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 - 박은선 CJB 청주방송 PD

디지털의 특징은 무한복제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것은 곧 시간의 경계를 허물고 지리적 공간적 경계도 무너뜨린다. 또한 디지털은 글로벌 차원의 동시성을 갖고 있으며,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중앙집중적인 권력을 해체하는 민주화의 특성도 갖고 있다.

한계를 뛰어넘는 확장성과 저장성을 갖고 있으며, 눈부시게 발전하는 과학기술에 힘입어 모든 것을 융합시키는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결국 디지털은 인류의 삶의 양태를 결정적으로 진화시킨 새로운 문명이다. 그래서 학자들은 2000년 이후를 디지털 시대라 부른다.

디지털이 인류의 문화를 획기적으로 다른 모습으로 만들어 놓았다면, 디지털 시대 이전의 1천년을 좌우한 대사건은 바로 인쇄술의 발전일 것이다. 특히 금속활자의 발명은 지난 1천년간의 사람들의 삶의 양태를 변화시킨 핵심적인 사건으로 꼽을 수 있다.

오늘날 디지털 문명이 세상의 발전을 이끌게 된 근본 바탕에 인쇄술의 획기적인 발전과 그를 통한 지식의 유통과 재생산, 축적과 도약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디지털에 버금가는 존재가 바로 금속활자의 발명이었던 것이다. 금속활자는 특권계층의 전유물이었던 지식을 해방시킨 것이다.

구텐베르그가 금속활자를 만들고 책을 찍어낸 일은 인류 역사상 대사건이었던 것이다. 이 엄청난 금속활자를 세계 최초로 실현시킨 것이 1377 직지다. 그러나 세계 역사는 직지보다 70여년 뒤에 나온 구텐베르그의 금속활자를 현대문명의 발아점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우리의 고민이 시작된다. 당연히 직지의 고장인 청주에서는 직지가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라는 점을 학문적, 역사적으로 증명하고 세상에 알릴 책임이 있었고, 그에 걸맞는 다양한 노력을 펼쳐왔고 성과도 많이 거두고 있다.

그렇다면 직지의 미래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직지의 존재감을 되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펼쳐왔음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에게는 직지의 의미가 온전히 각인되지 못한채 허전한 느낌을 줬는데, 도대체 그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책이었다. 직지를 만든 것은 곧 책을 만든 일이었다. 직지는 곧 책이고 지식이고 문명이었던 것이다. 직지는 곧 오늘날의 디지털이었던 것이다.

디지털시대의 직지가 책으로 회귀했다. '1377 창조의 빛'을 주제로 열리는 직지축제가 책들의 만찬을 펼친다. 직지의 존재감을 자리매김한 지난 시기의 성과를 바탕으로 앞으로 10년쯤은 직지가 곧 책이자 지식이자 디지털이라는 화두를 붙들고 매진하면 좋겠다. 직지의 고장에 세계 최대의 디지털도서관 하나쯤 있어야 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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