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서 위안부 문제 서명 받는 김은순 씨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 간사가 말하는 ‘평화란’

토요일 아침 성안길 롯데시네마 앞에 김은순씨(45)가 어김없이 좌판을 폈다. 그는 매주 토요일마다 시민들에게 위안부 할머니들의 실상을 알리고, 위안부 문제가 국제사회에서 이슈가 될 수 있도록 서명을 받는다.

김씨는 지난 10월 첫 주부터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비가오던 눈이 오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가 받은 서명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에 전달된다. 정대협은 국제적인 서명 사이트 ‘AVAAZ’를 통해 위안부가 전쟁 성노예, 강간 범죄의 피해자였다는 것을 알려왔다. 현재 서명받은 사람이 10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그리고 유엔총회가 열릴 때 서명을 토대로 국제사회에 대책을 촉구할 방침이다. 그러니까 김씨의 활동은 오프라인으로 서명을 받는 것이다.


“주말에는 시간이 나니까 봉사하는 것이다. 앞으로 계속 할 것이다. 첫 날 혼자서 1500명을 받은 적도 있다. 어른들은 휙 지나쳐도 아이들은 관심을 갖고 물어본다. 대개 처음에는 ‘아줌마 알바에요’라고 묻는다. 아이들에게 위안부 문제에 대해 차근차근 얘기해준다. 아이들이 공감할 때 보람을 느낀다.” 그가 준비한 피켓을 자청해서 1~2시간 정도 들어주는 여고생들을 만날 때도 있다. 그는 평화는 그냥 오는 게 아니라,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해 분노하고 싸워서 얻는 결과물이라는 설명을 빼놓지 않는다.

그가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올해 초다. “페이스북을 통해 위안부 문제를 더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지인들에게 서명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렸지만,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 거리로 나오게 됐다. 정대협에서 이런 활동가가 100명만 있으면 세상이 바뀔 것이라고 했다.(웃음)”
김씨는 차가 없다. 창고도 없다. 천주교 신자인 그는 서명을 받기 위해 필요한 짐은 천주교 사직성당 창고에 보관하고, 매번 택시를 타고 이동한다.

서명지를 복사하는 비용도 만만치가 않다. 처음에는 사비로 하다가, 최근에는 후원금함을 놓았는데 신기하게도 필요한 비용만큼만 돈이 걷힌다. 서명을 받는 날은 점심을 먹지 않는다. “20만명의 전쟁 위안부 가운데 한국 소녀들이 80%였다. 강간, 살인을 자행하고도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는 아직까지 없다. 생존해 계신 위안부 할머니들이 이제 60여명 밖에 없다. 할머니들의 마지막 소원은 죽기 전 진정한 사과를 받는 것이다.”

김씨가 이렇듯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2009년, 천주교 청주교구 교리신학원에서 ‘교회의 가르침’을 배우게 되면서부터다. 그 후 3년 동안 김씨는 선교학교, 서울대교구 사회교리학교 등을 다니면서 가톨릭교회교리서, 사회교리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문헌들을 본격적으로 접했다. 세례는 95년에 받았다.

이러한 ‘교회의 가르침’의 주된 내용은 사회생활에서 하느님의 말씀과 구원계획에 상반되는 인간의 판단기준이나 가치관, 생활양식 등은 복음과 성사의 힘으로 영향을 미쳐 그것들을 바로잡아 역전시켜야 한다는 것(현대의복음선교17-19항), 그리고 현세질서의 쇄신운동과 사회적인 애덕활동의 지침을 구체적으로 실현해 참된 복음화, 새로운 복음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평신도교령7-8항)는 것이다.

김씨는 그 이후 삶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다고 고백한다. “우리가 하는 신앙고백이 우물 안 개구리 같다는 생각을 했다. 교회교리서를 접하고 우물을 벗어나 세상을 헤엄칠 용기가 났다. 힘 없는 사람들의 연대가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 지도 느꼈다.”

김씨는 용산참사현장에 매주 올라갔고, 쌍용차 희망버스에 몸을 실었다. 강정마을에도 내려가 연대활동을 이어갔다. 현재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다. 그는 “내년에는 정의평화위원회가 사형제 폐지, 위안부 문제, 핵문제 등을 다룰 것이다”고 말했다.

이전에는 두 아이의 엄마로 생계를 책임지며 열심히 살았다. 또 한국정체협회 청주활원회 원장으로 활동했다. 지금도 사직동에서 도장을 운영하고 있다. 무의식 운동인 활원운동을 통해 스스로의 몸 상태를 알고 치료해나가는 독특한 운동법이다.

세상의 풍파를 온몸으로 겪으며 몸이 망가졌던 그는 99년 활원운동을 통해 건강을 되찾았고, 나중엔 도장까지 차리게 됐다고 한다. 또 수많은 임상실험 결과를 조만간 책으로 엮을 계획이다.

그는 건강하기 위해서는 자연의 순리를 지키며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정신건강을 위해서는 부당한 것에 분노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 그의 말대로 ‘평화는 정의의 열매’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