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이발사들의 특별한 세계 들여다 보기
청와대 정식직원으로 별정직 4급 대우 받아

‘영부인 다음으로 대통령과 신체접촉이 많은 사람. 지존의 목에 칼을 들이댈 수 있는 유일한 사람.’ 대통령 전속 이발사를 두고 하는 말이다. 영화 ‘효자동 이발사’ 개봉을 계기로 대통령 이발사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굿데이’가 대통령 이발사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이 있던 즈음인 지난 2003년 초. 6명의 남자가 서울 모처에 모여 새로운 모임 하나를 만들었다. 이름하여 ‘대이회’. 풀어 말하면 ‘대통령 이발사들의 모임’이란 뜻이다.

최규하 대통령의 머리를 다듬던 김 모씨(60·서울 S호텔 이용원), 전두환 대통령의 이발사였던 또 다른 김 모씨(56·경기도 평택에서 화원 운영), 노태우 대통령을 담당한 안정근 씨(48·서울 노보텔 앰배서더 호텔 이용원), 김영삼 대통령 이발사인 이 모씨(53·개인사업), 김대중 대통령 이발사 박 모씨(44·여의도 C빌딩 이용원), 노무현 대통령의 이발을 맡고 있는 정 모씨(56·서울 M호텔 이용원)가 회원이다.

이들이 대통령 전속 이발사로 들어간 것은 크게 두 가지 경로를 통해서다.

대통령과 인연 맺는 과정도 다양
하나는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인연을 맺었던 경우. 최규하 대통령의 경우 정부종합청사 이용원에서 인연을 맺은 김씨를 청와대로 데리고 갔으며 전두환 대통령은 청와대 직원 이용실에서 전담 이발사를 차출했다. 김영삼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도 이전에 이용했던 L호텔과 M호텔 이용원의 담당자에게 그대로 머리를 맡긴 경우다. 이에 비해 노태우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은 관계기관의 추천으로 국제기능올림픽 금메달 수상자를 전담 이발사로 고용했다.

이들은 노태우 대통령 때만 해도 청와대의 정식직원으로 별정직 4급의 신분을 유지했으며 청와대 부근에 마련된 직원 관사에서 생활했다. 그러나 김영삼 대통령 이후부터는 외부에 자기 일을 하면서 청와대로 출근할 수 있게 됐다. 물론 대통령 전담이발사가 되면 본인은 다른 일을 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쁘다.

대통령들은 보통 보름에 한번 정도 머리를 깎지만 드라이 등 머리 손질은 행사가 있을 때마다 하루에도 수차례씩 한다.

이 때문에 국내 지방행사는 물론 외국 순방시에도 이발사가 수행하는데 특히 외국 순방의 경우 수행인을 줄이기 위해 이발사가 여러 일을 해야 하는 것이 보통이다. 옷이나 화장품 가방을 챙겨야 하는 것은 물론 구두를 닦는 일이나 만찬 때는 웨이터 일도 해야 한다.
대통령 이발사들 사이에는 그들 사이에서만 전해지는 ‘궁중처세술’이 있는데 대통령의 바쁜 일정에 맞추기 위해 겉모양만 재빨리 머리를 다듬는 노하우가 그것이다.

대통령 얼굴 면도는 절대 불가능
재미있는 것은 아무리 전속 이발사라도 대통령의 얼굴 면도는 하지 않는다는 점. ‘용안’에 칼을 대지 않는 전통 때문이다. 물론 머리를 자른 후 뒷머리는 면도를 한다. 특히 매일 살을 마주대는 사이인 대통령과 이발사 간에는 특별한 유대감이 싹트는데, 때문에 퇴임 후 자기들끼리도 모셨던 ‘지존’에 대해 누가 될 말은 조금도 안할 정도로 충성심이 대단하다고.

한편 대통령 이발사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은 박정희 대통령의 이발사였던 박수웅씨. 영화 <효자동 이발사>의 모델로 알려진 그는 일본군이 남기고 갔다는 보물선 탐사사업과 관련해 세간의 입에 자주 올랐다. 또 이승만 대통령의 이발사는 조선호텔에서 근무했던 강모씨로 현재는 작고했다.

 “6개월 지나서야 겨우 말문이 트이더군요”
노태우 전대통령 전속이발사 안정근 씨(48)
노보텔 앰배서더 호텔 이용원 원장
“처음에는 사시나무 떨듯 하며 묻는 말에만 겨우 대답을 하는 정도였죠. 6개월 정도 지나니 조금씩 말문이 트이더군요.”

노태우 대통령의 전속이발사를 지낸 안정근 원장(48·노보텔앰배서더호텔이용원)은 “매일매일 서로의 살을 맞대는 사이인 만큼 대통령과 이발사 사이에는 특별한 유대감이 싹트기 마련”이라며 말을 꺼냈다.

그가 청와대로 들어간 것은 총무수석의 추천을 통해서다. 산업인력공단에서 선발한 4명 중 최종 선발됐을 만큼 당시 최고의 실력자였다는 게 주위의 말이다.
대통령 이발사의 주된 임무는 물론 이발.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임무가 대통령을 편안하게 모시는 일이다. 안 원장에 따르면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연일 숨쉴 틈 없이 빡빡한 일정에 시달리는 위치인 만큼 이발을 하는 동안만은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하는 게 이발사의 첫째 임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려운 데를 미리 알라서 긁어줄 수 있는 노하우’가 필요한데 항상 다음 할 일을 생각해야 한다. 또 절대 실수가 있어서는 안되는 직업인 만큼 스트레스도 대단하다고.
그가 노태우 대통령의 머리를 다듬으며 가장 신경 쓴 부위는 이마. 월남전에서 파편을 맞아 생긴 상처를 머리로 가리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요즘도 노태우 대통령의 연희동 자택으로 출장이발을 다닌다는 안 원장은 “이발사로서 대통령의 머리를 다듬었다는 점에 대해 영광스럽게 생각한다”며 “영화 <효자동 이발사>가 최근 퇴폐영업 등으로 실추된 이발사의 명예를 되찾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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