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3억 6000만원 지원해 개․보수, 석면 지붕 대신 판넬로
40년 만에 양변기 놓여…하수도 공사 및 보도블럭 교체도

“어제 밤잠을 설쳤어. 지붕을 바꾼다고 하니 설레서 잠이 와야지. 돌아가신 양반이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좋겠어. 지난 추석 때 산소에 가서 새 지붕 놓는다고 얘기했어. 새 지붕 달 때 하늘에서라도 와서 꼭 보라고 했지. 아마 살아계셨으면 지붕 달 때 이래라 저래라 했을 텐데….”

운천동 541번지 22가구가 거주하는 피란민촌의 반장을 맡고 있는 정도화씨의 얼굴은 상기돼있었다. 정 씨는 30년 넘게 반장을 맡았던 남편 구응회(72)씨가 지난해 갑자기 췌장암으로 세상을 뜬 후 반장을 이어받아 궂을 일들을 맡아왔다. 정씨의 집은 지난 5일 반평생을 보낸 슬레이트(석면) 지붕을 내보내고, 파란색 판넬 지붕을 달았다.

▲ 운천동 541번지 일대 피란민촌이 슬레이트 지붕 대신에 파란색 새 지붕을 달았다. 환경 개선사업으로 시에서 3억 5000만원을 지원해서 이뤄진 일이다. 보도블럭 및 하수도 정비 공사도 예정돼 있다. 그런데 운천초 인근에 있는 3집이 철거에 따른 보상을 요구하고 있어 난감한 상황이다. 문제가 된 3집은 사진 오른쪽 운천초 인근에 있다.

운천동 피란민촌은 그렇게 모두 새 지붕을 달았다. 청주시에서 올해 지붕교체 비용으로 3억 6000만원을 지원했기 때문이다. 석면은 발암물질인지라 주민들의 건강권을 위협했다. 시는 하수도 공사 및 보도블럭 교체에도 1억 5000만원을 따로 세웠다.

지붕교체를 하면서 공중화장실도 철거했다. 아직도 재래식 공중화장실을 사용하는 3가구가 있어 철거를 못하던 상황이었다. 이번에 철거하면서 3가구에는 양변기를 따로 놓았다. 진정순(70)씨는 피란민촌으로 시집 와 46년 만에 집에서 편히 볼일(?)을 보게 됐다.

“오래 사니까 이런 날도 오네 그려. 겨울에 화장실 가느라 고생한 것 생각하면 지금도 암담해. 샤워도 그냥 수도꼭지 틀어놓고 했는데 이제 집에 변기와 샤워기까지 놓이니까 더 이상 부러울 게 없어. 지붕도 좋은 것으로 놓고, 겉이 좋아지니까 안도 좀 멋있게 해놓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니까. 그런데 집이 좁아서 짐을 놀데가 없네. (하하)”

10월 안에 지붕 교체가 끝나면 낡은 하수도 관 교체 및 울퉁불퉁했던 보도블럭도 깔끔하게 정리되게 된다. 이밖에 한전 충북지부에서 노후화된 전선 정리, 도시가스 충북지사는 가스배관 정비 등을 약속했다.

도시빈민들의 삶의 터전

운천동 피란민촌은 6.25전쟁 이후 피란민들의 집단 거주지를 마련하기 위해 임시로 조성된 마을이었다. 임시거처는 도시 빈민자들의 삶의 터전으로 질긴 수명을 이어왔다. 지형적으로 운천동 일심아파트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고, 무허가 건물에 사는 주민들도 생활을 드러내는 것을 꺼려했다.

운천동 541번지 일대 토지 소유주는 서원학원이다. 주민들은 1년에 약 5만원을 서원학원에 ‘토지사용료’로 내고 살고 있다.

충청리뷰는 지난 2010년 12월 운천동 피란민촌 시리즈 기사를 통해 지역사회의 관심을 일으켰다. 보도가 나간 후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를 비롯한 최미애 도의원, 연철흠 시의원 등 지역사회가 함께 나서 ‘운천동 피란민촌 행복 만들기’프로젝트가 발족했다.

