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태청주공장 “정치적 의도가 아니라 재정비 위해 지운 것”
도 시인 “윤영달 해태 회장, 아트밸리 조성 등 문화계 기여”

청주시 흥덕구 복대1동 해태제과 청주 공장 담벼락을 장식했던 도종환(비례대표 국회의원·민주당) 시인의 시(詩)가 돌연 사라졌다. 지난여름을 뜨겁게 달궜던 ‘도종환 시 교과서 삭제 논란’이 재현되는 것은 아닐까? 더구나 대통령선거를 한 달여 앞둔 시점이라 더욱 민감하게 다가왔다.

도종환 시인은 문재인 민주당 대선후보의 경선캠프 대변인을 시작으로 현재는 시민캠프 안에서 힐링코리아를 운영하고 있다. 문 후보의 대선 외연조직인 담쟁이포럼도 도 시인의 시 ‘담쟁이’에서 유래됐다.

▲ 대선을 앞두고 해태 청주공장 담벼락을 장식했던 도종환 시인의 시가 사라졌다. 그러나 이는 정치적 고려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재정비를 위한 것으로 확인됐다. / 육성준 기자 eyeman@cbinews.co.kr

더욱이 해태제과 청주공장은 새누리당 충북도당 당사로 가는 길목에 있다. 따라서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임을 고려해 아예 지우기로 했거나 일시적으로 지운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던 것. 그러나 상상의 나래는 여기까지다. 해태제과 청주공장에 확인한 결과 재정비를 위해 일시적으로 지운 것이며, 조속한 시일 안에 다시 작업을 하겠다는 의사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해태제과 청주공장 관계자는 교과서 시 삭제 논란을 의식한 듯 “교과서 문제와는 연관 짓지 말아 달라. 어떤 정치적 외압이나 판단도 없었고 만약 그런 의도가 있었다면 진즉에 지웠을 것”이라며 불편한 심정을 드러냈다.

이 관계자는 또 “벽화와 함께 도 시인의 시를 벽에 썼는데 1년 정도가 지나 색이 바랜 것도 있고, 글씨가 작아 잘 보이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어 글씨를 키울 계획이다. 늦어도 다음 주까지는 작업을 완료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그의 말대로라면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을 고쳐 매는 것을 배를 따는 행위로 오해한 셈이다.

앞서 도종환 시인의 시 교과서 삭제논란은 지난 6월 불거졌다. 교과서 내용을 검정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6월26일 “현역 정치인의 경우 정치적 중립성을 감안해 수록을 배제하도록 하는 게 원칙”이라며 도 시인의 시와 수필을 수록한 교과서 8종의 발행 출판사에 수정·보완 권고서를 보내면서 비롯된 것이다.

이같은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여론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결국 평가원은 7월10일 “국어과 검정심의회를 소집해 논의한 결과 도 의원과 관련해 출판사에 전달했던 수정·보완 권고사항을 철회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평가원은 결정을 내린 배경에 대해 “도종환 의원 작품의 교과서 게재가 ‘공직선거법 위반이 아니다’라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해석에 따른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해태 “예술경영 방침 따라 시도”

그렇다면 해태제과 공장 담벼락에 도 시인의 시가 등장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이는 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 회장의 경영방침인 ‘예술경영’에서 비롯된 것으로 확인됐다. 윤 회장은 2010년부터 광주아트페어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을 정도로 문화예술계에 깊이 발을 담그고 있는 기업인이다.

윤 회장은 11월3일과 4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창신제(創新祭)’에 임직원 100명과 함께 참여해 판소리 사철가 ‘떼창(판소리 합창)’하는 이벤트를 벌이기도 했다. 100명이 별도의 고수(鼓手) 없이 각자 북장단을 치며 떼창을 한 것은 유례가 없는 것으로, 한국기록원의 검증을 거쳐 기네스북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윤 회장은 최근 한 문화전문잡지와 인터뷰에서 “과거의 기업은 물건을 생산해서 판매하는 ‘팩토리’ 개념이 강했지만 21세기 기업은 단순하게 물건만 팔아선 생존할 수 없다. 고객들의 라이프스타일과 기호를 읽어내야 하고 이를 제품에 반영해야 하는데 그중에 제일 중요한 키워드가 바로 ‘문화’다. 화장품, 컴퓨터, 자동차, 휴대폰, 의류, 아파트, 심지어 과자 한 봉지에도 문화를 담지 않고선 고객들에게 통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고 밝혔다.

