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에서부터 귀 담아 듣고 공감하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 실천

황민호(마을연구소 ‘안남’ 책임연구원 )의 ‘나로부터 생활혁명’⑥

퇴근하면 빈둥빈둥 거실의 침대에 털푸덕 누워 TV 리모콘을 잡고 채널 돌리기에 바빴다. 볼게 없으면 영화서비스를 이용해 영화를 보거나 CSI시리즈에 탐닉했었다. 나는 삶에 지쳐 있었고 녹초가 되어 있었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못했고 사는 대로 그냥 방치된 것이다. 사회의 삶과 가정의 삶이 분리가 되어 있었고 가정의 삶은 내 사회의 삶에 부속품처럼 이끌려 가고 있었다. 가족의 일원이 된 조카와 어느새 부쩍 자라기 시작한 두 아이와 사랑스런 내 아내에게 난 주체적으로 능동적으로 이야기하지 못했고 늘 피곤에 찌든 모습, 지친 모습을 보이기 일쑤였다.

실상 그랬다. 몸이 겉잡을 수 없이 불어나면서 잠을 자도 잔 것 같지도 않았고 두통과 무호홉증이 일상적으로 동반됐다. 찌부둥한 몸은 사소한 일에도 짜증을 불러냈고 불어난 몸 같지 않게 난 예민해져 있었고 날카로워져 있었다. 말다툼이 늘었고 신경질이 늘어났다.

생활에 대한 성찰이 부족했던 나에게 악순환은 가중됐다. 무언가 변화가 필요했던 시점이었다. 스트레스, 이는 정신적인 중압감으로 몸을 심하게 옥죈다. 이것을 해결하지 않고서 생활혁명을 시작할 수 없다. 이 스트레스를 해결하는 것 역시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앞서 반복해서 이야기했듯이 민주주의는 내 몸 안에서 구현되고 내 가족, 내 생활 안에서 구현되서 체득되어야 비로소 사회에서 제대로 된 꽃을 피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은 그 이야기다. 다시 한번 우리의 생활을 돌아보자. 끊임없이 성찰하고 대화하자.

스트레스는 사방에서 왔다. 불어난 몸에서 이상 징후가 감지되는 것도 스트레스였고 일에 대한 중압감, 관계에서 오는 피로 등도 굉장한 스트레스였다. 불어난 몸은 만나는 사람들마다 살이 많이 쪘다느니 이거 몸에 무리가 가겠다는 등, 황기자 어떡하려고 그러느냐는 등 이런 걱정하는 말들이 나에겐 커다란 스트레스였다.

▲ 가족간에 서로 대화하는 것 민주주의의 시작이다. 사진은 우리 막둥이 황금빛들녁이의 생일 잔치때 가족이 같이 축하해주는 모습.

또 살이 찌니 코골이가 심해지고 무호홉증까지 나타났다. 그러니 집안에서도 독방신세를 면치 못했고 외박하는 것이 두려웠다. 외박을 하거나 하면 내 코골이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잠을 못 자거나 나도 그것을 신경쓰느라 잠을 설치곤 했다. 일어난 후에 듣는 걱정스런 목소리도 나에겐 스트레스였다.

직업특성상 사람을 많이 만났고 사람의 이야기를 담는 직업이라 칭찬도 들었지만 욕도 많이 들었다. 목요일 마감이 끝나면 금요일 아침부터 욕 전화 세례를 받기 일쑤였다. 비판 기사를 자주 쓰다보니 공무원에게서 싫은 소리를 듣는 것은 일상다반사였다.

어쩔 때는 민원인들에게도 전화가 와 내가 공공의 적이 된 느낌이었다. 오히려 전화가 안 오고 조용히 한 주가 지나가면 이상할 정도였다. 그렇게 되면서 피곤은 중첩됐고 짜증은 늘어만 갔다. 사소한 일에도 예민해졌고 늘 다크써클에다 쪽잠을 달고 살았다. 무언가 막혀 있었고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 마을일도 마찬가지다. 서로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똑똑한 몇 사람이 이끄는 것이 아니라 다같이 참여할 때 의미가 있다. 사진은 안남면 주민평의회인 지역발전위원회 회의모습.

