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이 사는 집/ 임성재 아이쿱 청주생협 이사
청원군 낭성면 인경리에 집 건축···도서관·모임·콘서트 가능한 스튜디오가 중심

▲ 집 주인인 임성재 이사(왼쪽)와 설계자 김억중 교수

올 여름 이후 임성재 자연드림 청주생협 이사(58)를 만날 때마다 집이 언제 완공되느냐고 물었다. 그럴 때마다 미루던 그가 이제 와도 좋다고 했다. 상당산성 길은 그렇게 붉던 단풍잎이 다 떨어지고, 어쩌다 나무에 달려있는 나뭇잎마저 기운이 빠져 스산했다. 세월의 흔적을 느끼며 그 산성 길을 넘어 청원군 낭성면 인경리로 갔다. 낭성면 전원마을에 임 이사의 집이 있었다. 땅은 지난 2009년 분양할 때 구입했으나, 엄두를 내지 못하다 퇴직하면서 ‘숙원사업 1순위’로 집을 지었다.

임 이사가 집을 짓기로 결심한 것은 퇴직 후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결부된다. 아파트는 주어진 공간에서 사는 것이지만, 집을 지으면 자신의 삶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라는 것. 그런 점에서 아파트를 탈출하고 자신만의 공간을 마련한 것은 그에게 있어 하나의 터닝 포인트가 될 것이다.

이 집의 설계는 김억중 대전 한남대 건축과 교수가 맡았다. 임 이사 친구이기도 하다. 김 교수는 인문학적 건축을 하는 사람으로 아파트 탈출을 적극 권한다. 원룸아파트에 사는 부부가 싸운 뒤에는 피할 곳이 없어 한 사람이 집을 나가고, 그러다보면 결국 이혼으로 이어진다는 게 평소 그가 주장하는 말이다.

▲ 미술관처럼 보이는 집 전경
밖에서 보면 이 집은 딱 미술관 같다. 외장은 단열을 생각해 드라이비트로 처리했다. 내부도 예사롭지 않았다. 현관에서 긴 복도를 따라가야 거실에 닿는다. 두 사람의 생각이 맞아떨어진 접점에서 집이 탄생된 듯 집 주인과 설계자의 마음이 잘 반영된 것 같다. 취재하러 간 날, 김 교수가 임 이사의 집을 방문했다.

들어보니 집이 탄생되기까지의 과정도 특별했다. 김 교수는 “설계하는데 6개월이 걸렸다. 설계는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고 삶을 짓는 것이다. 나는 이 친구에게 집을 왜 짓는가부터 물었다. 새 집을 지은 뒤 어떤 꿈을 실현할 것인가 같은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구체적이지 않다. 그런데 임 이사는 이 집을 마을의 작은 커뮤니티 공간으로 활용하며 사회적인 삶을 살고 싶어했다. 그래서 스튜디오를 가장 중심에 배치했고, 나머지는 소박하게 꾸몄다”고 말했다.

바깥 풍경 중요, 내부는 수수하게
이 집의 특징은 밖으로 내다보이는 풍경이 중요한 만큼 내부를 수수하게 처리했다는 것이다. 임 이사는 “밖을 보여주는 저 창문에 돈을 좀 썼을 뿐 나머지는 싼 것으로 했다. 시간따라 자연이 변하는 모습, 새가 날아가는 모습 같은 것을 즐기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가구를 없애고 모두 붙박이장으로 해결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수납공간이 많고 편리하다. 무엇보다 가구를 따로 살 필요가 없으니 돈이 절약된다. 붙박이장은 아파트처럼 흰색으로 처리해 내부가 넓어보였다.

