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탈주민 한마음화합행사 개최

레크리에이션이 한창인 한 초등학교 운동장, “나랑 게임 좀 하십니다”라며 한 여성이 손을 내어왔다. 말을 건네는 억양이 분명 충청도의 것은 아니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끌리 듯 운동장으로 나갔지만 마냥 싫지는 않았다. 흥겨운 마당에 함께 하고 싶은 욕심이 있어서다. 20여명의 참가여성들이 저마다 한명씩 남성들을 관객석에서 데려왔다. 불안감이 엄습한 것도 잠시.

사회자가 남성을 앉히고 여성을 뒤에 서라고 주문할 때 느낌이 왔다. ‘이거 큰일 났구나’ 이윽고 커플게임이 시작됐다. 키는 나보다 작으나 체중은 더 나갈 것 같은 파트너, ‘어이쿠’ 하는 소리와 함께 실제로 업으니 무게가 실감이 났다. 게임의 규칙은 간단했다. 넘어지면 탈락, 이기면 팀이 상품을 얻는다. 곁눈질을 하니 뒤에서 앞으로 안는 과정에서 다른 참가자의 태반이 넘어지거나 여성의 발이 땅에 닿았다. 차례가 돌아왔다. 호흡을 가다듬고 등 뒤에서 앞으로 안는 과정에서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관중들이 박수를 치며 웃는다. 창피하지는 않았다. 그저 따라 웃었다.

가을 한 가운데, 유난히 날씨가 좋았던 9월 23일의 한 시골 초등학교 운동장 풍경이다. 이날은 음력으로 8월 8일, 추석을 딱 1주일 앞둔 날이었으며 참가자들은 북한이탈주민들이었다.

▲ 지난 23일 음성 용천초등학교에서 북한이탈주민 한마음화합행사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 참가한 북한이탈주민이 레크리에이션에 참가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가슴에 맺힌 사연, 눈물로 풀어

“다들 사선을 넘은 사람들입니다. 여기 모인 사람 중에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라고 말하는 말투가 무심하면서도 날카롭다. ‘기자선생’이라는 생소한 호칭도 시간이 흐르자 익숙해졌다. 생김새는 우리와 같지만 조금은 특별한 사람들의 행사가 지난 일요일 음성에서 열렸다.

지난 23일 음성군 금왕읍 용천초등학교 운동장에서는 북한이탈주민 한마음화합행사가 개최됐다. 이날 행사에는 북한이탈주민과 대한적십자 봉사회원 등 100여명의 사람들이 참여해 미리 명절분위기를 냈다. 북한이탈주민들은 옷도 흰색으로 맞춰 입었다. 명절을 앞두고 열린 행사답게 본 행사 시작 전 한 쪽 그늘에서는 송편을 빚는 손길이 분주했다.

적십자 봉사회원이 능숙한 손놀림으로 먼저 송편을 만들자 다른 이들이 따라했다. 하지만 모양이 썩 예쁘지는 않다. 송편보다는 만두에 가까웠다. ‘북한에는 추석 때 송편을 먹지 않는 것일까’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먹긴 먹되 많이 빚고 먹지 못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 때문일까. 명절 어머니 옆에 앉아 밀가루를 가지고 노는 아이처럼 송편을 빚는 북한이탈주민의 눈이 빛났다. 때로는 생 송편과 고물을 집어 먹는 게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함과 닮아있었다.

송편을 빚는 상을 물리고 본 행사가 이어졌다. 시작은 합동차례였다. 모두 다 같이 절을 올리고 술은 개개인이 따로 올리며 조상께 절을 올렸다. 합동차례가 끝난 후에도 비좁은 자리 때문에 같이 차례를 지내지 못한 몇몇이 나와 술을 따랐다. 차례를 지낸 다수의 북한이탈주민들은 조상에게 올리는 차례는 처음이라고 했다. 또한 이들과 함께 음성군에 거주하는 적십자 사할린동포 봉사회 회원들도 함께 차례를 지냈다.

이 중 몇몇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북녘 땅에 두고 온 가족 때문이었을까. 원희목씨는 “함경남도 부전군이 고향이다. 남편과 자식 셋이 먼저 죽었다. 2010년 홀로 남한에 왔는데 차례를 지내니 먼저 간 가족생각이 난다”며 눈물 흘린 이유를 설명했다.

다소 무거웠던 분위기가 레크리에이션시간이 시작되자 반전됐다. 간단한 댄스신고식도 이들 북한이탈주민들은 쉬이 넘어가지 않는다. 흔한 관광버스 춤이 아닌 선이 살아있는 춤을 선보인다.

북한이탈주민은 사랑팀, 푸른산팀, 옥수수팀으로 나눠 게임을 즐겼다. 게임에 참가한 절대다수는 여성들이었다. 유연성을 겨루는 림보게임과 커플게임, 훌라후프 등 게임이 이어졌다. 또한 부모와 아이들과 함께하는 2인3각 달리기 등이 이어졌다.

점심식사를 마친 오후에는 노래자랑이 이어졌다. 북한이탈주민 가수 이향이 ‘반갑습니다’와 ‘휘파람’을 부른 뒤 아코디언 연주를 선보였다. 행사에 참석한 이필용 음성군수가 ‘아빠의 청춘’을 부르기도 했다. 북한이탈주민들의 노래솜씨와 무대매너도 기대 이상이었다. 북에서는 음악을 접할 기회가 많다는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이들은 장윤정의 ‘올래’, 김종환의 ‘백년의 약속’ 등 남한가요를 부르며 노래 솜씨를 뽐냈다.

이순흥(가명)씨는 “청주에 살지만 행사소식을 듣고 참가하기 위해 왔다. 하나원에 있는 아들가족이 생각난다. 곧 나오면 가족끼리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기대감을 내보이기도 했다.

▲ 원희목씨가 먼저 세상을 떠난 가족을 떠올리며 눈물짓고 있다.

이윽고 음성최고 스타 칸의 노래도 이어졌다. 칸은 방글라데시에서 온 노동자로 1박2일과 영화 ‘방가방가’ 등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린 이다. 칸은 1996년 한국에 와 2010년 방대한이라는 이름으로 귀화했다. 원래 예정은 시간관계상 1곡만 부르게 돼 있었으나 이어진 앙코르 요청에 5곡이나 부르기도 했다.

칸의 한국이름인 방대한은 방글라데시와 대한민국을 합친 이름이다. 칸 역시 한켠에는 고향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적십자 사할린 봉사회원으로 참가한 동포들도 마찬가지, 그리운 고향에 돌아왔지만 사할린에 남아 있는 가족생각이 나는 때이다. 북한이탈주민의 경우는 더하다. 이날 한마음화합행사에는 음성이, 충북이 고향은 아니지만 이곳에서 지역민으로 어울려 살아가는 주민들을 위한 자리였던 것이다.

청주시내 곳곳 망향제 열려
명절맞이 고향 그리워하는 마음 달래다

한민족 최대 명절 추석을 앞두고 도내 거주하는 북한이탈주민들의 망형제가 이어졌다. 지난 26일 청주시 흥덕구 가경동 주공아파트 6단지에서는 이 단지 내 거주하는 북한이탈주민들이 모여 북한음식나눔행사를 가졌다.

이 행사는 충북하나센터가 센터 설립 이후 지속적으로 개최하고 있는 행사로 이번 추석명절을 맞아 가족을 그리워하는 이탈주민들이 모여 망향의 한을 달래기 위한 행사로 열리고 있다. 또한 지난 28일에는 청원군 오송읍 KTX 오송역사에서는 충북새터민협회 회원 80여명이 모여 조상들에 대한 차례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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