어디서부터 해결할까?

아내를 비롯해 가족들은 내 건강에 대해 걱정했다. 그것도 기실 스트레스였다. 난 자꾸 방어기제를 갖고 피동적이 되어 갔다. 건강검진 결과가 나왔던 지난 1월, 나는 내 몸과 내 생활에 대해 성찰할 수 밖에 없었다. 아! 난 더 이상 건강한 것이 아니구나. 글씨만 빼곡이 써 있는 그 진단서에는 내가 상당히 매우 이상이 있다고 진술하고 있었다. 더 이상 젊음이 치유해주질 못한다는 것을 체감했고 불혹의 나이를 앞두고서 내 가족들이 떠올랐다.

어떻게 해야할까? 해답은 정해져 있었다. 실천만 남았을 뿐이었다. 맨날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하는 시늉만 했던 그리고 자위했던 일들에 대해 냉철하게 판단하고 실천해야 할 시점이 도래한 것이다. 무얼 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일단 모든 일을 멈추고 싶었다.

이 뼛속까지 스며든 자본주의 매트릭스에서 탈출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자본은 날 멈추지 못하게 만들었다. 월급이 나오자마자, 통장에 그림자만 남기고 속속들이 빠져나가는 내 돈들은 당장 내가 생활을 멈추면 내 삶을 확 갉아먹어 버릴 것 같았다.

나는 이미 돈의, 자본의 노예가 된 것이다. 그런 생활들은 날 멈추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사실 막막했다. 나는 더구나 홀몸도 아니고 무려 다섯명 가족, 독수리 오형제의 맏형이자, 칠성별의 대모험의 리더격 아니던가?(칠성별은 이후에 설명할 계획이다.) 책임이 막중했다.

▲ 액션러닝을 민주주의의 새로운 진행방식일 수 있다. 모두가 참여하고 같이 성장하는 방식. 액션러닝하라. 사진은 옥천군 사회적기업심화과정 중 지역농업활성화팀이 액션러닝하는 모습.

멈추고 묵상하라!

모든 시스템을 멈췄다. 나는 재시동 버튼을 누르고 다시 리셋하기 직전의 삶을 길게 가지려 노력했다. 하드에 있는 기록과 기억들은 남겨두더라도 운영시스템은 새로 포맷하고 싶었다. 너무 군더더기가 많이 붙어 있었고 그것은 삶에 부하를 가져왔다. 10년 동안 일한 퇴직금과 국가에서 주는 실업급여가 내 리셋하는 시간동안의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일을 시작한 아내와의 꾸준한 대화속에 결정을 한 일이었다. 고마웠다. 그리고 내 삶에 대한 성찰은 시작됐다. 나는 내 몸에 대해서 너무도 몰랐고 내 생활에 대해 정말 문외한이었다. 생각하지 않고 살았던 것이다. 내 혈압지수와 혈당, 중성지방, 콜레스테롤, 지방간 등의 수치에 대해 몰랐고 별로 알고 싶지 않았었다. 내가 보험을 몇 개나 들었는지 어느 보험을 들었는지도 몰랐고 자동차의 엔진오일 가는 주기도 잘 몰랐다.

하나하나씩 성찰하기 시작하면서 집사람과 충돌하는 지점도 있었다. 지금까지 내방쳐 두었다가 챙기려다 보니 문제가 있었고 그것은 의견충돌을 가져왔다.

특히 전기에 대해 성찰하고 전자렌지나 정수기 등을 없애는 데는 오랜 대화 속에 성공했지만 에어컨 등에 있어서는 아직 대화가 충분치 못했다. 가족 모두가 무작정 현미채식을 하자고 주장한 것도 갈등을 불러오기도 했다.