▲ 소박한 2층 거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대목. 이렇게 전원에 단독주택을 지으려면 돈이 많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청주시내 48평대 아파트를 팔면 땅값과 건축비를 충당할 수 있다고 두 사람은 말했다. 생각처럼 많은 돈이 들지 않고 형편에 맞춰 크기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임 이사도 돈에 맞추느라 중간에 규모를 줄였다. 어쨌든 그는 “아침에 창을 열면 시 한 편이 나올 것 같다”며 즐거운 기분을 표현했다. 김 교수는 이 집의 당호를 사의재(四宜齋)라고 지었다. 이 집을 기반으로 뜻을 펼치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한편 임성재 이사는 충남 부여출신으로 청주에 와서 산지 15년 됐다. 대전MBC PD로 활동하다 지난 97년 CJB청주방송이 개국하면서 편성부국장으로 왔다. 이후 편성국장 겸 본부장을 거쳐 상무이사를 지낸 뒤 지난해 퇴직했다. 대전MBC에 있을 때는 노조위원장을 내리 세 번이나 역임했다. 양복쟁이로만 지내던 임 이사는 지난해 퇴직한 뒤 청바지 차림의 ‘청년’으로 돌아왔다. 이후 윤리적 소비를 주창하는 자연드림 청주생협 이사가 됐고, 이어 오는 12월 12일 문을 여는 자연드림 분평점 경영이사로 본격 활동하게 됐다. 취직은 생각지도 못했던 행운이라고. 그도 최근 1년여 사이에 인생에 큰 변화가 왔다고 말했다.

가장 사회적인 공간 ‘스튜디오’
책보고, 음악듣고, 영화보고, 콘서트 할 수 있는 곳

임 이사는 이 곳을 스튜디오라 불렀다. 2층 거실에서 내려다보면 훤히 다 보이는 공간. 가운데 커다란 식탁겸 책상인 다목적 탁자가 있고 양쪽으로 붙박이 책장이 있다. 주인이 책을 좋아해 책이 많은 편이다. 한 3000권 된다고 했다. 책장 앞에는 화목난로를 한 대 놓았다. 신문지에 불을 붙여 장작을 때면 운치가 있고 2층까지 훈훈해진다.

▲ 이 집의 가장 중요한 공간인 스튜디오. 작은 커뮤니티공간으로 설계됐다.

집 주인은 여기서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본다고 했다. 또 모임을 하고, 하우스콘서트도 하고 싶다고 했다. 실제 그렇게 만들어진 공간이다. 그는 “퇴직후 집을 활용해 가치있는 삶, 더불어 사는 삶을 살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설계자 김억중 교수에게 주문한 것도 이런 것을 할 수 있는 집이었다. 우리 집의 중심은 스튜디오이고, 이 곳에 가장 많은 투자를 했다”고 말했다.

따라서 이 곳은 가장 ‘사회적인’ 공간이다. 사람들과 모여 문화를 창조할 수 있는 곳이다. 문을 닫으면 2층의 생활공간과 자동적으로 분리된다. 이 스튜디오의 천장 높이는 4m나 된다. 반면 방과 거실은 2.2m로 낮다. 벽 한쪽의 흰색 가림벽은 보통 때는 그저 가리개 역할을 하지만, 특별할 때는 스크린으로 돌변해 영화를 볼 수 있는 유용한 물건이다. 또 가림벽 안에는 레코드 판을 정리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그리고 스튜디오에는 임 이사가 가장 좋아한다는 쪽방이 한 칸 딸려 있다. 그는 2층으로 오르내리지 않아도 될 정도의 찻잔과 그릇을 쪽방에 벌써 가져다놓았다.

▲ 이 복도를 따라가야 거실이 나온다.
김 교수는 “임 이사가 은퇴후 살아갈 날이 30년 정도 될 것 같다. 이 공간을 배경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내놓을 것이다”며 “큰 창 너머로 밖을 내다볼 수 있다. 자연이 변해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 될 것이다. 집을 한 쪽으로 몰고 마당을 최대한 확보한 것도 이벤트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 이사는 우선 집이 정리 되는대로 이 곳에서 오픈콘서트를 열 계획으로 있다. 김억중 교수 부인인 김미영 바이올리니스트를 초청한다는 것. 그런 다음에는 월 1회씩 콘서트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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