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성단체, 여성 희사로 건립한 제천여성도서관 출입 허용 요구 ‘시위’

여성도서관을 남성에게도 개방하라!”, “지금이 조선시대냐? 남자 여자 함께 쓰자!” 여성도서관의 남성 출입 금지에 반대해 온 한 시민단체가 여성도서관의 남성 출입 허용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인터넷 등을 통해 제천여성도서관의 남성 출입 허용을 줄기차게 요구해온 ‘남성연대(상임대표 성재기)’는 지난 7일 여성도서관 앞에서 기습 시위를 열고 도서관 강제 진입을 시도했다. 다행히 이날 시위가 남성연대의 사전 예고 속에 이뤄져 별다른 불상사는 없었지만, 도서관 진입을 제지하는 공무원과 남성연대 회원 사이에는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 지난 7일 ‘남성연대’가 제천여성도서관에 대한 남성 공동 이용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여 빈축을 샀다.

남성연대는 회원 9명이 참석한 가운데 이날 오후 12시 40분께 시민회관 광장에 모여 피켓과 간이 확성기를 사용한 시위를 벌였다. 남성연대는 이 자리에서 제천시가 자신들의 취지를 알아듣지 못한다며 성명서를 영어와 중국어로 낭독하는 이색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들은 약 10분 뒤 여성도서관에 대한 물리적 진입을 시도했으나 저지에 나선 시립도서관 관계자는 물론 일반 시민들과도 대치하며 실랑이를 벌이는 볼썽사나운 장면이 연출됐다.

시위를 주도한 성재기 남성연대 상임대표는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시설을 여성에게만 개방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제천시는 여성도서관에 남성 출입을 즉각 허용하라”고 요구했다.

남성연대는 남녀 차별이 사라졌고, 법조계·교육계·학계 등 사회지도층에 대한 여성 진출 비중이 남성을 능가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임에도 여성만을 위한 전용도서관을 설치, 운영하는 것은 명백한 성차별이라는 입장이다. 특히 여성도서관은 시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시설인 만큼 수혜자를 여성에 한정하는 것은 평등권에 어긋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도서관 운영 주체인 제천시의 입장은 완강하다. 이날 시위 현장을 지켜보던 함건택 제천시립도서관장은 “제천여성도서관은 말 그대로 여성만을 위해 건립된 여성 전용 도서관으로, 이를 남성에게 개방하라는 요구는 결코 수용할 수 없다”며 “지난 18년 동안 잘 운영돼 오던 도서관을 이제 와서 왈가왈부 흔드는 진짜 의도가 무엇인지 의심스럽다”고 맞섰다.

시민들의 의견도 대체로 남성연대 측에 우호적이지 않다. 도서관 이용객인 김모 씨(여·22)는 “과거 여성도서관 추진 당시 누구도 여성 전용 도서관 건립에 반대하지 않은 것으로 기억한다”며 “이제 와서 갑자기 남성에게도 도서관을 개방해 달라며 생떼를 쓰는 모습이 왠지 측은하기까지 하다”고 비꼬았다.

실제 이 도서관은 지역의 한 독지가가 제천 거주 여성들의 지적 능력 개발을 위해 기증한 부지 위에 건립한 시설로서 특별한 역사적 배경이 있다. 기증자인 고 김학임 여사는 지난 91년 제천시 중앙로 2가 29-1번지 334㎡의 사재를 시에 쾌척했다.

약 8억 원 가치가 있는 이 땅을 희사 받은 제천시는 지역 여성의 능력 개발에 사용해 달라는 김 여사의 뜻을 받들어 지난 1994년 제천여성도서관을 건립했다. 이후 시설 노후와 이용자 증가로 2007년 시비 5억 7000만 원을 들여 리모델링하기도 했다.

결국 제천여성도서관은 탄생 배경을 놓고 볼 때도 여성만을 위해 건립된 전용 시설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 셈이다.

하지만 남성연대 측은 추후에도 이 같은 시위를 지속적으로 벌이기로 해 충돌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경찰에 따르면 남성연대는 시위가 열린 7일뿐 아니라 오는 28일에도 같은 장소에 대한 집회 신청을 접수한 것으로 알려져, 제천시립도서관 측을 긴장케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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