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원근 변호사

지난 주말 시골에 가 이틀 꼬박 김장을 ‘했다.’ 전에 같으면 ‘도왔다’고 표현했겠지만 작년부터는 ‘했다’라고 해도 전혀 과장이 아니다. 아들 3형제와 며느리까지 다 모였다. 첫날은 배추를 잘라 소금에 절이고, 갓·쪽파·미나리 등 배추 속에 들어갈 채소들을 다듬었다.

여러 명이 역할을 나누어 일을 하니 착착 진행되었다. 일하면서 가족들끼리 오순도순 이야기를 주고받는 재미도 쏠쏠했다. 마늘은 2~3일 전부터 아버지가 까놓았다. 어머니는 우리 집 김장의 특징이 명태 대가리, 오징어, 다시마, 무 등을 이용해 만든 육수에 있다고 했다.

때가 때인 만큼 대선 이야기가 나왔다. 제수씨는 안철수를 지지했는데 그가 사퇴해 매우 아쉽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게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난 그는 민주주의가 몸에 배어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유신독재 아래에서 민주화 투쟁을 하고, 그 이후 인권변호사로서 살아왔다. 참여정부에서 국정 수행의 경험을 쌓았고, 여권 후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시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를 갖고 있다고 했다.

어머니는 얼마 전 신탄진에서 노점을 할 때 그곳을 찾은 야당 후보와 악수를 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그를 ‘눈 큰 이’이라고 표현했다. 어머니는 그에게 “우리 아들이 (전) 검사인데 거기 편인 것 같더라”고 했더니, 그가 “어머니는요?”라고 물어, “아들 편이지요”라고 했단다.

어머니에게 슬쩍 아버지는 어떠냐고 물었다. 미리 짐작했지만, 아버지는 여당후보를 지지한다고 했다. 지금 이렇게 먹고살게 된 것이 다 박정희 덕이라면서…….

어머니에게 박정희 시대에 배는 부르게 되었지만 어둠도 많았다고 했다. 민청학련 사건이라고, 죄도 없는 사람들이 붙잡혀가 재판을 받고 억울하게 사형되고, 그 가족들이 수십 년 동안 ‘빨갱이’로 손가락질을 받았다고 했다. 그랬더니 어머니는 “그거 전두환 때 삼청교육대 말하는 거 아녀”라며 쉽게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했다. 난 계속 어머니에게 “그 땐 이렇게 정치 이야기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사람이 돼지가 아닌 이상 배만 부르면 되냐, 생각과 행동이 자유로워야 한다”고 했다.

이튿날은 새벽 5시부터 전날 절여놓은 배추를 씻었다. 어머니와 3형제가 달라붙으니 12시쯤 김장을 모두 마무리할 수 있었다. 형제들은 각자 가져간 통에 김장 배추를 차곡차곡 넣어 시골집을 떠났다. 전에는 어머니가 해 놓은 것을 그냥 들고 가기만 했는데, 직접 한 김장이라 마음이 뿌듯했다.

민주주의는 참여다. 내가 주인이니 당연히 참여해야 한다. 또 민주주의는 책임이다. 내가 선택한 결과는 스스로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명박을 찍었다. 많은 사람들의 기대 속에 출범한 이명박은 국정을 파탄시켰다. 힘없는 용산의 철거민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얼토당토않은 4대강 사업으로 생태계를 파괴하고 국가 재정을 고갈시켰다.

‘MB맨’들로 채워진 검찰조직은 ‘MB를 위한 수사’만 하다가 더는 스스로 버티지 못하고 검찰총장이 부하들에게 쫓겨나는 파국을 맞았다. 다 드러나지 않아 그렇지, 정부조직 전부가 그러할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을 찍은 사람들은 이런 결과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 그런데 그들 상당수는 이명박에게 책임을 돌릴 뿐 스스로는 돌아보지 않으려고 한다.

다시 대선이다. 조금이라도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면 과거에서 배워야 한다. 박근혜는 이명박과 살아온 물이 같은 것 아닌가? 또 그녀는 독재자였던 아버지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가? 문재인은 이명박, 노무현을 뛰어넘어 사회 통합을 이룰만한가? 나라의 주인 노릇은 쉽지 않다. 어렵다면 밤을 새서라도 고민하여야 한다.

내가 만든 김장이 흐뭇하듯, 내가 공들여 선택한 대통령이 더 맛깔스러운 법이다. 그냥 대충 사먹는 김치는 진짜 내 것이 아니다. 조심스럽고 간절한 마음으로 대통령을 뽑아야 할 것이다. 난 민주정부를 위한 300배 정진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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