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시, “시청 땅이니까 앞으론 못 친다"
농성장 사람들…“시민들을 우습게 본다”

9월 6일 아침 7시. 시청 앞 천막이 들썩거렸다. 선잠을 자고 있던 비하동 롯데플라자 저지 비상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은 천막이 걷어지는 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떴다. 천막을 일방적으로 걷으려는 시청 회계과 청사시설계 직원들과 심한 몸싸움이 벌여졌다. 한범덕 시장이 출근하는 8시 전 시청 청사시설계에서는 신속하게 ‘천막을 처리’하려고 했지만 실랑이는 계속됐고, 결국 출근하는 시장을 보고 화가 난 농성자들은 욕을 퍼부었다. 이 일은 청사시설계직원들이 과잉 충성심에 벌인 돌출행동으로 비춰졌다.

청주시, 상당서에 공문 보내

하지만 시는 나름대로 절차를 밟았다. 청사시설계 관리자는 “연일 고성에 청내 안까지 플래카드를 치는 등 업무에 방해가 돼 천막농성이 가능한지 검토를 하게 됐다. 확인해보니 현재 천막을 치고 있는 곳이 공원부지였다. 이는 청주시청 땅이기 때문에 천막을 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천막을 치려면 인도나 도로 쪽으로 나가야 한다고 했다. 시는 집회신고를 받는 상당경찰서에 이와 같은 내용을 공문으로 보냈다.

상당경찰서 정보과 관계자는 “시청에서 보낸 공문에 최근 답변을 보냈다. 현재 천막을 치고 있는 곳은 청사부지와 인도와의 경계가 불분명하다는 내용을 전했다. 그렇다고 인도에 천막을 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통행에 불편을 주기 때문에 당연히 안 된다”고 답했다. 이어 그는 “천막을 철거하는 것은 시청의 권한이다. 경찰서는 집회신고를 내줄 뿐이다”고 강조했다.

청주시청 앞에는 천막농성이 벌어지고 있지만, 청주시는 "불법"이라며 철거를 시도했다.
손한수 비하동 롯데플라자 저지 대책위원은 "천막은 시민들이 할 수 있는 마지막 길"이라고 강조했다.

천막농성은 원칙적으론 불법이다. 천막은 구조물이 파이프. 나무이기 때문에 이를 분해해 무기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집회신고는 48시간, 720시간(30일)을 할 수 있다.

청주시가 앞으로 천막농성에 대해 원칙을 내세워 봉쇄할 수도 있다. 청주시 말대로, 청사 내 부지에 천막을 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천막은 불법건축물로 보게 된다.

하지만 이 같은 청주시의 행동에 농성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너무하다는 반응이다. 통상적으로 천막농성은 인정되는 분위기도 있고, 천막 안 사람들도 시민이기 때문이다. 농성자들은 “예고도 없이 자고 있는 사람들을 철거하려고 하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냐. 우리에게는 법 운운하면서 정작 청주시는 비하동 유통업무지구 관련해서 법과 절차를 제대로 지켰는지 되묻고 싶다. 청주시는 시민들을 너무 우습게 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천막을 치는 절박한 이유

천막농성은 농성자들의 마지막 선택이다. 더 이상 대화가 되지 않을 때 이들은 최후의 방법으로 천막을 치고, 그곳에서 먹고 잔다.

천막 안에서 만난 손한수 비하동 롯데플라자 저지 비상대책위원(충북주유소협회 대표)는 “처음에는 롯데가 마트주유소를 설치하는 것을 반대하기 위해 나섰지만, 싸움을 계속하면서 청주시가 시유지 땅을 넘기는 과정에서 특혜가 있다는 것을 포착했다. 지난해 12월부터 마트 주유소 철회를 주장하고 있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개인의 이익 때문이라고 폄하하는 데 억울하다. 청주시가 일 처리를 잘못한 것은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현대백화점에 이어 롯데아울렛까지 들어서는 마당에 시가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은 위한 대책을 내놓아야 하는 것 아닌가. 오죽하면 천막까지 치겠는가. 전기도 다 끊어놔서 발전기를 돌리면서 추위를 견디고 있다”고 비판했다.

민선 5기 현안사업을 두고 시와 시민들 간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비하동 유통업무지구외에도 청주테크노폴리스단지 송절동 대책위의 PF(프로젝트 파이낸싱) 지연에 따른 손해배상 요구, 내덕지구 우수저류지 설치반대 비대위의 보복행정 청주시장 사퇴요구 등이 거세게 일고 있다. 이들은 개별 싸움에 연대하며 反청주시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

갈등의 골이 깊어진 데는 청주시가 결정을 내릴 때 주민들과 정보를 공유하고 대화를 통해 해결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추진하기 때문이다. 공무원들 또한 시민들과의 스킨십이 서툴다. 물론 민선 4기에서 벌어진 일을 한범덕 시장이 뒷수습을 하고 있다는 동정론도 일고 있다. 청주시의 한 간부공무원은 “행정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하는데 쉽지가 않다”고 에둘러 말했다. 천막농성을 차단한다고 해서 불만의 목소리가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민선 5기 누가 천막을 쳤나
청주시 노인전문병원 간병인 등 4건
대부분 한 달 내 합의 후 사태 마무리

민선 5기 들어서 천막은 지금까지 4번 쳤다. 충북 희망원 운영 정상화, 청주시 노인전문병원 간병인 직접 고용 및 위탁업체 재선정, 불법도급택시 근절 대책 마련, 비하동 롯데플라자 저지 등을 이유로 천막을 쳤다. 현재 천막을 치고 있는 비하동 롯데플라자 저지 외에 앞서 벌어진 3건은 잘 마무리 됐다.

충북 희망원은 노조원들이 복직했고, 아이들도 희망원을 떠나지 않게 됐다. 천막은 한 달 신고를 했지만, 2~3일 만에 철거했다. 당시 지방노동위원회에서 노사조정이 있었는데 새벽 4시께 합의가 됐기 때문이다.
청주시 노인전문병원 관련 농성은 위탁운영을 맡은 효성병원이 재위탁을 주면서 벌어진 문제들을 지적했다. 간병인들의 직접고용문제도 제기됐다. 지난해 9월 한 달간 천막농성을 벌였다.

간병인들은 대개 50대 중후반 여성들로 천막생활을 하면서 어려움을 호소했다. 당시 전기를 시청 내 공원화장실에서 끌어왔지만 시에서 저지하지는 않았다. 청주시에서 위탁업체를 다시 선정했고, 문제를 제기했던 간병인들도 전원 복직됐다.

불법도급택시 근절을 위해 천막농성을 벌였던 이들은 공공운수 노조 공민교통 분회 소속 택시 운전자들이었다. 이들은 부당해고에 따른 복직과 청주시내 성행하고 있는 도급의 문제를 제기했다. 천막 농성을 한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청주시는 도급 택시 근절을 위한 신고포상금제 실시 및 인력배치 등 대책을 내놓으면서 마무리됐다.

간병인 싸움을 이끌었던 공공노조 의료연대 충북지역본부 김태윤 부장은 “사람들이 지자체에 정당한 요구를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에 천막을 치는 것이다. 표현할 수 있는 마지막 길이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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