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례없는 경선에 당하고 “인준 안한다”는 말에 속고

▲ 결국 이시종 지사가 추천한 인물을 제치고 경선 끝에 당선된 성영용 상임위원이 충북적십자 회장 인준을 받았다. 충북도는 적십자 십자포화에 넋이 나간 상태다. 사진은 성영용 신임회장.
충북도가 충북적십자 회장 선출과 관련해 대한적십자의 십자포화를 맞고 초토화됐다. 십자포화(Crossfire)는 열십자 모양으로 사방에서 퍼부어대는 포격을 말한다. 포격의 시작은 유례없는 경선이 실시된 것이었다. 충북적십자사 상임위원회는 지난 9일 관행에 따라 명예회장인 이시종 지사가 추천해준 남기창 전 청주대 교수를 차기 회장으로 추대할 예정이었으나 성영용 상임위원이 강력한 출마의사를 보이자 돌연 투표를 진행했다.

상임위원 15명이 참여한 표결에서 10표를 얻은 성 위원이 5표에 그친 남 전 교수를 누르고 당선하는 이변이 일어났다. 이상기류는 미리 감지됐지만 충북도가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이 패착이었다. 봉사기구의 회장 자리에 도지사가 추천한 인물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것은 정치적이라는 내부반발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이다.

충북도는 절차상의 문제를 지적하며 대한적십자 총재의 인준이 거부되기를 기다렸다. 대한적십자의 정관은 회장 선출과 관련해 30조(지사임원 및 고문) 2항에 ‘회장은 상임위원회에서 선출한 후 총재의 인준을 받아야한다’고 돼있다. 따라서 총재의 현명한(?) 판단을 기다렸던 것이다. 경선으로 갈 거라면 입후보와 정견발표 등 상식적인 수준의 선거절차를 갖췄어야한다는 논리였다.

예감은 괜찮았다. 8월20일 당초 계획됐던 이·취임식이 변경돼 이임식만 열린 자리에서 고경석 대한적십자 사무총장이 “누가 회장이 될지는 모르지만 도와 협력하는 게 중요하다”고 밝힌데 이어 충북지사에 파견된 조사관들도 절차상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기 때문이다.

野 인사 “여권 고도의 대선전략”

심지어 유중근 총재도 충북적십자 관계자들에게 ‘인준거부를 행사 하겠다’고 거듭 밝혔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인사차 대한적십자를 방문한 성 당선자에게는 “알아서 처신해 달라”는 의사가 전달돼 성 당선자와 그의 고향인 제천적십자 대의원들이 봉기하기도 했다.

당초 이 지사가 추천했던 남 전 교수도 27일 “회장을 맡지 않겠다”고 밝힘으로서 모든 게 원점으로 돌아가는 듯싶었다. 지난 일은 잊어버리고 제2의 인물을 추천해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상황이 조성된 것이다.
그러나 28일 오전 유중근 총재가 성 당선자를 인준했다는 공문이 충북적십자에 통보됐다. 충북도는 언론보도를 통해 이 사실을 확인했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다. 충북도는 불쾌한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낼 정도로 격앙돼 있다. 한 간부는 “적십자사가 이럴 수 있느냐. 우릴 농락하나”라고 발끈했다.

이쯤 되면 일련의 사태로 감정의 골이 깊어진 충북도와 적십자가 적십자 회비 등을 모금하는데 유기적으로 협조할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나아가 적십자의 십자포화가 결국 정치적 계산에서 비롯된 게 아니냐는 음모론까지 나오고 있다.

민선4기 충북지사를 지낸 정우택(청주상당) 의원이 8월22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투표자체가 이뤄진 것을 보면 절차적 정당성은 갖췄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남 교수는 시험을 안본 사람 아니냐”고 전제한 뒤 “이시종 지사는 자기사람을 심으려다 실패했다는 오해를 살 수도 있다. 당적은 물론이고 당직까지 가졌던 인물이 적십자사 회장을 한다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성 당선자에게 힘을 실었다.

유중근 총재의 인준을 고도의 정치적 행위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야당인사는 “단순히 민주당 성향의 인물이 적십자 회장을 맡는 것을 저지하려는 수준이 아니라 적십자 회장 자리를 선거용으로 이용하려는 여권의 선거전략이 아닌가 생각마저 든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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