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가약 맹세하고 한양 떠난 이도령이 장원급제 어사화를 달고 올줄 알다가 거지꼴이 되어 월매를 찾았다. 월매가 혀를 차며 밥 한상 차려주자 이도령은 ‘밥아, 너 본지 오래구나’하면서 걸신들린 듯 한사발을 뚝딱 해치웠다.

얼마나 배가 고팠길래 형수로부터 주걱 빰을 맞은 흥부는 볼에 붙어있는 밥알을 떼어먹으며 다른 뺨도 때려달라고 통사정한다. 수염이 석자라도 먹어야 산다고 먹거리 문화는 인류생존의 첫 번째 명제다.인류의 주식은 쌀과 밀인데 지구상의 쌀 소비인구가 60%로 밀 소비인구보다 더 많다.

사람들은 쌀과 밀 농사를 어디서 어떻게 시작하고 발전시켜 온 것일까.

영화 인디아나 존스, ‘최후의 성잔’을 보면 성잔이 있는 곳이 비옥한 초승달 지역(The fertile crescent)이라고 존스 박사의 수첩에 기록돼 있다. 그 초승달 지역은 터어키 반도에서 이라크에 이르는 눈썹모양의 기름진 땅이다. 인류의 농경문화는 이곳, 중동지방에서 발생하여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는 게 통설이다.

그렇다면 농사는 왜 시작한 것일까.

여기에는 환경변화설, 문화의 발달, 인구증가설 등이 논쟁으로 남아 있다. 아무튼 사냥이나 하고 나무열매를 따 먹던 구석기의 채집경제는 신석기로 접어들며 농경문화로 바뀌었는데 관련학계에서는 이것을 신석기 혁명(Neolithic Revolution)이라 부른다.

신석기 혁명 중에서도 핵이 되는 벼농사는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종래에는 인도, 중국에서 시작되어 한반도, 일본 등지로 전파된 것으로 알아왔다. 그런데 오창과학단지가 조성중인 청원 소로리에서 충북대박물관에 의해 지난 97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가 출토되었다. 서울대와 미 지오크론연구소에 연대측정을 의뢰한 결과 1만3천년~1만5천년이라는 절대연대치를 얻었는데 이는 중국 강서성 선인동, 호남성 옥섬암 유적 출토 볍씨보다 3천년 가량 앞선 수치다.

혹자는 이 볍씨가 물길을 통해 흘러든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지만 토탄층에 박힌 볍씨를 일일이 대나무 칼로 쪼개낸 데다 볍씨 자체의 연대(탄소연대측정)가 이처럼 오래되어 타처로부터의 유입설을 일축하게 되었다.

수습된 59톨의 볍씨는 고대벼와 유사벼로 나누어지는데 DNA검사 결과 현대벼와 39.6%의 유전적 유사성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고대벼에서는 놀랍게도 재배벼의 흔적이 발견됐다. 야생벼는 볍씨의 낱알이 잘 떨어지는데 비해 재배벼는 잘 떨어지지 않는다. 이삭부분의 소지경에는 인위적으로 이삭을 자른 흔적도 발견되었다

인근의 구석기유적에서는 벼이삭을 자를 때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홈날 연모가 유난히 많이 나왔다. 러시아의 니나 코노넨코 박사는 이 홈날 연모를 관찰한 결과 섬유질이 묻어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의문은 또 든다. 이 시기는 마지막 빙기에 해당하는데 그 추운 시기에 벼가 자랄 수 있었을까. 실험결과 섭씨 13도의 저온에서도 볍씨가 70%정도 발아되었고 따라서 소로리 볍씨는 냉해에 강한 품종이라는 점을 추론할 수 있다.

이 연구결과를 종합해보면 청원 소로리가 세계 벼농사의 기원지로 자리 매김 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게 됐다. 세계 관련학자들도 이 사실을 인정했고 BBC에서도 이를 보도했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이 유적지에 대한 보존의지가 별로 없다. 동양의 초승달 지역은 이래서 묻힐 위기에 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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