2011년 5월 8일 어버이날 주민들을 찾아 카네이션을 달아드렸던 것이 프로젝트의 첫 시작이었다. 데면데면했던 주민들과 프로젝트 팀은 이제 한 식구처럼 가까워졌다. 화단을 가꾸고, 마을 청소를 하고, 주민들과 함께 파전을 나누면서 정을 붙였다. 지난해 9월 마을 벽화를 주민들과 함께 그렸고, 12월엔 마을 잔치도 벌였다.

또 올해에는 충북참여연대가 영산홍 100그루를 피란민촌 화단에 심었다. 그간 공무원, 주민,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수시로 만나 머리를 맞대고 마을 일을 고민했다.

서원대 측, 토지사용승인서 내줘

운천동 피란민촌 주민들은 무허가 건축물에 살고 있는 있는지라 시에서 지원하는 데는 사실 걸림돌이 많았다. 결정적으로 땅 소유주인 서원학원 측이 ‘토지사용승인서’를 써주어야만 시에서는 예산을 투입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올해 6월, 서원대 이사회에서 흔쾌히 승인서를 써주었다. 대신 주민들에게 7월까지 매매 임대 및 임의 증축을 금지한다는 확약서를 내라고 요구했다. 물론 과정마다 고비도 많았고, 관계기관과 주민들의 이해관계도 엇갈려 갈등도 빚어졌다.

충북참여연대 박영환 봉사단장은 “마을을 바꾸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서로 상의하면서 문제를 풀었고,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충북참여연대 오창근 팀장은 “1년 6개월 만에 행복마을 프로젝트가 완성되게 된다. 연말에는 보고회를 열어 도움을 준 관계기관, 주민들과 함께 잔치를 벌일 것이다”고 말했다. 운천동 피란민촌은 앞으로 흥덕문화의집에서 벽화프로젝트를 시행할 계획이고, 주민들과 문화동아리를 연계한 문화프로그램도 펼칠 예정이다.


운천초 인근 3집, 보상요구에 난감해
무허가 건축물이라 보상주체가 없는데…

피란민촌 22가구 가운데 실제 살고 있는 사람은 39명이다. 그런데 이미 3~5년 전 피란민촌을 떠난 3집이 뜻하지 않게 보상을 요구하고 있어서 문제가 되고 있다. 3집 가운데 한집은 이미 주인이 세상을 떠났고, 남은 2집은 각각 1500만원, 600만원의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운천초등학교 인근에 위치한 3집은 빈집인지라 굳이 슬레이트 지붕을 교체하는데 돈을 쓰지 않고, 이번기회에 아예 철거를 하자는 의견이 모아졌다. 무허가 건축물이지만 재산권은 행사해 왔던 터라, 2집의 주인들은 철거에 따른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보상주체가 명확하지 않다. 2집은 서원학원과 운천초 땅이 함께 맞물려 있기까지 하다. 서원학원도 운천초도, 청주시도 보상을 해줄만한 근거가 마땅히 많다. 그렇다고 개보수 사업을 하고 있는 시행업체가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오창근 팀장은 “운천초가 숲 가꾸기 사업을 통해 담장을 허물고 공원을 조성했다. 3집은 운천초 바로 앞에 있어 이번기회에 철거하지 않으면 흉물이 될 것이다. 아이들의 건강권에도 심각한 문제를 초래한다. 철거를 한 뒤 이곳에 공원을 조성하면 인근 주민들의 쉼터가 될 텐데 너무 안타깝다. 일단 보상을 요구하는 주민들을 설득하고, 관계기관의 협조를 구하고 있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피란민촌은 기초생활수급자 5가구, 저소득층 15가구로 구성돼있다. 가구형태는 독거노인 4가구, 독거일반 2가구, 장애독거 2가구, 노인부부 4가구, 노인부부+장애자녀 2가구, 모자가정 1가구, 일반 5가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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