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일방적인 결정에 기사들 반발, 노-노 폭력 사태
A회사, 유류보조금까지 줄이니 ‘월 21만원 임금 삭감’

▲ 도급택시 사고와 언론에 잇단 보도로 도급택시에 대한 단속이 시작됐지만 택시업계는 사납금 인상으로 맞서고 있다. 임금협상 결과 기사들은 오히려 실질임금이 삭감되는 상황에 놓이고 있다. / 충청리뷰DB
기자에게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노조 사무실에 미리 흉기를 준비해놓고, 10명도 넘는 사람들이 택시기사를 불러다가 술병으로 머리를….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도급제 단속이 끝나니까 회사와 노조가 기다렸다는 듯이 사납금을 올렸어요. ‘갈수록 손님도 떨어지는데, 돈 받지 않고서야 이렇게 사납금을 올리는 게 말이나 돼’라며 항의 했던 택시기사에게 노조가 그렇게 했어요. 회사 간부들은 이 모습을 보고서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구경만 했어요.”

도급제파동으로 시끄러웠던, 청주·청원지역 택시업계가 다시 술렁이고 있다. 이번에는 ‘사납금파동’이다. 택시기사들에 따르면, 공공운수노조택시지부 노동자들의 청주시청 앞 천막농성이 끝나자 4,5군데의 택시회사 노사가 전격적으로 사납금을 인상하고, 그동안 지급되어왔던 LPG 가스 공급량을 축소했다는 것이다. 확인해보니, 이것은 사실이었다.

청주시에서 약 50대의 택시를 운영하는 A회사는 지난 8월 말, 노사합의로 일일 2교대제일 경우 기존 사납금 10만 3000원에서 10만 6000원으로 3000원을 인상하였다. 더불어 회사가 지급하던 LPG 가스를 38ℓ에서 30ℓ로 8ℓ 축소하였다. 이를 정부가 지원하는 유류보조금을 제한 금액으로 환산하면 1일, 6000원을 기사가 추가 부담하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사납금을 회사에 납부했을 때, 지급되던 임금은 기존 88만원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노사는 합의했다. 따라서 월 24일 운행하는 택시기사는 1일 9000원, 월 21만 6000원의 임금이 삭감되는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회사가 1년 근속마다 1만원의 근속수당을 지급하여 온 것을 최대 4만원으로 축소하는 것도 합의했다. 23년을 근무했던 B씨는 여기에서 19만원의 임금이 삭감돼 월 40만원이 넘는 임금이 축소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택시 기사들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방식인 사납금 협상을 한 곳은 지금까지 알려진 것만 해도 4개회사다.

임금협상이 임금 깎는 협상?

위 내용을 골자로 A택시회사 노사는 2012년 임금협정을 체결했다. 그리고 이 사실도 협상체결일이 열흘이나 지난 9월10일에서야 택시기사들은 알게 됐다. 사정은 이렇다. A회사에는 한국노총전국택시노동조합 소속의 노조, 민주택시연맹소속의 노조, 전국공공운수노조 소속의 노조 등 3개의 노조가 동시에 존재한다. 이중에서 과반수를 점하는 다수노조인 한국노총소속의 노조가 교섭권을 가지고 있는 상태였다. 나머지, 두 노조는 교섭에 참여도 하지 못하고 뒤늦게 통보만 받은 것이다.

그러나 정작 이해 할 수 없는 것이 택시업계의 임금협상 관행이다. 청주시내 D택시 노조 위원장은 “택시업계의 임금협상은 말만 임금협상이다. 임금을 얼마나 올릴까를 논하는 게 임금협상인데, 우리는 사납금을 얼마 올려줄까를 결정한다. 이게 ‘임금 깎기 협상’이지 무슨 임금협상이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현행 사납금제도는 불법이다.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에 따르면 ‘택시기사가 벌어들인 운송수입금은 전액 회사에 납부해야 하고, 회사는 납부한 운송수입의 규모와 상관없이 소정의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전액관리제를 명시하고 있다. 이러한 전액관리제 이외에는 모두 불법이다. 하지만 택시업계의 오래된 사납금제도는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런 사납금제도는 어떠한 폐해를 가져올까.

D위원장은 “회사와 노동조합간의 담합이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구조이고, 노동자와 노동자간의 갈등을 불러오는 구조적인 문제”를 폐해로 지적한다. 실례로 2003년 청주지역 모 택시회사와 기습적인 사납금 인상을 체결했던 노조위원장을 택시기사가 집으로 찾아가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비정상적인 사납금 인상을 책임지는 몫은 결국 기사 개인의 몫이고, 투명하지 못한 협상구조 때문에 회사가 아닌 노동조합으로 그 불만이 집중된다는 것”이다. 이번, A회사의 사납금 인상을 둘러싼 노조와 노동자간의 갈등이 폭력사태로 간 것에 대해 결코 사소하게 넘길 수 없는 대목이다.

불법 사납금, 노-노 폭력 불러

이와 관련해 청주시청 공무원 O씨는 “임금 협상은 노사 간의 문제로서 시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다만 “전액관리제가 아니면 불법인 것은 맞다. 다만 사납금제가 99%인 상황에서 어떻게 이것을 단속하고 뿌리 뽑을 수 있겠나. 노사가 합의해서 하는 것이 현실인데…”라며 고충을 토로했다. 이런 청주시의 입장에 대한 불만도 있다.

청주시내 택시노조 D위원장은 “청주시장은 지난 도급제 단속합의에서 ‘사납금제도 단속하겠다’고 약속했던 사항이다. 핑계대지 말고 약속을 지키면 될 일이다”라고 말했다. 또 “청주시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승객은 늘지 않고 줄어드는데, 사납금은 회사가 맘대로 올린다. 과연 사납금 인상요인이 있는지, 없는지를 청주시가 살피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D위원장의 주장처럼, 현재 어느 정도의 기준이 적정한 사납금 규모인지도 의문이다. 다만 청주시와 비슷한 규모인 전주시와 비교해볼 때 청주청원 택시업계의 사납금이 과하다고만 추정할 수가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뿐만이 아니다. 일부 택시기사들이 이미 사납금 인상을 예견했기 때문이다.

청주시청 농성에 참여했던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는 이미 두 달 전에 “청주시가 도급제를 단속하면, 회사는 따르는 척 할 것이다. 왜냐하면 사납금을 인상하면 그만이니까. 그래서 도급제뿐만 아니라 불법인 사납금제도까지 함께 단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처럼 도급제 단속으로 잃어버린 불법수익을 또 하나의 불법수익인 사납금제를 통해 만회하는 ‘꼼수’인지 아닌지, 청주시는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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