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工作)은 상상력 그 이상이다. 그래야 공작이다. 전쟁 포비아(phobia)를 숙명처럼 안고 살아가는 분단국 남한이 북측의 도발을 비밀리에 사주한다면? 극도의 불안감이 안보논리를 상승시키고 이는 곧 여당 지지로 귀결될 것이다. 적어도 15년 전에는 그런 셈법이 먹혔다.

1997년 15대 대선 직전 오정은 전 청와대 행정관 등이 베이징에서 북측 박충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참사를 만났다. 이들은 북에게 판문점 총격시위를 사주했으나 성사되지 않았다. 2003년 9월 대법원은 오 전 행정관 등의 국가보안법상 회합통신 혐의에 대한 상고심에서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른바 ‘총풍(銃風)사건’의 전모다. 보다 포괄적인 범위에서 ‘북풍(北風)’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북측의 움직임은 늘 남한 선거의 변수였다.

▲ 김해 을 재보궐 선거가 열린 작년 4월 27일 오후, 창원터널 창원에서 김해 장유방향이 심한 정체를 빚고 있다. /경남도민일보DB

공작은 진화한다.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는 데는 바람보다 햇볕이 더 효과적이라는 10년 동안의 학습효과 때문에 공작은 더 은밀해졌다. 비록 일개 국회의원 비서가 우발적으로 꾸민 것으로 결론이 났지만 2011년 10·26 서울시장 재·보선에서도 ‘선관위 디도스’라는 기상천외한 공작이 벌어졌음이 드러났다. 선관위 디도스란 출근 시간에 투표소 위치를 찾지 못하도록 중앙선관위 홈페이지에 사이버테러를 감행한 사건이다.

정우택의 남자에서 피고발과 폭로, 구속 등 생애 최대의 시련기를 겪고 있는 손인석 전 새누리당 청년위원장은 구속당일인 9월24일 아침 충청리뷰 앞으로 자필진술서를 남겼고 충청리뷰는 이를 기사화했다. 이 진술서에는 2011년 4.27, 10.26 등 두 재·보선에서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이 감행했다는 3건의 공작이 담겨있었다.

그 첫 번째는 4·27 김해을 재보선 당시 창원터널에서 가짜공사로 교통체증을 일으켜 퇴근시간 대 투표를 막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토건회사를 운영하는 손 전 위원장은 1억원을 마련해 김태호 캠프에 전달한 과정에 대한 진술과 함께 선거 뒤 중앙당사를 보수한 것처럼 꾸며 돈을 돌려받은 돈세탁을 입증할 증거물까지 남겼다.

두 번째, 세 번째 공작은 4·27 강원지사, 10·26 서울시장 재보선에서 각각 상대후보 밀착감시, 트위터리안 알바 등에 1500만원씩을 사용한 의혹이다.

기관은 아직도 판단중이니

팟캐스트방송 <나는 꼼수다>는 창원터널 가짜공사 의혹을 ‘터널 디도스’라고 명명했으며, 네티즌들이 민감하게 반응했다. 중앙언론도 화들짝 놀라서 달려들었으나 마른장작을 태운 불길처럼 이내 시들해졌다. 확인 결과 일부 미심쩍은 공사와 저녁시간 정체가 있었지만 당시 교통체증이 유달리 심한 편은 아니었고 투표율도 상대적으로 높아서 ‘마의 35%’를 훌쩍 넘겼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당일 현장에서는 창원중부경찰서의 판독기 철거공사와 화물차가 짐을 도로에 떨어뜨리는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김주완 경남도민일보 편집국장은 충청리뷰와 인터뷰에서 “창원터널은 김해와 창원공단을 연결하는 터널로 하루 통행량이 10만대에 이르고 특히 출퇴근 노동자가 많이 이용하는 길목이다. 그래서 일부 유권자들을 중심으로 ‘창원터널 감시단’까지 꾸려질 정도로 민감한 장소였다. 이같은 관심 때문에 그런 시도가 있었더라도 기대했던 효과를 거두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새누리당의 한 당직자는 손 전 위원장의 지인에게 “혹시 명단도 가지고 들어간 거 아니죠?”, “위원장 하면서 경비 등등 입출금 꼼꼼히 기록했다고 하더라구요” 등 수십 건의 문자메시지를 보내 어수선한 당내 상황을 숨죽이며 전하고 있다. 그러나 공연히 떨지 말라. 수사기관과 ‘언론기관’은 여당의 실패한 공작에 대해 아직까지 철퇴나 몽둥이보다 가녀린 회초리를 만지작거리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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