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유연하게 대처해야

3월 12일, 야3당에 의해 국회에서 전격 통과된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이 14일 헌재 판결로 최종 마무리됐다. 모든 국민들은 헌재 판결을 존중하고 정칟경제적 위기를 극복하는 데 슬기를 모아야 할 시점이다.아울러 정치권은 두 달여의 탄핵 정국이 우리 국민에게 남긴 불필요한 국력 낭비와 상처에 대해 속죄하고 헌재 판결에 따른 후속조치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국회의 탄핵 발의를 전후한 시점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국민들 사이에서 형성돼온 갈등과 반목의 현실은 이성적 당위성만으로는 접근이 어려운 상처와 골을 만들었다. 아직까지도 사이버 공간을 비롯한 대중 담론의 최전선에서는 탄핵 찬반 논쟁이 사생결단에 가까운 이념적 갈등으로 변질돼 심각한 계층 갈등을 촉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탄핵안 가결에 적극적 지지를 표명하는 이른바 찬탄세력의 핵심 이데올로그들은 낡은 이념적 잣대를 탄핵 찬성의 핵심 논거로 거론하며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워왔다. 인터넷 매체마다 게시판에는 개혁세력과 대통령을 빨갱이로 몰아붙이는 섬뜩한 댓글들이 게재됐고, 우리 사회 최고의 지성으로 불리는 이화여대의 어떤 교수는 탄핵안 부결 후의 대응 수단으로 박정희 식 쿠데타를 은근히 부추기는 망언을 일삼기까지 했다.

급기야, 며칠 전 미국 한인 동포들이 북한 룡천 열차 폭발 참사를 지원하기 위해 마련한 뜻 깊은 행사장에서는 외국인이 보기에도 민망한 낯뜨거운 장면이 연출되기에 이르렀다. 현지 교민들이 십시일반 모금한 성금을 북측에 전달하기 위해 열린 이날 행사에는 UN주재 북한 참사관이 참석해 교민들의 뜨거운 동포애에 진심어린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런데, 행사를 마치고 식장을 떠나던 북한 관계자들에게 뜻하지 않은 봉변이 일어났다. 주최 교민들의 이른바 ‘친북적 행태’에 불만을 품은 일부 극우 한인들이 행사장을 퇴장하는 북측 참석자들을 가로막고 미리 준비해온 물병을 뿌리며 난동을 부린 것이다.
다행히 긴급 출동한 현지 경찰과 주최측의 신속한 대응으로 사태는 조기에 수습됐지만, 이역만리 타국에서 벌어진 ‘코리안’들의 추태를 지켜본 미국인들의 반응이 어떠했는지는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다.

대통령 탄핵안 의결의 정당성과 합법성 여부를 떠나 탄핵 사유 어느 항목에도 포함되지 않은 이념적 문제가 탄핵 정국의 주된 후폭풍으로 작용했던 현실은 두렵고 혐오스러운 일이다. 이미 역사적으로 승패가 갈린 해묵은 이념 논쟁에 묶여 같은 민족을 증오하고, 인륜마저 저버리라고 요구하는 일부 극우 세력들의 교조주의적 행태에서는 병적인 불안과 초조함마저 느껴졌다.
6·15 남북 정상회담 직후 군사회담을 위해 서울을 찾은 북한의 최고위 현역 장성이 ‘주적’인 ‘남조선’ 대통령을 향해 거수 경례를 하던 광경이 새삼 생생하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독재 왕정을 꿈꾸는 북한의 이념적 유연성이 이러할진대, 탄핵정국 2개월 동안 표출된 대한민국의 이념적 좌표는 왜 그리 경직되고 혼란스러워야 하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이주익미루애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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