처음에는 당위성과 환경을 이야기하면서 강하게 이야기했지만, 그것 역시 서로에게 스트레스였다. 스트레스는 좋지 않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라도 그게 잔소리로 들리면 스트레스가 된다. 관계속에서 민주적으로 풀어내지 못하고 자발성을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그 말 또한 폭력이 되고 상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살 빼라는 이야기 손쉽게 할 수 있지만, 정말 그 사람의 생활패턴을 보고 공감을 하면서 구체적이고 진정어린 조언을 하는 것은 어렵다. 그것은 속깊은 애정에서 출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를 해소하라

기실 그랬다. 스트레스는 민주주의로 극복하지 못하면 관계를 끊어냈다. 끊어지면 고립되고 점점 더 사람이 폐쇄적으로 변하기 마련이다. 모든 사회의 병폐는 여기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관계의 회복에도 올바른 소통에도 바로 민주주의가 필요하구나 하고. 민주주의는 4년에 한번 표 행사를 하는 것이 민주주의가 아니라 생활 속에 강물처럼 흘러넘쳐야 한다. 아내와의 대화, 아이들과의 대화 내 이웃과의 대화에서 상호 존중하며 대화하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다.

나는 공자님 말씀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수신제가치국평천하’란 말이 가슴속에 맴돌기 시작했다. 내 몸부터 내 가족부터 민주주의가 회복되지 않으면 마을, 지역과 나라의 민주주의는 요원한 것이라 생각했다. 이름하여 ‘수신제가치국평천하’ 프로젝트이다.

내 몸은 이미 앞선 기고에서 밝혔듯이 몸안의 민주주의를 회복하는데 어느정도 궤도에 올랐고 다음은 내 생활이었다. 모든 일을 성급하게 밀어붙이지 않았다. 귀담아 듣고 공감하는 부분에 대해 동의를 표해주고 같이 생각했다.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귀담아 듣는 것만으로도 문제의 절반이상은 해결된다.

그리고 듣다보면 상당히 일리가 있고 오히려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혼자만 똑똑하고 잘났다는 독선을 지우지 않고서는 스트레스의 악령에 시달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시작하라! 액션러닝

그런 가운데 나는 협동조합과 사회적기업을 인큐베이팅하고 지원해주는 사회투자지원재단과 연을 맺게 되었고 많이 배우게 됐다. 옥천을 자주 방문하시던 김유숙 선생님이 액션러닝 방식에 대해 소개를 해줬는데 인상적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스스로 알아보시는 게 좋겠지만 뭉뚱그려 말하면 실행 가능한 민주적인 회의방식이다. 가령 이런 식이다. 5~6명 정도 모인 테이블 위에서 말을 하는 것보다 포스트잇으로 자신의 생각을 적어 전지에 붙이고 다시 정리하고 서로의 의견을 계속 포커싱해서 원하는 계획을 실행하는 방법이다.

김유숙 선생님은 가족 여행을 계획할 때 액션러닝 방식으로 정했다는 데 내용을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가족 회의를 하기 전 목적지를 제주로 합의하고 각자 제주도 여행정보를 살펴본 후 전지를 붙여놓고 회의를 시작했단다. 그리고 가보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것, 체험하고 싶은 것 등으로 분류해 각자 의견을 붙여놓고 조율을 한 것이다.

이 과정 속에서 서로 몰랐던 것이 드러나고 서로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초를 만들었으며 모두가 참여하는 훌륭한 여행계획을 만들었다는 것이 참 인상적이었다. 가족간의 민주주의는 그런 것이다. 사소한 의견이란 없다. 서로를 존중하면서 귀담아 듣는 것부터가 참 민주주의의 시작이다. 이렇게 해야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 당장 하던 일을 그만두고 몸무게를 줄인다고 해서 물론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야 있겠지만 또 다른 스트레스가 만들어질 것이다.

그런 스트레스를 없애려면 상대방의 생각을 듣는 것부터 시작이다. 공감하는 것부터 시작이다. 그래야 비로소 건강한 토양이 만들어지고 민주주의가 싹을 틔울 수 있다. 다음호는 독수리 오형제 황금빛 가족 이야기와 칠성별의 대모험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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