해태제과 관계자는 “회장의 예술경영 방침에 따라 공장 환경을 미화한 것이다. 과거 학교에 장학사가 오면 환경미화를 하듯 그런 맥락으로 보면 된다. 청주를 대표하는 시인이 누구인가 논의한 끝에 도종환 시인을 선정한 것이다. 회사 관계자가 지난해 12월 도 시인을 직접 만나서 이러한 뜻을 전하고 허락을 구했다. 시는 ‘봉숭아’ ‘감꽃’ ‘흔들리며 피는 꽃’ 등 3편을 선정했는데, 이는 도 시인이 직접 추천한 것”이라고 말했다.

도 시인은 이에 대해 “윤영달 해태 회장은 경기도 장흥의 모텔촌을 매입해서 수만 평의 아트밸리를 만들어 화가들에게 작업장으로 제공할 정도로 문화계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 인물이다. 그런 이유로 윤 회장을 비롯한 해태 관계자들과 친분이 있다. 시를 추천해 달라고 해서 부탁을 들어준 일은 있는데, 그 시들이 해태공장 담벼락을 꾸미는데 쓰였는지는 몰랐다”며 웃었다.

▲ 청주시 신봉동 우림필유에 있는 담쟁이 시비와 포스코 본사 로비와 계단을 장식한 도종환 시. / 육성준 기자 eyeman@cbinews.co.kr


청주 신봉동 우림필유에는 ‘담쟁이’ 시비
우림 “지역연고 시인의 좋은 시 알리는 문화경영 일환”
포스코 로비 계단·부산 범천시장 등 곳곳에 詩詩碑碑

도종환 시인은 1986년 출판한 <접시꽃 당신>으로 이미 전국적인 유명세를 탔다. 그를 충북의 시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적절치 않다. 충북이 배출한 시인이라고 불러야 합당하다. 시집 밖에서 도 시인의 시와 조우할 수 있는 장소는 비단 해태제과 청주공장 담벼락뿐이 아니다.

2005년 분양한 청주시 흥덕구 신봉동 우림필유 아파트와 청원군 오창읍 우림필유 담벼락에도 각각 도 시인의 ‘담쟁이’와 ‘혼자사랑’이 부조형태의 시비로 조성돼 있다. 담쟁이 시비는 경남 창원시 진해구의 우림필유 아파트에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우림건설 본사 홍보팀 관계자는 “우림건설은 이미 16년여 전부터 문화경영에 뛰어들었다. 아파트 입구에 시비를 조성하는 것은 주민들의 정서함양에도 기여하고 좋은 시를 알리려는 문화경영의 일환”이라고 소개했다. 이 관계자는 또 “될 수 있으면 지역연고가 있는 시인과 작품을 선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설명했다.

담쟁이 시비가 진해에도 있는 것과 관련해서는 “도종환 시인이 워낙 좋은 시를 많이 쓴 시인이 아닌가. 진해 말고도 몇 군데 더 도 시인의 시비가 있는 것으로 안다. 도종환, 안도현 등의 시는 연고를 떠나 다른 지역에도 시비를 만들었다”고 귀띔했다.

우림 관계자는 이밖에도 “시인과 시는 사내에서 자체 결정한다. 시 문화를 확산하자는 취지에 따른 것일 뿐 기업의 이익을 추구하는 일이 아니다보니 아직까지 저작권료를 요구하는 사례는 없었다”고 덧붙였다.

도 시인은 “부산 범천동시장에도 시비가 있어 포스코 본사에는 시를 이용한 인테리어가 있는 것으로 안다. 살아서 활동하는 시인의 시비를 만드는 것은 부끄러운 낯내기라고 생각하지만 사람들에게 위안과 용기를 줄 수 있다면 바람직하다. 그래서 부산 범천시장 상인들이 ‘흔들리며 피는 꽃’ 시비를 세울 때는 제막식에도 참석했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