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영 정치·문화부 차장

기자가 되면 아침에 폐지를 줍는 어르신들을 만났다가, 오후엔 시장을 만나 복지정책에 대해 물을 수 있다. 그날도 그랬다. 오전엔 청주시내 한 실업계 고등학교에서 ‘기자’에 대해 썰을 풀고, 오후엔 청소년 쉼터에서 아이들을 만났다. 그들의 나이는 열일곱와 열여덟. 교복을 입고 교실에서 만난 아이들과, 거리에서 지내다가 쉼터에 온 아이들의 신체적 나이는 같았다.

오전에는 기자의 직업에 대해 설명하는 자리였는데, 아이들은 궁금증이 많았다. 특히 연봉이 얼마냐는 질문은 빼놓지 않고 받았다. 솔직히 말하면 실망할 것 같아 에둘러 말했다. 기자에 대한 직업강의를 하면서 정작 기자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최근에 직업 강의가 열풍이다. 한 교실에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초청하고, 아이들은 알고 싶은 직업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듣는 형식이다. 아이들에게 기름기 뺀 이야기를 전해야겠다고 다짐하고 교단에 섰지만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니 “꿈을 꾸면 다 이루어진다”는 말을 계속 반복하고 있었다.

오후에 쉼터에서 만난 아이들은 부모의 이혼과 폭력으로 얼룩져 있었다. 심각한 문제들을 한꺼번에 안고 있는 아이들은 비교적 담담했다. 이럴 땐 취재를 위해 질문하는 게 미안하다. 부모님은 어땠는지, 쉼터에는 왜 오게 됐는지 물어볼 때마다 가슴 아픈 이야기가 쏟아진다.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소녀들은 검정고시를 통과하면 각자 못 이룬 꿈을 이루고 싶다고 했다. 물론 자신들의 갈 곳이 얼마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인지했다. 쉼터에서 머물 수 있는 기간이 끝나면 다시 다른 지역으로 떠나야 한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지금 가출청소년이 약 20만이라고 추산한다. 거리에 내몰린 아이들은 가출팸을 조직해 무리를 지어보지만, 성매매를 조장한다거나 폭력에 재차 노출되기 일쑤다.

쉼터에서 만난 아이들에게도 “꿈을 꾸면 다 된다”는 말을 다시 했지만, 정말 그렇게 되려면 몇 배의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잘 알고 있다.

가출청소년들에게 우리사회의 사회적 안전망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걸까. 충북에는 쉼터의 숫자도 턱없이 부족하고, 시설 또한 열악하다. 어쩌면 가출 청소년들에게 쉼터는 지루하고 딱딱한 공간이다. 가끔 하룻밤을 때우는 곳으로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쉼터는 가출청소년을 받아주는 유일한 보금자리다.

지금 학교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쏟아지고 있는데, 정작 거리의 청소년들에게는 어떠한 지원을 하고 있을까. “여성가족부는 돈이 없어서 못한다”는 한 사회복지사의 얘기를 들으니 씁쓸하다. 학교폭력은 교육청, 경찰청에서 주관하니까 뭔가 프로그램이 이뤄지는 듯 보이는 데, 학교를 떠난 아이들을 지원해 줄 부서가 돈이 없다니.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 또한 갈라진다. 의식과 재력을 갖춘 부모들은 공교육의 대안으로 대안학교를 찾을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학업 중단 및 이 사회의 루저로 일찍이 전락한다. 청소년 시기에 마음껏 먹을 수 있고, 교육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이 사회에선 이렇게 어려운 이야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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