는 충분히 있다.

다시 홍석주의 <무명변(無命辨)>에 따르면, “‘성인(聖人)’은 의(義)를 따르면 명(命)이 자연히 그 가운데 있고, ‘군자’는 의(義)를 행함으로써 명(命)에 순응하며, ‘보통 이상의 사람’은 명(命)이 있음을 앎으로써 의(義)에 따라 행할 것을 결단하고, ‘보통 이하의 사람’은 명(命)이 있음도 모르고 의(義)를 행함도 없다. 그러므로 명(命)을 모르고서 의(義)를 편안하게 행할 수 있는 자는 드물고, 의(義)에 이르지 않고 명(命)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자는 없다.”고 하였다. 무너져가는 조선의 실상에는 눈곱만큼의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던 권세가들이 바로 ‘보통 이하의 사람’들 아닌가.

그러고 보면, 홍석주가 말하는 ‘성인’은 허균이 말하는 ‘호민’이요, ‘군자’는 ‘원민’이며, ‘보통 이상의 사람’은 ‘항민’이라고 적극적으로 재해석해야 하지 않을까. 타락한 조선의 불명(不命)을 바로 잡으려 한 것이 ‘동학농민혁명’이며, 잔악한 일제의 불명을 바로 잡으려 한 것이 ‘3·1운동 등 항일항쟁’이며, 이승만의 불명을 바로 잡으려 한 것이 ‘4·19혁명’이고, 박정희의 불명을 바로 잡으려 한 것이 ‘유신반대투쟁’이며, 전두환의 불명을 바로 잡은 것이 ‘5·18민중항쟁’과 ‘6·10민주항쟁’이기 때문이다. 재해석의 역사적 근거는 매우 충분하다.

더욱이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의 의리[義]와 나고 사는 문제[命]에 조금도 관심 없이 권력과 재산에만 눈이 먼 ‘보통 이하의 사람’들이 판치고 있다. 이들은 인간으로 태어나 서로 사랑하며 살라는 큰 뜻[命]을 모르고서 자기 패거리만의 의리[不義]만을 편안하게 행하는, 세상에 ‘드문’ 1%에 속한 이들이다. 이들은 불의(不義)로 살아 명을 부정하는(不命)의 무리일 뿐이다. ‘보통 이하의 사람’들은 어느 때고 있었다. 이 시대의 불의(不義)와 불명(不命)을 다시 또 어떤 혁명(革命)으로 바로 잡을까. 그것은 바로 ‘보통 이상의 사람’인 우리 자신, 99%에 속한 우리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

신간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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